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교환의 불편함을
대신한 기원전 1300년 경의 은나라 조개껍데기에서 신용을 담보로 한 자기앞 수표를 거쳐 급기야 전자화폐까지. 앞으로 지갑에 지폐를 넣고
다닐 일도, 짤랑짤랑 거리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번거로움도 먼 옛날 향수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반도체칩이 내장된 카드에 미리 입급된 액수만큼 사용할 수 있는 전자화폐가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화폐는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보완해야 할 문제점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산물 전자화폐
디지털시대를 맞아 아날로그적 산물인 종이돈과 신용카드의 불완전성을 보완할 사명을 띠고 등장한 것이 전자화폐이다. 이제 단돈 200원짜리
커피도 전자화폐로 뽑을 수 있고, 음식값도 전자화폐로 계산할 수 있다. 인터넷 상거래가 급증하면서 온라인 결제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전자화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급률이 높지 않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자화폐를 그저 충전해서 사용하는 교통카드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전자화폐는 네트워크형카드와 IC(집적회로)형 카드로 나뉜다. 네트워크형 전자화폐는 가상은행이나 인터넷과 연결된 고객의 컴퓨터에 저장한다.
이캐시와 사이버코인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캐시는 1994년 10월 네덜란드 디지캐시사가 발행한 것으로 인터넷을 통해 지불하는 최초의
전자화폐이다. 이캐시는 은행에서 이캐시를 찾은 다음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이캐시를 지불하면 된다. 이캐시는 환금성이
있기 때문에 상점은 바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IC형 전자화폐는 전자지갑형 전자화폐이다. IC카드에 은행예금의 일부를 옮겨 단말기 등으로 현금처럼 지급하는 것이다. 전자화폐는 신용카드처럼
후지불 방식이 아니라 결제하는 그 즉시 사용한 만큼 이체된다. 교통카드, 전화카드, 신용카드 등의 기능을 한 장에 담고 있으므로 카드 한
장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전자화폐는 1원 단위로 결제가 가능하므로 잔돈이 필요없고 신용카드 사용이 불편한 소액결제시 편리하다. 신용카드처럼 신분확인 및 서명 등의
복잡한 절차 없이 신속한 결제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보안수단 중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IC칩 카드이기 때문에 위조의
위험도 덜하다.
전자화폐는 저장한도가 현금 50만원 정도의 소액이고, 다 썼을 때는 유인 충전소에서 현금으로 충전하거나 무인 충전기, 공중전화, PC,
은행 CD기, 휴대폰을 통해 충전이 가능하다.
택시요금결제에
인터넷 상거래 결제까지
현재 나와있는 대표적인 전자화폐로는 몬덱스카드와 A-캐시, K-캐시, 비자캐시 등 대략 4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군소업체의 전자화폐까지
합하면 100여 종이 넘는다.
지난해 6월 27일 코엑스에서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전자화폐시장의 새로운 전환을 예고했던 몬덱스카드는 국제호환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 80여개국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다. 오프라인 시장에서의 IC형 전자화폐를 고집했던 몬덱스 카드는 2001년 5월에는 인터넷 영풍문고,
게임사이트, 인터파크 등 인터넷 결제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버스와 지하철뿐만 아니라 택시까지도 몬덱스카드로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
단 택시의 경우는 몬덱스와 사전 계약을 맺어 단말기를 갖춘 월드콜택시에 한해서이다. 요금은 택시회사와 협의하에 5%를 할인해준다.
지난 달 11일에는 KTF와 국민은행 등과 연계한 ‘KTF멤버스 국민카드’를 발급하기도 했다. 이 카드는 KTF고객을 대상으로 제공중인
KTF멤버스카드와 신용카드, 전자화폐가 하나로 결합된 다기능 스마트카드로 KTF멤버스카드의 각종 할인혜택과 국민카드가 제공하는 신용카드,
몬덱스코리아의 온·오프라인 소객결제 지불 기능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삼성, 엘지, 국민 등 신용카드 3사가 참여하여 개발한 에이캐시(A-CASH) 카드는 온라인 지불결제 전문업체인 데이콤사이버패스와 8월23일
전략적 제휴를 맺음으로서 네트워크형 전자화폐와 IC형 카드의 동시 사용이 가능하게 됐다. 고객들은 에이캐시로 데이콤사이버패스의 상품권을
구매하거나 인터넷 접속과 전화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금융결제원과 각 국내은행이 참여하여 개발한 케이캐시(K-CASH)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역삼역, 선릉역 주변지역의 식당, 문구점, 소매점
등 1300여 곳에 단말기를 설치했다. 케이캐시는 온라인 시장보다 교통카드를 중심으로 하는 오프라인 시장을 주타켓으로 삼고 있다.
국민카드, 롯데캐피탈, 삼성카드, 신한은행, 조흥은행 등 13개 비자 회원사와 삼성물산, 롯데칠성음료, 비자카드 등 총 18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이룬 비자캐시는 현재 시범적으로 운영중이다. 롯데리아 전 매장과 세븐일레븐 본점, 롯데닷컴, 삼성몰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비자캐시는
처음에는 인터넷 상에서 소액의 결제수단이 요구되는 디지털 콘텐츠 구매 지불 수단으로 이용되다가 점차 실물거래시장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단말기 표준화 등 문제점 보완해야
신용카드 업계에서는 전 세계 현금거래의 약 20%정도가 10달러 이하의 소액결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국내시장에 적용해보면
총 소비지출규모가 300조원이라고 추정할 때, 약 60조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전자화폐가 기업과 기업간의 대규모 거래가 아닌 기업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소규모 거래에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자화폐시장은 엄청난 발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자화폐시장이 발전하려면 몇 가지 보완점이 필요하다. 전자화폐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자화폐를 읽을 수 있는 카드단말기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금액충전단말기가 필요하다. 현재는 카드회사에서 가맹점에 카드단말기와 금액충전단말기를 설치 보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카드사마다 단말기가
틀리기 때문에 소지한 카드사의 가맹점 이외에는 이용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단말기와 충전기를 표준화하지 않는 이상 전자화폐시장의 성장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또 온·오프라인에서도 제휴사가 아닌 이상 한 장의 카드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반쪽짜리 미래화폐’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안전성 여부도 문제다. 몬덱스코리아의 김근배 대표는 “국내에는 전자화폐의 기술력을 검증하는 객관적 기준이나 공인인증기관 도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전자지불과 관련, 다양한 시스템이 개발돼 있지만 여전히 보안성과 안정성 시비가 가려지지 않은 채 소비자들에게
노출되어 소비자피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또 “현금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등장한 전자화폐가 사용기록을 일일이 보관해 개인정보를 유출시킨다면 사생활 침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전자화폐 기능에 개인 신분확인 기능도 추가되어 있는데 전자화폐 사용시마다 거래내역뿐 아니라 개인정보마저도 노출될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전자화폐의 시행에 있어서 제도적, 기술적 장치가 보완되지 않는 이상 장밋빛 미래는 요원해 보인다.
김동옥 기자 dokim@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