지난 89년 <쟈니윤쇼>를 시작으로 호스트의 이름을 건 토크쇼가 대거 등장했다. <주병진쇼>, <이홍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 등의 프로그램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토크쇼는 심야시간대 주요한 아이템으로 자리잡아갔다. 비교적 싼값에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토크쇼 프로그램의 장점. 양적 증대에 비례해 질적 향상이 뒤따랐다면 토크쇼의 명맥은 끊임없었을 것이다.
비슷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줄지어 나오자 시청자들의 반응은 점차 냉담해졌고, 최근 들어 토크쇼 제작붐도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호스트의
이름을 앞세운 토크쇼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
하지만, 개편의 거듭되는 칼바람 속에서도 살아남은 토크쇼가 있다. <서세원쇼>가 그것. 97년 <서세원의 화요 스페셜>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한동안 방송가에 ‘집단토크’와 장안에 ‘개인기 열풍’을 유행시킨 화제작이다.
웃겨야
산다
한때 토크쇼를 주도했던 정서는 ‘눈물’이었다. 게스트로 출연한 스타가 무명시절이나 어려웠던 과거를 고백하며 훌쩍거리는 모습은 토크쇼가 가장
빈번하게 연출한 장면. 뻔한 고생담이 되풀이되었지만 함께 우는 시청자가 많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눈물’이 정서적 공감대를 일으키는 최고의
무기였던 것이다. 빈곤한 대화를 ‘눈물’로 메우려는 제작 방식의 안일함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지만, 웃기기 위해서 가릴 것 없는 요즘의 토크쇼에
비하면 그때가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요즘 토크쇼의 연출 포인트는 ‘웃음’이다. <서세원쇼>는 그 선두에 선 프로그램이다. <서세원쇼>의 대표 꼭지는 ‘토크박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각종 유행어와 새로운 스타의 배출 창구가 되었으며, 전국에 이른바 ‘개인기’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토크박스’는
10명 이내의 게스트가 등장해, 주제에 관련한 이야기를 각각하고 순위를 매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순위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얼마나 웃겼나’는
것. 엄밀히 말하면 ‘토크박스’는 웃기기 대회이다.
게스트의 인간적인 일면이나 인생 철학, 개인을 통한 시대 읽기 같은 토크쇼 본연의 정서에 대해 ‘토크박스’는 무관심하다. ‘토크박스’의
존재 의미는 오로지 웃기는 것이며, 출연자가 가수이건 배우이건 상관없이 개그맨이 되기를 요구한다. 각박한 현대에 웃음을 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오락프로그램에서 웃음은 최고의 미덕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웃기기야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정말 웃기는가?’이다. 게스트와 진행자의 재치가 돋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서세원쇼>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유쾌함보다
불쾌함이 압도적이다. 진행자에게 아부까지 불사하고, 진땀을 닦으면서 열심히 이야기하는 게스트의 모습은 안쓰럽다. 사람들이 웃어주면 다행이지만
웃지 않으면 엄청난 면박을 감수해야 한다. 일단 타겟이 되면, 진행자와 게스트들은 합심해서 인격비하와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서세원쇼>는
‘구박’도 웃음을 유발하는 촉매쯤으로 생각한다. 머리모양이나 옷차림이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하다. 심지어 개인의 창법이나 말투까지
공격하며 억지로 웃음을 끌어내려 한다. <서세원쇼>를 통해 시청자는 공영방송 KBS가 배출하는 공식적인 ‘왕따’를 매주 구경하는
셈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방송이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그릇된 사회풍조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며, “화면 속에 연출된 진행자들의 언어나 행동이
시청자들에게 ‘건전한 웃음’을 유도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개인기’ 열풍도 ‘웃기기 위해 뭐든지 불사한다’는 식의 방송 풍토에서 나왔다. ‘토크박스’에서 ‘개인기’라는 단어는 성대모사를 하든 춤을
추든 바보 흉내를 내든 아무튼 웃음을 일으키는 장기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야기를 잘 못하면 개인기로 만회하는 것이 토크박스의 주 진행 방식인데,
이 때문에 연예인들은 개인기 익히기에 특별한 공을 들인다고 알려졌다. 가수가 출연해 노래는 물론, 말도 제대로 못해보고 성대모사만 하다
끝나는 일은 흔했다. 그러다보니 자기 분야에 능력보다 개인기로 승부하는 연예인이 많아졌다. 이런 현상은 사회 전체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개인기만 잘 갖추면 소속 집단에서 호감을 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온 국민이 어설픈 흉내로 웃기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개인기 몸살’을 앓게 된 것이다.
스타와 그의 친구들, 시청자는 구경꾼
연예인에게서 개인기를 짜낼 대로 짜낸 <서세원쇼>는 ‘토크박스’를 폐기하고 ‘실루엣토크’라는 꼭지를 개설했다. 새로운 꼭지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더욱 감각적이고 노골적인 공격성을 띈다.
‘실루엣토크’는 동료 연예인들이 장막 뒤에서 변조된 목소리로 해당 연예인에 대한 진실을 폭로하는 포맷이다. ‘진실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이 꼭지의 포인트지만, 진실에 대해 관심조차 있는지 의심스럽다. 질문의 대부분이 ‘여자를 밝히나’ ‘술 마시면 어떻게 변하나’ 같은 진실
여부가 무의미한 사적인 질문이며, 다수의 게스트가 지정 게스트를 놀리기에 급급하다. “이 바보야!” “얘 미쳤어요!” 같은 비방송용 언어들이
난무하며, 술을 마시면 야수가 된다는 등의 인신공격성 발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진행자도 별다른 저지가 없다. 연출자는 ‘파상공격’이니
‘융단폭격’이니 하는 자막을 내보내면서 이 광경을 강조한다. 게스트들은 낄낄대지만 시청자는 즐겁지 않다. 해당 연예인의 표정만큼이나 불쾌하고
민망하다. ‘야무’라고 자신을 밝힌 한 나테즌은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격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온 가족이 즐기는 웃음과 감동의 토크쇼’라는 <서세원쇼>의 슬로건이 명색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스트의 선정부터
‘온 가족’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부분 10대 취향의 연예인으로 지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토크쇼에서 사회적 저명인사나 특정 분야의
공인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 과대한 요구라면, 최소한 게스트의 연령대라도 다양하게 구성할 수는 없는지 아쉽다. 10대는 그나마 스타의
출연 자체에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스타에 시들한 세대에게 <서세원쇼>는 소외감만 안겨주는 프로그램이다. 10대들마저도 연예인들이
술자리에서나 나눌법한 사담을 왜 계속 시청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느낀다. ‘신비’라고 자신을 밝힌 10대 네티즌은 “웃음만 선사하려고
너무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들어가는 것 같다”며 <서세원쇼>가 올바른 방향을 찾아주기를 촉구했다.
<서세원쇼>는 진정한 웃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중은 닥치는 대로 수용하는 무비판적 존재가 아니다. 말초적인
‘웃음’으로 주목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시청자와 한 암묵적 약속 - ‘온 가족이 즐기는 웃음과 감동의 토크쇼’라는
슬로건이 부끄럽지 않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