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인문학] 공동체 살리는 ‘전통풍수의 지혜’

2018.06.02 21:13:04

이상사회 꿈꾼 마을공동체로의 지향은 현재진행형


[시사뉴스 정승안 교수]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의 ‘도시재생’사업들이 활기를 띄고 있다. 기존의 도시재개발과정에서 진행됐던 대부분의 사업들은 낙후지역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철거’와 ‘재개발’을 통한 부동산개발정책으로 귀결됐다. 지역의 유력자들과 건축개발업자들 간의 결탁은 부동산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져왔다.


도시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서울에서 대표적이었던 ‘난곡’에서의 재개발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래, 결과적으로 지역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도시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하락시켜왔던 주범은 기존의 부동산과 재개발관련 정책들이었다. ‘도시재생’은 이러한 개발지상주의를 넘어서 공공성에 주목하고자 한다지만 기존의 도시계획을 중심으로 하는 개발논리에 ‘공공임대’아파트를 더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획기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간을 대하는 원리, 풍수지리에서도 도시계획의 지혜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죽은 정승보다는 살아 있는 개가 낫다’

난개발의 표상이 되고 있는 마을들은 아직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을 통해 전국에서 피난민이 몰려들었던 부산지역에는 아직도 ‘돌산마을’, ‘무덤마을’, ‘벽화마을’, ‘문화마을’로 불리는 곳들이 남아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서는 삶과 죽음을 대립적으로 이해하지 않아왔다지만 여전히 ‘죽은 정승보다는 살아 있는 개가 낫다‘는 속담처럼 ‘현세지향적’인 삶의 태도가 일상생활 곳곳에 남아있다.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위기사회에서는 삶의 불확실함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칼 마르크스(Marx)는 종교가 현실의 고통을 순간적으로 회피하게 만드는 ‘아편’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지만, 예측 불가능한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기능적 중요성은 심리적 위안기능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다양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서구의 르네상스 시기만큼이나 급변했던 19세기의 한반도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정신문화와 종교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많은 사회사상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1860년대 동학을 시작으로 펼쳐졌던 수많은 민족종교들의 등장은 오늘날에도 재조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과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회개혁 요구는 ‘개벽’으로, 경세가들이 추구해야 하는 지침으로서의 ‘제세구민’의 주장들로 남으면서 오늘날 신종교들에게서도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정작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이러한 신종교들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조직된 힘으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무라야마 지준은 1935년에 발간된 『朝鮮の類似宗敎』에서 민족종교를 5계파 66교로 분류하여 조사하고 통제했다. 1936년에는 조선총독부가 ‘유사종교해산령’으로 다양한 민족종교들에 대한 탄압을 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희망과 꿈을 담은 예언과 도참의 보물상자, ‘정감록’

혼란과 위기사회의 보편적 징후들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때 민초들이 위기타파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의지했던 것들 중에 수많은 도참(圖讖)과 예언(豫言)서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우월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 ‘정감록(鄭鑑錄)’과 ‘토정비결’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민초들의 삶과 일상에서 구전되던 정감록을 ‘금서(禁書)’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1923년에 정감록이 최초로 공식 출간된 곳이 일본에서 ‘호소이 하지메’라는 일본인에 의해서였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민초들의 저항의지가 표출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사회비판적인 내용과 ‘혁명성’을 제거한 형태로 간행하였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정감록은 이본과 판본의 종류만 해도 40여종에 이른다. 정감록에서는 혼탁한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정도령’과 같은 ‘진인(眞人)’이 출현할 것이라는 사상과 재난과 병화를 피해 살 수 있다는 ‘십승지(十勝地)’론이 주를 이룬다. 물론 조선왕조가 내우외환으로 세 번 단절될 운수라는 ‘삼절운도설(三絶運度說)’, 새로 등장하는 왕조는 ‘계룡산(鷄龍山)’을 도읍으로 삼을 것이라는 ‘천도설(遷都說)’도 포함된다.


이러한 도참과 예언의 내용들은 여러 번의 사회혼란기에 민란과 혁명을 시도하는 세력들에게는 단골소재이자 주요한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 동학혁명 당시 손화중이 고창 선운사의 ‘미륵’불의 배꼽에서 꺼냈다는 비결의 논의에 이르면 사실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정감록의 신비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후 ‘弓弓乙乙’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총탄을 피해갈수 있다는 ‘부적(符籍)’으로까지 활용되지만 ‘태극’의 의미에서 종교적 ‘기원’, ‘피난처’에 이르는 다의적 해석을 가능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상징’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학적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정감록은 예언과 도참의 보물상자이다. 여기에는 음양오행론과 점성술, 풍수지리의 관념은 물론 미륵신앙의 관념들까지 자연스럽게 융합된다. 19세기에는 기독교적인 요소까지 깊이 결합된 판본들도 등장한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진행된 ‘가필’과 ‘첨삭’, ‘수용’의 과정은 오늘날 ‘위키피디아’의 아이디어를 지면에 구현한 것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취향과 종교를 불문한 ‘술수사회학’의 핵심요소들을 두루 망라하고 있는 정감록을 가히 한국사상의 보고이자 ‘한국사회사상의 백과전서’라고 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 십승지, 정감록의 유토피아인가

정감록을 비롯한 도참서들에는 인간공동체가 거주하는 마을의 입지분석에 해당하는, 집과 마을을 선택하는 원리로서의 ‘풍수지리’ 사상이 일관되게 반영되어 있다. 궁궐과 관아의 입지선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전통적 공간관념을 넘어서 ‘병화(兵禍, 전쟁)’와 ‘흉년’을 피해 보신할 수 있는 땅을 추구했던 논리로서의 십승지의 관념에는 민초들의 일상과 삶의 위기타파를 위한 절박한 염원이 반영되어 있었다.


일제의 지배와 수탈이 심해지던 시기에 십승지 마을을 찾아 이주를 시작했던 대표적인 곳이 경북 영주 풍기(豐基)읍 일대이다. 1980년대의 조사에서 전체의 35%가 평안도와 함경도, 강원도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왔다는 실증조사는 ‘금계리’ 마을 일대가 이른바 ‘감결촌’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수탈과 억압을 피해 ‘유토피아'를 찾아 나섰던 행렬은 정감록의 비결, 십승지를 찾아 나선 길이었던 셈이다.


비결서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열 곳의 살기 좋은 마을은 ‘영주 풍기읍’, ‘봉화 춘양면’, ‘예천 용문면’, ‘상주 화북면’, ‘합천 가야면’, ‘공주 유구읍’, ‘무주 무풍면’, ‘부안 변산면’, ‘남원 운봉읍’이 해당한다. 최근에는 ‘조선 십승지 읍면장 협의회’가 구성되어 매년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감결’에 대한 믿음과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마을공동체에의 지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정승안 교수 sovo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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