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자신과는 다른 삶의 ‘희노애락’을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여성영화제’는 소외된 여성을 ‘장애인영화제’는 장애인들의 삶과 그 어려움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으며, ‘북한영화제’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북한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11월 2일부터 4일까지
동숭아트홀에서 열렸던 ‘제1회 대화영화제’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영화제를 주최하는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문화, 종교, 인종, 계층,
정치 등에서 일어나는 대화의 단절과 오해를 영화로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대화영화제’의 첫번째 대화거리는 바로 ‘미디어’다.
미디어의 폭력을 ‘폭로’하다.
<미디어 온 더 필름>이 개막되기 전 ‘미디어 테러리즘: 포럼’이 열렸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원용진 씨는 “이 시간을
통해 미디어의 폭력을 감지하지 못했음을 자성해 보고 미디어 폭력을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포럼을 시작했다. 원 씨는 미디어 폭력의
유형을 진리에의 폭력, 저항에 대한 폭력, 현실에 대한 폭력, 소수자에 대한 폭력, 물리적 폭력으로 나누고 있다. 미디어 폭력은 고도화된
도구를 통해 전달되므로 사람들이 여간해서 감지해내기 힘들며 오히려 사람들까지도 그 폭력에 동참하거나 박수를 보내기까지 한다. 원 씨는 미디어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미디어 수용자들의 외부적 ‘자극’을 주장하며 그 밑바탕이 될 수 있는 인프라와 제도 구축, 즉 사회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원 씨의 발제가 끝난 후 초청패널들은 실례를 들어가며 미디어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기 시작했다.
‘폭력에 욕지거리 하는 날’
원 씨는 <미디어 온 더 필름>을 미디어의 폭력에 당하고만 살아온 사람들이 ‘폭력에 실컷 욕지거리 하는 날’이라고 표현했다.
욕지거리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 <옥천전투>, <할리우드의 그늘 속에서>등의 영화가 있었다. 이 중
개막작인 <카메라를 든 사람>과 안티조선일보운동을 다룬 <옥천전투>가 눈에 띤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켄터키 동부의 광산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다가 그 지역 주민의 총에 맞아 죽은 오코너 감독 살해 사건을 조명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진정한 속내를 담아내지 못한 오코너의 카메라는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옥천전투>는 옥천의
‘조선바보(조선일보 바로보기 시민모임)’의 활동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로 선동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화들은
미디어 폭력의 실체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 관객들로 하여금 그 폭력을 실감케 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처음 열린 ‘대화영화제’는 좀처럼 생각지 못했던 ‘미디어’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될 수 있다. 쾌락중심의 영화흐름
속에서 이 영화제는 영화가 ‘대화’, ‘소통’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첫 회였던 만큼 홍보 부족과 진행상의 미숙함도 드러났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관객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내년에는 더 나은 영화제를 준비하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 대화거리는
무엇이 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혜선 기자<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