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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테러범을 체포하라

시사뉴스 기자  2001.10.31 0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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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러범을 체포하라!”



오사마 빈 라덴을 철저히 해부한다








지난 9·11 미 테러사태의 유력한 주모자로 지목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에 관한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난무한 가운데 그에 관한
최초의 전기가 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군사·테러 분석가로 미 의회의 대테러리즘 특별팀의 책임자이자 국제전략연구협회(ISSA)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요제프 보단스키(Yossef Bodansky)가 펴낸 ‘빈 라덴 : 미국에 선전포고한 남자’(Bin Laden
: The Man Who Declared War on America)가 그것이다. 국내에선 도서출판 명상에서 번역 출간됐다. <편집자
주>

1998년
8월20일.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대사관 폭탄테러 사건 직후, 클린턴 대통령은 이에 대한 응징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테러리스트
근거지에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성명을 통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제 테러리즘 조직자이며
재정 후원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하는 급진그룹의 조직망을 타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기실 케냐와 탄자니아 미대사관 폭탄테러는
이슬람 세력에 의한 첫번째 공격도 아니었고 가장 치명적인 사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개인을 지목해 적으로 간주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빈 라덴은 누구이고 그가 한 일은 무엇인가?


돈 많은 부짓집 아들



빈 라덴은 이제 막 40대 중반에 들어선 명민한 공학도이자 최고 명문대 졸업생으로, 4명의 아내와 15명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동부
아프간에 있는 한 작은 동굴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는 흐르는 물도 없고, 오직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막기 위한 원시적인 난방설비만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의 생활이 처음부터 이런 것은 물론 아니었다.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의 리야드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 무하마드 빈 라덴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예멘에서 이주해온 소규모의
건축업자이자 도급업자였다. 오사마는 무하마드 빈 라덴이 거느리고 있던 수많은 자식들 가운데 하나였다. 오사마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70년대에 일어난 오일 붐은 무하마드 빈 라덴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사우디 서쪽 지방인 히자즈의 개발 붐 덕분에 무하마드는 사우디의
엘리트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할 수 있었다. 고위층과의 접촉으로 인하여 무하마드는 자신의 사업체를 중동 전체에서 가장 거대한 건설회사(빈
라덴 건설회사)로 성장시킨다. 오사마는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높은 교육을 받았던 수많은 다른 고위층 가문의 자제들처럼 70년대를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동안 엄격한 이슬람 생활방식을 깨뜨리고, 종종 베이루트를 방문해 현란한 나이트 클럽과 카지노, 술집 등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는 한때 술꾼이었고 바람둥이였으며 창녀촌에도 자주 출입했다.


이슬람에 심취하다

이런 그에게 또다른 인생의 전기가 마련된 것은 73년이었다. 그 해 아버지 무하마드는 두 개의 성스러운 이슬람사원을 보수하고 재건축하면서
영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변화는 점차 아들인 오사마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때부터 오사마는 이슬람문학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지역의 이슬람주의자들과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빈 라덴이 74년부터 78년까지 다녔던 제다의 압둘 아지즈대학은 그에게 이슬람지식인들과의 교류와 연구를 폭넓게 가질 기회를 제공했다. 1979년의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빈 라덴에게 본격적인 이슬람운동에 투신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빈 라덴은 소련의 침공 이후에 가장 먼저 아프간을
찾아간 아랍인들 중 하나였다. 그는 한 아랍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 때) 나는 몹시 분노했으며, 당장 그곳으로 떠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빈 라덴은 소련의 침공 직후, 며칠이 지났을 때, 아프간의 이슬람 전사들을 도와주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달려갔다. 부족함 없이 자란 상류층의
자녀가 이슬람의 영웅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평범한 청년에서 전사로

그러나, 파키스탄을 찾은 빈 라덴을 반겨준 것은 혼란과 단결되지 않은 아랍세계의 맹점이었다. 빈 라덴은 즉시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업무에
헌신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프간 지원을 위한 신병모집운동을 전개하고, 몇 년에 걸쳐 수천명에 달하는 아랍전사들을 모집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아랍출신의 지원병들이 파키스탄과 아프간까지 이동하는 비용을 모두 사비로 부담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전사들의 훈련을 위한 훈련캠프를 세운
것은 오늘날 가장 고도로 발달된 빈 라덴의 테러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80년대 중반, 빈 라덴은 자신의 진정한 소명이 지하드(성전)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프간에서 그는 ‘대담하고 탁월한 지휘관’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86년에는 아랍 무자히딘 연대와 함께 자랄라바드 전투에 참여했다. 또한 소규모의 아랍병력을 이끌고 소련군의 화력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는 이슬람 전사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함께 참호를 팠다. 빈 라덴과 함께 전쟁터를 누비면서 싸웠던 무자히딘은
그를 가리켜 ‘용감 무쌍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89년 아프간에서 소련군이 퇴각하면서 빈 라덴의 임무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마침내 조국 사우디로 돌아간다.


