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20대 후반이나 30대라면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가만 들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70년대 성장기를 거친 세대에게
태권브이는 그만큼 생명력을 지닌 존재이다. 첫 개봉일로부터 25년이나 지났고, 방학 때마다 극장에서 열광하던 아이들도 이젠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386세대에게 태권브이는 영원한 영웅이고 우상이다. 마침내 그들 가슴 속에서 울려 퍼지던 추억의 아우성이 응집되어 태권브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삼년 전부터 일어난 태권브이 신드롬이 그것이다.
태권브이 캐릭터를 이용한 각종 상품이 인기를 끌었고, 태권브이를 소재로 내부 장식을 한 카페나 술집도 생긴지 오래다. 태권브이 상영회는
향수를 간직한 인파로 성황을 이루었으며, 딴지일보는 태권브이 자료를 모아 VCD를 준비중이다.
99년에 생긴 태권브이 매니아 모임인 ‘신화창조 태권브이 팬클럽’(http://www.gotaekwonv.wo.to)은 회원 수가 2천
3백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 ‘신태권브이’ 제작까지 이루어져 열기는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이다. 태권브이의 판권을 갖고 있는 ‘신씨네’와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지털드림스튜디오(DDS)’는
최근 <로보트 태권브이>를 90분짜리 극장용 3D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2002년 겨울 개봉할 예정임을 밝혔다. 제작비는 50억원
이상, TV시리즈와 게임 제작 비용을 포함하면 100억원 가까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제작사는 태권브이를 테마로 한 ‘V-Street’(가칭)
조성도 함께 추진 중이다. 디지털드림스튜디오 관계자는 “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이 일회성 흥행물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될 수 있도록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거리에는 태권브이 상영관, 역사 전시관, 캐릭터 상품 판매관 등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왜 ‘태권브이’인가?
태권브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왜 이렇게 오래도록 그것에 열광해 왔을까? 이른바 ‘태권브이 부활 프로젝트’까지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IMF 이후 몰려온 옛 것에 대한 그리움과 복고 증후군이 태권브이를 되살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태권브이 열풍의 배후에 ‘향수’가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 열기를 설명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다.
태권브이 팬클럽 ‘신화창조 태권브이’ 운영진은 ‘한국적’이라는 부분에 많은 점수를 주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홍수 속에서 한국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지킨 것은 태권브이 뿐이었다. 물론 마징가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당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이다. ‘속았다’라는
배신감과 함께 국산 애니메이션인 태권브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순차였다. 하지만, 단순한 민족 감정만으로 태권브이를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태권브이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은 캐릭터이다. 우선 태권도라는 국기를 쓴다는 것부터 그렇다. 형상도 부드럽고 친근한 편이다. 스토리도 로봇물의
호전성보다 휴머니티에 더 비중을 두었다. 느닷없이 적이 나타나고 무조건 싸워 이기는 일본 로봇물과는 달리 태권브이는 드라마틱한 성향이 강했다.
일편에 등장하는 카프박사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이다. 카프박사는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인물로, 악당에도 인간적인 면을
부여한 점은 지금 시각으로도 돋보이는 설정이다.
이밖에도 태권브이의 매력은 많다. ‘무술 하는 로봇’은 태권브이만의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이것은 일본보다 3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세계
최초였다. 주인공과 로봇이 합체가 되어 태권도로 적을 무찌르는 장면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로보트 태권브이>의
흥행 여파로 태권도장이 우후죽순 생기고, 거리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흰 도복을 입고 태권브이 신발에
태권브이 가방을 둘러맨 아이들은 태권브이 주제가를 부르며 골목을 누볐다. 태권브이를 25년이나 생생하게 살아남게 한 최고 공신이 바로 이
주제가이다. ‘신화창조 태권브이’ 운영자 김종길 씨(27)는 “3편의 사운드트랙은 월트디즈니에 버금갈 정도”라며 배경음악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태권브이가
여타 일본 로봇물과 구분되는 특별함이 존재한다고 믿는 팬들은 태권브이가 <마징가 Z>의 표절이나 아류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대해
민감하게 반발한다. 그 시기에 로봇물은 마징가가 유일했고, 태권브이는 당연히 마징가를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과 구성의 흡사함만으로
표절이라고 단정짓기에는 태권브이만의 독창성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신화창조 태권브이’ 운영자 유영훈씨(29)는
같은 모양의 컵 두 잔에 쥬스와 콜라가 각각 담긴 경우에 빗대었다. “컵이 같다고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모방에서부터
창조는 시작되는 것이다.”
태권브이 신드롬의 원인을 다른 시각에서 찾아내는 견해도 있다. 태권브이를 기억하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성인들은 현실의 ‘쓴맛’을
충분히 느낄만한 나이에 이르렀다. 이들이 어릴 때 보았던 태권브이 같은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정의가 언제나 승리했고, ‘선’은 절대 절명의
가치였다. 어린 시절의 가치가 효용이 없음을 절감하고 절망한 세대들은 휴머니즘이나 정의에 대한 그리움, 또는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태권브이’를
기억 속에서 끌어낸 것이다.
로보트 태권브이, 그 부활의 의미
새로운 태권브이 애니메이션, <2002RTV>(가제)의 제작은 386세대에게 추억의 회복이자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권브이에 대한 국민적인 애착은 태권브이가 물론 우수한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지만, 달리 기념할 만한 한국
애니메이션이 없었다는 의미도 된다.
70년대를 대표하는 <로보트 태권브이>는 당대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명작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엄청난 격차를 따라잡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한국 애니메이션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신화창조 태권브이’ 운영자 김영훈씨(29)는
애니메이션의 열악한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복리후생이 보장되는 정규직 애니메이터는 거의 없다. 박봉에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애니메이터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 어떻게
한국 애니메이션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애니메이터에 대한 부당 대우는 실력 있는 인력들을 애니메이션계에서 떠나게 했다. 업체간의 배타적 성향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오랜 하청생산 구조로 ‘기술력은 높지만 창조력은 말라버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모방이나 표절로 점철된 안일한 제작
방식이 되풀이되면서 팬들은 한국 애니메이션을 완전히 외면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하찮은 장난쯤으로 생각하는 문화 풍토 또한 결정적인 장애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나 동남아 등 후발주자들의 추격으로 설자리가 없어진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비로소 창작물로의 전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애니메이션 업계에 다가온 위기가 재기의 기회가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태권브이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태권브이 부활을 꿈꾸는 이들은 기대와 조바심이 크다. 태권브이를 되살린 씨앗은 유년의 추억이지만, 그들은 태권브이가
단지 ‘몰락한 자의 왕년에 대한 향수’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정춘옥 기자 <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