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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기의 부부, 전환점을 찾아

시사뉴스 기자  2001.10.01 0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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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부부, 전환점을 찾아



부부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 돋보이는 <터닝포인트 사랑과 이별>




평범한 일반인들의 삶을
연기자와 대본 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요즘 인기다. 이른바 리얼리티 프로그램. K2TV의 <VJ특공대>, <인간극장>,
K1TV <영상기록 병원 24시>, MTV의 <우리시대>, <칭찬합시다>, STV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터닝포인트 사랑과 이별> 들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방송은 완벽하게 연출된 구성과 영상을 내보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현실은 사실 그처럼 ‘깎고 다듬어’진 것이 아니다.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비정상적인 갈등구조나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은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 10대 위주의 쇼 오락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신의 결점을 철저하게 감추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인간적인 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시청자들은 매끄럽게 꾸며진 방송의 위선과 화려함에
대해 점차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점을 간파해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의 미담이나 잔잔한 일상, 신기하고 독특한 일들을 다루는 것이 대체적이다.

그런데 매번 치열한 싸움의 현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이색적이다. STV <터닝포인트 사랑과 이별>이 그것. 부부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다각도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이 프로그램은 심야시간대로는 상당히 높은 1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6mm에 담는 부부갈등의 현장

이혼률의 급증으로 ‘가정의 위기’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지도 오래다. 이혼을 더 이상 개인사로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부부문제는 좀처럼 드러내어 말하지 않고 외부에서 끼어들기 어렵기 때문에, 공론화 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터닝포인트>는 과감히 가정의 빗장을 열고 안방에 6mm 카메라를 설치, 부부갈등의 현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단순히 싸움만을
보여주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흥미위주의 몰래카메라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터닝포인트>는 심리분석, 사이코 드라마, 애니어그램 등의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갈등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찾으려는
노력으로 엿보기 심리를 자극한다는 초기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위기를 맞은 부부들의 일상과 관계 개선을 위한 그들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대입시키거나, 돌파구를 함께
모색해 보기도 한다.

결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상의 인물로 연출된 드라마 K2TV <사랑과 전쟁>이나, 부부의 하소연과
패널의 일방적인 조언으로 구성된 토크쇼 K1TV <아침마당-부부탐구> 같은 기존의 프로그램보다는 확실히 적극적인 방식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터닝포인트>는 몰래카메라와는 목표나 초점이 전혀 다른 관찰카메라”임을 강조했다. 당사자들에게
관찰카메라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갈등의 본질을 찾도록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웃에게도 감추는 부부 싸움의 현장을 공중파 방송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터닝포인트>는 유달리
섭외가 궁금한 프로그램이다.


섭외
요청은 많지만 상대방 설득 어려워


제작진에 의하면 처음에는 섭외가 어려웠지만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출연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난관은 존재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출연을 요청한 경우,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찍어도 좋다’는
승낙을 받고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이혼 서류에 도장을 ‘이미 찍었다’고 해서 제작진을 맥빠지게 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제작진은 기획 단계에서 출연 부부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카메라 앞에서도 거침없이 감정을 드러내 오히려 제작진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욕설이 오가는 것은 물론,
가출이 문제였던 남편은 촬영 중에도 두 번이나 가출 하기도 했다.


사회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부부갈등

부부의 갈등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지극히 사회적인 문제의 실례가 되기도 한다.

시부모 봉양문제, 성문제, 외도, 의부증, 술, 폭력, 도박 등 <터닝포인트>는 이 시대 가정의 생생한 폐부를 보여줌으로써 부부문제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를 제공한다.

사회적 성취욕으로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과 집안일에 전념하느라 접은 꿈에 대한 상실감으로 갈등하는 부부 이야기를 다루었던 7월 7일 방송은
일과 가정의 조화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지난달 9월 8일 방송은 부모 부양과 시댁과의 갈등으로 위기에 처한 부부가 출연, 핵가족화 시대를 사는 신세대 부부들의 고민과 해결방법을
찾는 시간이었다.

9월 29일 방송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남편의 진실’은 부부간의 성에 대한 열린 대화의 필요성을 생생하게 인식시켰다.

방송 직후에는 독자참여 게시판에 “내 경우와 비슷하군요.”,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형식의 의견들이 쏟아진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토대로 대안 모색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극단적인 부부의 행동이나 복잡한 갈등도 관찰과 인터뷰, 심리치료를 통해 속내를 드러내놓고 보면 ‘상처’라는 인간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굳이 휴머니즘적인 소재를 찾지 않아도 개인사의 굴곡을 보여주는 ‘감동’이 있다.


과연 그들은 ‘터닝’ 했을까

위기에 내몰린 이들 부부들은 방송 이후 실제로 ‘터닝’을 했을까? 2주에 걸친 상담과 치료만으로 해묵은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그 대답으로 <터닝포인트>는 방송 이후 부부의 모습을 방영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출연 후 더욱 깊어진 골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부부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 후 부부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시청자의 전화와 메일이 쏟아진다고 제작진은 전한다.

7월 7일 출연했던 아내는 제작진과 게시판에서 조언을 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인터넷에 남겼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저희부부는 정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생활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데 예전엔
왜 그걸 몰랐는지.”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는 리얼엔터테인먼트 TV 조한선 PD는 “가부장제 문화권에서 성장한 우리나라 부부들은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부부생활의 기본원리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며 “이 프로는 부부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터닝포인트>의 의의를 정리했다.




정춘옥 기자 <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