사우디와의 결별

빈 라덴이 사우디로 돌아간 89년, 그는 이미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전보다 더 현명해지고 강해졌다. 사우디 정부는 빈 라덴을 이상적인
아프간 성전의 모델로 여기기까지 했다. 빈 라덴은 수많은 이슬람 사원과 집회에 나가 연설을 했고, 그의 격정적인 연설이 녹음된 카세트는
공식적으로만 25만개 이상이 팔렸다. 그는 아버지의 건설회사 제다지점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고, 가족들도 검소한 아파트로 이사시키는 등
이슬람적인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그러나 1990년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범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때까지 사우디 왕가의
충실한 신하임을 자청했던 빈 라덴은 즉시 사우디 정부를 도왔다. 그는 이슬람 국가가 소련을 아프간에서 몰아냈듯, 사우디도 사담 후세인을
확실히 격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걸프전은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에게 페르시아만의 석유 비축 규제와 쿠웨이트의 해방을 위한 싸움이었지만,
이슬람 국가들에게는 정치적인 이슬람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었다. 빈 라덴은 사우디 왕가가 당장 이라크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할지라도 오랫동안
지켜온 이슬람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빈 라덴은 무시당했다. 파하드 국왕과 측근들은 이라크의 군대가 쿠웨이트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공포에 사로잡혀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대에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그 이래로 지금까지 미군은 사우디에 머물고 있다.
빈 라덴은 즉시 이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사우디 정부는 대중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빈 라덴의 비난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부관리들은 빈 라덴에게 유리한 공사계약을 모두 파기시키겠다거나 전재산을 몰수 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가해 왔지만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걸프전이 끝나자 사우디는 외국군대가 자국 내에 영원히 주둔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제 더 이상 빈 라덴은 사우디 정부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졌다. 이제 사우디 정부와 빈 라덴은 철저히 적대관계가 되었다. 신변이 위태로워진 빈 라덴은 가족들을 데리고 새로운 이슬람교의
신앙부흥운동이 한창인 수단으로 망명한다.


본격적인
테러리스트로의 길


빈 라덴이 수단으로 망명했을 때, 핫산 압둘라 알 투라비는 이미 그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투라비는 이슬람 운동의 국제적인 성격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해외의 주요 거점에 간부와 신임하는 보좌관들을 파견했다. 92년 중반 빈 라덴은 이미 투라비의 측근 유망주로 떠올랐다. 빈 라덴은
이후 투라비의 자금세탁과, 수단의 전략적 하부구조 즉, 도로, 교량, 비행장, 군사시설 등의 건설에 자신의 사업체를 이용해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수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빈 라덴은 94년 초 북부 수단에 대규모 테러리스트 훈련캠프를 최소 3개 이상 건설하고 운영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96년까지 계속 수단에 머물던 빈 라덴은 23개의 무자히딘 훈련캠프를 건설했다. 1990년대 초 이래 빈 라덴이 행한 무수한
공헌들, 즉 이슬람의 국제 금융시스템을 조직하고, 수단에 전략군사시스템을 건설한 것 등으로 투라비와 이슬람 엘리트들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게
된 빈 라덴은 93년 경에 이르러선 이미 국제적인 이슬람운동 지도부의 최측근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러시아 마피아와 사업 파트너

현재 빈 라덴은 아프간에 위치한 자신의 동굴본부에서 이슬람주의 운동에 대한 지원금에 이르기까지 재정상태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자신의
재산이든 이슬람주의 운동자금이든 빈 라덴의 자금관리 시스템은 몇 개의 핵심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첫 번째 지역은 암스테르담과 앙비르,
그리고 룩셈부르크를 연결하는 트라이앵글인데, 페르시아만의 국가들에서 들어오는 기부금과 기타 자금들은 이 곳에서 세탁된다. 두 번째 지역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본부를 둔 극동지역이다. 극동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지역에서 유입된 돈은 모두 이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지막
이슬람주의 자금의 집결지는 옛 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독일, 그리고 동유럽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들 지역이 한데 묶인 것은 빈 라덴과
러시아 마피아, 특히 카타르와 사이프러스에서 활동하는 마피아와의 관계때문이다. 러시아 마피아는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에서의 마약, 매춘,
밀주판매 등에 관여하면서 빈 라덴과 사업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현재, 이슬람주의 네트워크의 총 자산은 서구세계에
있는 것만으로도 6억불에 달한다. 거기에 수단, 예멘, 소말리아, 아프간 등지의 은행에 있는 돈도 10억불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마다 쿠웨이트의 이슬람주의자들이 기부하는 금액이 2만불, 걸프만의 기타 국가에서 기부하는 금액이 4억불이나 되고, 탈레반이 마약유통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도 8천만불에 이른다. 빈 라덴은 이 돈을 세탁해 주면서 10~15%의 커미션을 챙기는데, 그 금액만 해도 연간 1백만불에
이를 정도다.


