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공연계는
오페라로 풍성하다.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가의 루치아>, 현제명의 <오페라 춘향전>, 푸치니의 <라보엠>,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등 대극장 공연만 해도 11편이 대기중이다. 소극장과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수.
원래 감성적인 가을은 오페라의 계절이지만, 올해 유난히 많은 작품이 쏟아지는 것은 영세한 민간단체들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 덕분이다. 문화적
취향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대중들의 요구도 적절히 맞물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중적 인지도가 비교적 낮아 침체되었던 장르인 오페라가 활성화되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또 베르디야?
하지만 속을 잘 들여다보면 무턱대고 반길 수만 없다. 양적 팽창에 비례하는 질적 풍요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에 오페라를 제작해
온 민간단체 중에는 수준 낮은 작품을 근근이 발표하며 이름만 유지해 온 곳이 많다. 올 가을을 겨냥해서 쏟아지는 작품 중에는 이런 단체의
오페라도 몇몇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지만 과연 이번 가을 작품에서 급작스러운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작품 수가 많아졌다고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도 아니다. 중복과 재탕이 문제다. 대부분 오페라들이 해마다 보던 것이고 작곡가도 겹치는 경우가
많다. 베르디의(<리골레토>, <가면무도회>, <라 트라비아타>, <오델로>), 푸치니(<라보엠>,
<토스카>),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코지판투테>), 도니제티(<사랑의
묘약>, <루치아>) 등 몇 편의 ‘고전’이 늘 반복 공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같은 반찬이 여러 그릇 올라온 밥상인 셈.
홍보 경쟁 치열… 만찬, 서커스, 누드모델까지
경쟁 작품이 많아지다 보니 돋보이기 위한 홍보 전략도 치열해졌다. 이색적인 이벤트를 마련하거나, 극중 서커스 공연을 넣는가하면, 실제 누드모델을
출연시키는 오페라도 있다.
18-23일 양재동 한전아츠풀센터에서 공연 예정인 오페라 <리골레토>(한우리오페라단)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했다. 2층 객석을
VIP 전용석으로 만들어, 저녁만찬과 칵테일 파티를 즐기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VIP디너패키지’, 저녁식사와 이브닝
드레스, 연인들을 위한 발코니석, 장미 꽃다발, 영상 프로포즈 등이 서비스되는 ‘드라마틱 프로포즈’ ‘드라마틱 데이’가 그것이다.
그밖에도 9월 20일-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사랑의 묘약>(뉴서울오페라단)은 오페라 중간에 실제 서커스를
투입할 계획이어서 흥미를 끈다. 단장 홍지원은 “새롭게 시도된 극중의 서커스 공연으로 누구든 친근하면서도 실험적인 오페라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누드모델이 등장하는 오페라도 있다. 10월 9일-13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푸치니의 <라보엠>(한강오페라단)은
극중 화가 마르첼로가 모델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실제 누드모델이 출연할 예정이어서 화제다. 그 외에도 라보엠 의상 도우미 시연회,
퀴즈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이 같은 노력은 오페라의 저변 확대라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홍보 전략 자체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칫 실속 없이 겉만 치장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부가적인 이벤트나 이색 아이디어에 부합하는 작품성만 보장된다면
덤으로 즐길 거리가 있다는 것이 나쁠 건 없다. 작품 선정만 잘 한다면 오페라 팬들에게 올 가을은 즐거운 계절이 될 것이다.
<가을밤, 사랑을 노래하는 오페라> |
가족과 함께 즐기는 희극
보헤미안들의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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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