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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비디오아트'식 감각, 드라마는 빈곤한 <얼론>

시사뉴스 기자  2001.11.19 0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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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아트’적 감각, 드라마는 빈곤



영국의 저예산 공포영화 ‘얼론’



고독은 영원한 공포의
테마다. 처녀 홀로 사는 외딴집에 나그네가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처녀가 구렁이(혹은 귀신)었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야기 속에서 귀신은 주로 외딴 흉가에서 나타나고, 도깨비도 외딴집이 주요 활동 무대다. 이처럼 외딴집은 오래 전부터 공포의
소재로 즐겨 사용되어왔다. ‘홀로’에 대한 인간의 강박 관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캔디맨’에서 캔디맨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주인공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그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남편을
찾는다. 그러나 남편은 젊은 여자와의 외도에 빠져 있다. 공포는 캔디맨의 존재보다 고독에서 온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왜 소복 입은 처녀귀신은
언제나 ‘혼자의 눈’에만 보이는지 알만하다. 괴담에 화장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편집광의 연쇄살인 행각

‘얼론’은 공포의 고전적 소재인 ‘고독’에 관한 영화이다. 주인공 알렉스는 11살 때 부모를 잃고 홀로 산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알렉스는
친구를 찾아다닌다. 혼자 사는 여자들에게서 일방적인 교감을 느끼는 알렉스는 그녀들에게 애정을 호소한다. 하지만, 알렉스의 스토킹적 행각은
뜻하지 않게 그녀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앨리스는 알렉스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라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두 번째 여자인 사라는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바람에 질식사한다. 알렉스의
상처를 치료해준 간호사는 도망가다 차에 치이고 만다.

통상적인 헐리우드 스릴러와는 달리, 감독은 살인마의 시각에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철저하게 알렉스의 시점에서 움직이는 카메라는 편집광적인
인물의 심리를 긴박하게 포착한다. 관객과 살인자의 동화현상을 유도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라고 한다.


현란한 기교에 비해 스토리는 엉성

하지만 아쉽게도, 카메라 워킹만으로 ‘동화’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은 무리다. 알렉스의 고독은 음울한 나레이션과 과거에 대한 조각 조각의
그림으로만 설명되어질 뿐,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전제되어 있지 않다. 형식만 철저한 1인칭 시점이지, 내용으로는 헐리우드 슬래셔 무비의
살인마와 다를 바 없다. 연쇄살인 행각을 벌이는 알렉스의 배경에는 부모의 학대와 폭행이 있었다는 것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식상한 설정이다.
알렉스를 쫓는 콤비 형사 캐릭터도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실상 고독이 아니라, 귀청을 찢는 음향에 대한 짜증이다. 24살의 영국 감독 필 클레이든은 반복되는 편집이나 푸른색
톤의 조명으로 현란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감독의 감각은 비디오아트적인 것이지 스릴러적인 것은 아니다.

‘얼론’은 저예산 영화이면서도 메이저 영화를 답습하며, 영국 영화적인 전통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헐리우드 영화의 형식을 상당부분 차용함으로써,
젊음을 ‘흉내내는’ 영화에 그쳤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