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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요절과 숙명의 작가전

시사뉴스 기자  2001.09.24 0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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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은 사라져도예술혼은 남아


요절·단명작가 16인의 작품을 한자리에 <요절과 숙명의 작가展>


우리 근현대 화단에는
요절한 천재 화가들이 유난히 많다. 가난과 시대적 암울함, 치열한 이념적 갈등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던 화가들. 그들을 추억하는 전시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다. ‘가나아트센터’ 개관 3주년 기념전으로 기획된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은 요절작가 16인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되었다.

요절작가는 흔히 천재화, 신비화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과 자료의 부족으로 대중들에게 잊혀지기 쉬운 측면도 있다. 실제로 ‘가나아트센터’측에서는
요절작가로 통칭되어지는 몇몇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고충이 따랐으며 유족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요절작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비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작품세계를 미술사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더 늦기 전에’
작품과 자료를 모으고 관리해야 한다는 ‘살아 남은 자’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동안 몇몇 요절작가의 전시는 개최되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이루어지기는 처음이다.

전시 작가는 짧은 창작활동 기간동안 △근대 미술사상 가치 있는 예술성을 구현한 작가 △20세기 미술의 각 이념과 양식의 선구자 △주목과
평가가 늦은 작가 등의 기준에 적합한 화가로 선정했다.


박수근, 이인성… 등 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가들

△꼽추라는 불우한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 30년대 한국의 표현주의적 화풍을 주도한 구본웅(1906-1953)의 <산>, <선박>
등 △경쾌하고 참신한 화풍을 바탕으로 일상적인 소재로 향토성을 표현한 김종태(1906-1935)의 <낮잠자는 아이> 등 △’천하의
이인성을 모르냐’며 호통치다 경관의 총에 맞은 인상주의자 이인성(1912-1950)의 <풍경>, <복숭아> 등 △서민의
삶을 대변하고 독창적 미술세계를 창조한 ‘국민의 화가’ 박수근(1914-1965)의 <앉아있는 여인>, <풍경> 등
△표현주의 초기 모더니즘을 개척한 이중섭(1916-1956)의 <황소>, <복사꽃이 핀 마을>, <피난가족>
등 △전후 모더니즘을 개척한 추상파 함대정(1920-1959)의 <안맹장 초상화>, <악사> 등 △독특한 자신만의
조각언어를 확립했으나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어 자살한 권진규(1922-1973)의 <불상>,
<마두> 등 △순수한 조형의지를 바탕으로 회화정신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던 김경(1922-1965)의 <쌍계> 등 △현대판화의
개척자 정규(1923-1971)의 <태양과 강아지와 나>, <공장> 등 △용접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여 조소의
현대적 어법과 조형적 시도 그리고 기법적인 측면에서 혁신을 가져온 송영수(1930-1970)의 <형상>, <공허>
등 △역동적 추상표현주의와 자연주의적인 삶의 열정을 화폭에 농축시켰던 최욱경(1940-1985)의 <어떤 해결책을 줍니까?>,
<비참한 관계> 등 △추상화를 일반인들에게 널리 인식시키는데 기여한 박길웅(1941-1977)의 <원초공간> 등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추상화로 ‘파이프 작가’로 불린 이승조(1941-1990)의 <핵-Nucleus> △설치미술의 개척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전국광(1946-1990)의 <매스의 내면>, <적-변이> 등 △80년대 민중미술의 선구자 오윤(1949-1986)의
<애비와 아들>, <할머니> 등 △민초들의 삶을 애정으로 감싸안으며 사회에 대응한 손상기(1949-1988)의 <공작도시-신음하는
도시>, <자라지 않는 나무> 등 △일상과 관념의 굴레에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실존적 몸부림을 조각으로 표현한 류인(1956-1999)의
<부활-조용한 새벽>, <조각가의 혼> 등이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들이다.

이외에도 일반인에게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도 있다. 일본에서 온 이중섭의 은지화 3점,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들>외 4점(이 4점은 지면으로 소개된
적은 있으나 실물이 전시에 나오기는 처음이다.), 함대정의 초상화는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 공개되는 것들이다.

특히 함대정은 대중에게 생소한 작가다. 한국 추상미술에 영향을 끼친 화가 함대정은 프랑스에서 귀국 후 곧 작고했다. 생전 함대정은 단 두
점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중 한 점이 그의 후원자였던 박기훈 어머님(안맹강)의 초상이다. 함대정의 초상화는 후원자에 의해 극적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번 작품의 발굴을 계기로 한국근대 미술과 후원에 대한 미술사적 연구가 촉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치열한 삶이 녹아있는 작품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에 담겨진 농축된 열정과 근대적 기법은 가벼움이 주도하는 요즘 세태에 오히려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전위적이고 무국적적인
작품이 판치는 현대미술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를 통해 고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범인들에게 요절작가들의 작품에 묻어나오는 삶의 치열함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정준모 미술비평가는 그들의 작품에는 오늘의 작품들과는 다른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평한다. 대중을 미혹하는 화려한 색채나 서술적 구조보다는
원초적인 처연한 삶을 대가로 치르고 얻어낸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령에 이르고자 했던 시대를 초월한 삶의 원전에 작업의 바탕을 두었던 이들의 작업은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고지식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했던 이들의 작업은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현실을 뛰어넘고 그리고 그 뛰어넘은
높이 만큼이나 높고 너른 예술성을 담보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큐레이터 정희정씨는 “요절작가들에 대한 선입견이 많다. 특히 이중섭이나 박수근 같이 알려진 화가들의 경우 대중들은 ‘잘 알고 있다’ 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작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했으면 좋겠다.” 며 관람 포인트를 귀뜸 했다.

전시와 더불어 ‘가나아트센터’는 개관기념으로 <가을밤 오픈 콘서트>를 연다.

가나아트센터 야외 공연장에서 펼쳐질 이번 공연은 장사익(7일) 윤희정(13, 14일) 안치환과 자유(21, 22일) 이정식(10월 12일)
김희갑(13일-이동원, 오승국 출연) 나팔꽃 시노래 모임(19, 20일-안치환 출연)의 일정과 계획으로 이루어진다.

문의 : 736-1020






정춘옥 기자 <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