휴대용 핵폭탄도 구입

최근 몇달 동안 이슬람원리주의의 무장세력은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한 대형 테러공격을 적극 준비 중에 있다. 빈 라덴은 97년 가을부터 수단에서
이슬람원리주의 테러분자들이 고도의 전문작전을 수행할 특별프로그램을 지원해 왔다. 또한 98년 초여름부터 이들은 칸다하르 근처의 완벽한 비밀요새에서
빈 라덴의 지휘와 지원 아래, 생화학무기와 방사능무기를 사용한 대형 테러공격을 적극 준비 중에 있다. 알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이 가장
심열을 기울여 준비하는 무기는 ‘상수도를 오염시키는 유독물질, 인명살상용 독가스, 곡식박멸용 독버섯, 탄저균, 신경가스’ 등이다.

빈 라덴은 구소련으로부터 휴대용 핵폭탄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3백만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아랍의 한 고위급 정보원은 98년
10월 초에 “빈 라덴이 소련 붕괴 이후 수립된 중앙아시아 이슬람공화국으로부터 전술핵폭탄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의 핵무기 입수
상황에 대한 최근의 증거에 기초한 이러한 정보들은 러시아 정보부와 아랍의 몇몇 첩보망도 확인한 것이다.

현재로서 빈 라덴을 비롯한 이슬람주의자들의 운동은 그 방향이 어디로 정해져 있는지 비교적 명확하다. 빈 라덴은 그의 연설에서 코란을 움켜쥐고
말한다.

“이 책만으로는 이교도들을 패배시킬 수 없다. 이교도들에게 주먹 맛을 보여줘야 한다.”

그는 또한 <미국과 3차 세계대전>이라는 제목의 저술에서 숙명적이고 전지구적인 규모의 미국과의 성전을 묘사하고있다. 이 책에서
그는 전 이슬람교도가 궐기해 서방세계에 유린당한 이슬람교도로서 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라고 촉구한다. 그에 의하면 이슬람주의자들과 서구문명
사이에는 타협이나 공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사마 빈 라덴, 내년 6월경 사망?



구통도가 안중선 씨 예언 화제에 올라


지난 9월11일 미국
테러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온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그리고 반드시 그를 색출해 내 테러의 뿌리를 뽑아내고야
말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결코 이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물과 기름의 관계를 보는 듯 하다.
세계는 이미 이들 두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지구촌의 안녕이 달려있는 듯 하다.

지난 91년 걸프전을 비롯해 터기 대지진, 미국 대선 결과(고어가 투표에선 이기지만 개표에선 진다),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예언들을 적중시켜
화제를 뿌렸던 구통도가 창시자 안중선 씨가 최근 빈 라덴과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또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랍 영웅의 단명

안중선 씨에 의하면 빈 라덴의 주위에는 그에게 매료된 수많은 동조자들이 있어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한다. 마치 요즘 TV드라마
‘태조 왕건’에 등장하는 왕건의 경우처럼 빈 라덴은 도처에 있는 유력 인사들의 가문과 사돈을 맺어가면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


안 씨는 얼마 전 꿈에서 빈 라덴과 그의 부인들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히 보았다고 증언한다. 빈 라덴에게는 그를 마치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처럼 여기고 따르는 세 명의 아내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테러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 라덴의 첫째 부인은 눈썹이 치켜 올라간 여성이라고 한다. 그녀는 회교도 근본 원리주의자로서 일편단심형 라덴의 핵심 참모로 그에게 협조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부인은 키가 조금 작은 여성으로 반달형의 옅은 눈썹을 가졌으며 코가 유난히 크다. 라덴의 말이라면 죽음을 불사하는
순종형의 여성이다. 마지막 세 번째 부인은 눈썹이 짙고 두터운 여성으로, 회교 원리주의 운동을 본격화할 때 앞장서서 빈 라덴을 도와주던
동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빈 라덴의 운명은 어떨까? 안 씨는 도가 경전에 풀이된 바로 그의 운명을 풀어본 결과, 봉황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단명을
하게 되는 사주팔자를 타고났다고 말한다. 단명살을 끼고 태어난 사람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살상의 연속선 상에 놓여있게 된다고
한다. 안 씨는 빈 라덴이 내년 4월∼6월 경 자살하거나 사살당해 인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마지막으로 안 씨는 빈 라덴이 전생에
여인이었으며, 모하메드를 생전에 섬기던 열렬한 추종자였고, 아울러 그의 부인 중 한 사람었다고 말한다.


