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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란 끝이 없다

시사뉴스 기자  2001.09.24 0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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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란 끝이 없다


정부대책 실효성 의문, 장기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책 내놓아야


11월에 결혼할 예정인 권모(27, 수유)씨는
“전셋집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막상 나온 집을 보면 예전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전세값을 요구하고 있다”며 전셋집구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중금리가 바닥에 떨어짐에 따라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어 전셋집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세값은
천장부지를 이루고 있다.


전셋집 하늘에 별따기

올해와 지난 달의 기록적인 전세값 상승은 단순히 이사철이라는 계절적인 요인으로만 볼 수가 없다. 전세시장의 기본적인 구조변화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 소형 아파트의 공급이 지난 3년 반 동안 급속하게 줄어든 반면 저금리시대를 맞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주택과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꺾일 것 같지는 않다.

본격적인 이사철인데도 월세매물의 비중이 80%를 넘고 있다. 지난 2일 부동산정보 서비스업체인 ‘부동산114(www.R114.co.kr)’에
따르면 서울 일부지역을 대상으로 전월세 매물을 조사한 결과, 노원구의 경우 전세비중은 11.2%를 차지한 반면 월세비중이 88.8%에 달했다.
또 강서구도 전세매물은 17.5%인데 비해 월세매물은 82.5%나 됐다.

‘부동산 114’는 “서울지역 대부분 지역에서 월세매물 비중이 80%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전세물건은 매물로 나오자 마자
소진되는 반면 월세는 소형아파트라도 매물로 나온 후 거래까지 빨라도 보름에서 한달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세가격 기록적인 상승

월세의 증가와 전세의 품귀는 전세가격 상승과 주택 매매가 상승의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사철에 돌입하면서 서울 수도권 지역의
주택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주택매매가는 전달인 7월보다 평균 1.9% 올라, 올 들어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고 전세가격도 평균 2.5% 상승, 8월중 상승률로는 15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7일 주택은행이 28개 도시 3천260개 부동산중개업소를 대상으로 한 ‘도시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 매매가격은 전월대비
1.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서울은 2.6%, 광역시는 1.8%, 중소도시는 1.4%의 상승률을 보였고, 서울에서도 강북
지역은 2% 상승에 그친 반면 강남은 3.3% 올라 격차가 컸다.

주택유형별로는 단독주택과 연립은 1%, 1.5% 상승했으나 아파트는 2.6%나 상승했고 규모별로는 대형(단독·연립 39평이상, 아파트 29평이상)과
중형은 1.2%, 1.6%씩 상승한 반면 소형(19평이하)은 2.6% 올랐다.

전셋값은 가을 이사철 수요증가와 저금리로 인한 전세의 월세전환이 확산되면서 수급불균형이 심화, 전달에 비해 평균 2.5% 상승했다. “전셋값
상승률은 지난 86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라고 주택은행은 말했다.

전세가격은 서울이 2.8%, 아파트 2.7%, 소형 2.8% 등으로 나타났고, 전세의 월세전환 요구율은 서울과 수도권이 각각 40.2%,
40.8%에 달했고 월세전환 계약률은 서울 22.1%, 수도권 21.9%로 조사됐다.

올 들어 8월까지 도시전체의 주택매매가는 6.4%, 전세가는 12.7% 상승했고 서울지역의 경우 매매가는 8.8%, 전셋값은 15.8%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집세인상이 물가도 띄운다

전ㆍ월세값 등 집세의 가파른 상승은 물가 오름세를 부추기는 주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집세가 지난해 8월에 비해 4.7%
상승,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이 10.9%였다고 9일 밝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집세의 기여도가 10%를 넘어선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부문별로는 가격이 8.9% 오른 농축산물의 소비자물가에 대한 기여도가 27.4%로 가장 높고, 7.7% 오른 공공요금이 24%의 기여도를
나타냈다. 2.7% 오른 공업제품은 22.3%의 기여도를 보였다.

전세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은 기본적으로 집값이 다른 품목의 물가상승률보다 높기 때문이다. 한은은 공공요금과 공업제품 가격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기여도는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억제와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낮아지는 추세인데 비해 최근 오름폭이 큰 집세의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대책으로 전세난 해결할 수 있을까?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달 ‘국민임대주택 20만호 건설 및 전월세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대책에 대해 관련 업계와
연구소는 신규분양 시장에는 긍정적이지만 전세난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임대주택 20만호 건설’은 공급확대라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밀어내기식 물량증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제기된다. 전세난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임대주택은 수도권 외곽과 지방에만 건설되는 만큼 지역별 수급균형을 맞추기에는
힘들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는 “주택건설에 최소 2~3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성적 공급부족을 빚고 있는 현재의 중소형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또한 서민 전세자금 지원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주택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영세민과 저소득층에게 전세보증금의
70%까지 저리로 대출해 주겠다고한 대책이 재원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신용보증기금은 9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6,5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보았고 올해 상반기에만 2,354억원의 손실을 냈다. 주택신보는
경기침체로 인해 올해 들어 전세대출금을 갚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새로운 신용보증서 발급에 주저하고 있다. 그럼에도 올해 예상되는
6,000억원 규모의 전세자금 신규보증은 다른 부문의 보증을 줄이는 궁여지책으로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추가지원 없이는 내년부터는
전세자금 지원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추가재원 마련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 달에 발표한 전월세 지원대책은 99년 8월15일 대통령 발표 후속대책으로 발표된 ‘중산층 및 서민주거안정대책’, ‘2001년
3월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전·월세 종합대책’의 주요내용과 일부 전세자금 지원 등 지원금액의 수치상 상향조정을 제외하면 기본적인 정책방향은
다르지 않은 것을 볼 때, 전세·매매가 상승을 잡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이번의 ‘국민임대주택 20만호 건설 및 서민 전·월세 지원대책’도 ‘99년 중산층 및 서민주거안정대책’, ‘2001년 3월 서민주거안정대책’이
공통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저금리에 따른 월세전환 가속화→전세품귀(선호)·전세가 급등→매매가 상승→지가 상승’ 등의 악순환 구조를 해소시킬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노당 경제민주화 운동본부 이선근 위원장은 “이런 악순환 구조가 방치된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서민의 전세자금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서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기는커녕, 전세가 상승을 부추기는 임대사업자에게 더 많은 전세자금을 갖다 바치는 꼴”이라고 말했다.









고병현 기자 bhgoh@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