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돋보기】 기억의 시각화를 넘어 청각화 시네마틱 사운드 오디세이 <메모리아>

2022.12.26 14:42:19

미스테리한 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한 여성이 어느 밤에 ‘쿵’하는 미지의 소리를 듣고 그 근원을 찾아 다닌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처음으로 모국 태국을 떠나 해외 로케이션에서 할리우드 배우와 함께한 장편 영화다. 틸다 스윈튼이 출연했으며, 제7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3차원 스크린의 체험

 

입원한 동생을 만나기 위해 콜롬비아 보고타를 찾은 제시카는 수면 중 머릿속을 울리는 큰 폭발음을 듣고 잠에서 깬다. 이후로도 몇 차례 ‘쿵’하는 소리를 듣지만 그때마다 세상은 고요하고 아무도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운드 엔지니어를 찾기도 하고 환청을 의심해 병원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불면의 밤이 계속되던 중 숲길을 걷던 제시카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신비한 남자 에르난을 만난다. 

 


인류의 기록을 간직한 자연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로 미스터리한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 담긴 콜롬비아의 절경은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기억의 시각화를 넘어 청각화되는 과정을 정교한 사운드 효과로 담았다. 전작과 달리 태국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서 벗어나 있지만 콜롬비아의 숲이 태국의 정글을 연상시키듯 <메모리아>는 결국 전작과 닮은 지점으로 관객을 이끈다. 비선형적 서사 구조, 자연을 담은 압도적인 미장센, 정적인 슬로우 테이크 등 독보적이고 실험적인 연출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특히 사운드로 형상화된 3차원 스크린의 체험을 존재론적 탐구와 신비로운 영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영화의 음향 효과는 제작진의 철저한 계산과 구성으로 완성됐다. 가장 주된 ‘쿵’ 소리를 포함한 도시와 자연의 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각 시퀀스에 맞춰 정교하게 제작됐다. 제시카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그녀의 방 창문을 넘어 저 멀리 산맥을 통해 오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하고 강렬한 소리는 19세기 후반에 최초로 녹음된 파일을 겹겹이 쌓아 사용됐다. 

 

 

 

틸다 스윈튼의 독보적인 아우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첫 장편 <정오의 낯선 물체>(2000)로 영화계에 충격을 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친애하는 당신>(2001)으로 제55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대상, <열대병>(2004)으로 태국 영화 최초로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엉클 분미>(2010)로 데뷔 10년 만에 제63회 칸영화제 최고 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주연을 맡은 아카데미 수상자 틸다 스윈튼은 독보적인 아우라와 연기력으로 작품마다 영화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영국의 실험주의 감독 데릭 저먼의 <카라밧지오>(1988)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에드워드 2세>(1991)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토니 길로이 감독의 <마이클 클레이튼>(2007)으로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영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이후 웨스 앤더슨, 짐 자무쉬, 코엔 형제, 루카 구아다니노, 봉준호까지 세계적인 거장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메모리아>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사단이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작품을 함께해온 촬영 감독 사욤브 묵딥롬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서스페리아> 촬영 감독으로 참여해 두 작품으로 인디펜턴트스피릿 어워드에서 연속으로 촬영상을 수상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아크릿차람 깔라야니밋은 <메모리아>를 통해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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