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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김종해 시집<풀>외

시사뉴스 기자  2001.09.24 0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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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 안에서 열매처럼 익은 詩


시인의 마음 안에서 열매처럼 익은 詩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아침에 짤막한 시 한 줄을 읽었는데 하루종일 방안에 그 향기가 남아 있는 시,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고통스러운 삶의 한철을 지내는 동안 떫은 물 다 빠지고 시인의 마음 안에서 열매처럼 익은 시, 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시로써 사람을 느끼며,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하고 싶은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가 있는 시. 나는 이런
시가 좋다.”

김종해 시인의 인사 글이다. 시인의 시가 정말 이런 시라면 더 이상 무슨 소개의 글이 필요하겠는가?

<한국시협상>을 수상한 시인은 《별똥별》 이후로 칠년 만에 여덟번째 시집 《풀》을 내놓았다. 말을 아끼고 아껴 시집 한 권에
선시(禪詩)같은 시 45편만을 실었다.

올해로 몸은 회갑을 맞았고 시의 나이는 불혹에 접어든 시인은 농이 앉은 듯한 무화과 열매처럼 익을대로 익은 그의 연륜을 두런두런 풀어낸다.
그 언어가 아프지만 따뜻하다. 그에게는 그런 이중적인 평가가 어울리겠다.

사라져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가 돌아가는 하늘이 회중전등처럼 내 발밑을
비춘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작아서 아름답다 -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전문

죽음을 노래한 시편도 그의 시 속에서는 어둡거나 쓸쓸한 것이 아니라 그지없이 아름답다. 등단 이후 지속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던
시인이기에 인간의 ‘삶’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넉넉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시민운동가 정수복·장미란 부부의《바다로 간 게으름뱅이》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1989년 귀국한 저자 부부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한국사회에 정신없이 내둘린 경험이 있다고 고백한다. 빠른 속도에
적응을 강요당하면서도 ‘자발적 소외’의 길을 택한 ‘한국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수입된 느림의 철학들이 다분히 개인적 취향의 낭만주의에 빠져 있고,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만만찮은 현실에서
정수복·장미란 부부는 이런 비판을 염두해 두고 이 책을 썼다. 그 동안 빠른 속도로 지속적 성장을 강요해 온 우리 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열심히 뛰었지만 남은 것은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의 물결이었으며, 성취 동기의 피로증세였다. 따라서 현대 산업문명에 지친 사람들이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적 삶의 양식과 문명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자들은 대안적 삶의 양식과 문명으로 가는 출발선상에 바로 느림의
철학을 올려놓고 있다.

문명전환이라는 말 자체가 전 지구적 차원의 의미를 갖는 커다란 일이고, 단시일 안에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방안을 보면, 큰 변화는 결국 삶의 현장에서 기존 삶의 양식을 서서히 바꿔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느림, 걷기, 대지, 숲, 게으름, 인간관계의 질, 기다림, 삶의 질, 행복, 낮잠, 침묵, 포도주 같은
소주제들을 천천히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새로운 문명의 출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동옥 기자 dokim@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