부시는 전생에 드래곤 피플

아랍의 영웅과 일대의 격전을 벌이고 있는 세계 최강국의 수장 부시 대통령. 그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부시의 생활은 거의 망나니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는 흔히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통과의례처럼 겪는 방탕이라는 늪에 빠져, 술과
여자, 사치와 허영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40세가 되던 86년 7월 초, 부시는 그의 할아버지의 영이 수호천사로
나타나면서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된다. 이후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정치적 역량을 단기간에 터득한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재선까지 이르는 영예를 얻게 된다. 자연스레 공화당의 대선 주자로 인정받은 그는, 급기야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전생에 꼬리에 불이 붙은 형국의 짐승이었다고 한다. 즉 드래곤 피플을 말한다. 유럽에선 드래곤을 악마의 상징으로 여긴다.
천사와 악마의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정치성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의 행적에 대한 세계 매스컴의 지면을 할애하게 될 것이다.
안 씨는 부시 대통령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게 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강해져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낼 것이라고 말한다.




장진원 기자 newsboy@sisa-news.com

 


알 카에다의 심리전(心理戰)



탄저균·핵무기 등 추가 테러 공포가 미국 등 서방 세계 휩쓸어


미국의 테러 보복 공격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오히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추가 테러에 비상이 걸렸다.

다름 아닌 탄저균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상원 의원의 민주당지도자인 톰 대슐 의원 앞으로 발송된 서한에서 탄저균이 발견돼 그의 보좌관들이
노출이 되었다. 플로리다의 신문 기업 ‘아메리칸 미디어’의 직원 5명이 13일 양성반응을 보였고 뉴욕의 NBC 방송국의 경찰관 1명과 연구원
2명도 탄저균에 감염되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탄저균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15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사무실의
우편분리실에서 탄저균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가 발견되었고, 호주 멜버른의 미국 영사관과 브리즈번의 영국 영사관 등 7곳에도 정체
불명의 흰색 가루가 든 우편물이 배달되어 직원들이 긴급 대피했다.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과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서는 14일에 정체 불명의 흰색 가루가 바닥에 뿌려진 것이 발견돼 수많은 군중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탄저균에 이어 핵무기까지?

현재로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에 의한 소행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독일 제이디에프 방송은 15일 탄저병 테러에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이집트 경찰이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 단체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고 밝히고 이들은 체코를 통해 탄저병 포자가 든 유리병을 입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또 이들이
이라크와 연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라크는 최근 미국에서 발견되고 있는 탄저균 병원체를 오래전에 개발했으며 이를 테러단체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알 카에다는 핵물질을 구입하려는 시도를 벌인 바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알 카에다가 러시아 마피아의 도움으로 핵무기로 제조가 가능한 고농축
우라늄의 구입을 시도했었다고 독일 에이알디 방송이 15일 보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스탠퍼드 대학의 군축전문가인 프리드리히 슈타인호이슬러는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알 카에다가 프라하에서 농축 우라늄의 구입을 시도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의 고농축 우라늄 수 ㎏이 프라하에서 압수된 적이 있는데 여기에 러시아 범죄조직과 벨로루시의 중개상들이 간여했다는
것이다.


장비의 열세를 심리적 우위로 만회

미국 전역은 이런 소식이 속속 전해지면서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특히 알 카에다의 대변인이 14일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를 통해
미국과 영국에 대한 대규모 추가 테러를 강력히 경고하자 미국인들은 광장과 고층건물들을 다시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알 카에다의 대변인은 미국과 영국에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를 향해 “항공기 여행을 피하고 고층 건물에 거주하지 말라”고 말해 또 다시 항공기
테러를 계획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이날 방송 화면을 대부분 입수했지만 비디오 테잎 속에 테러조직을 향한 무언의 메세지가 담겨있을 것을 예상해 짧막하게
편집해 방영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탄저병균이 알 카에다에 의해서 살포가 된 것이든 아니든, 추가 테러가 일어나든 안나든 ‘상황공포’만으로도 알 카에다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장비나 숫적으로는 절대 열세인 그들이 보복 공격을 퍼붓고 있는 서방세계보다 심리적으로는 한 수 우위를 점한 채 다음 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