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돋보기】 뒤집힌 호화 크루즈 <슬픔의 삼각형>

2023.05.26 10:02:39

노골적인 풍자, 유머 가득한 우화 …계급 전복 코미디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과 다양한 직업의 부자들을 태운 호화 유람선이 전복되고 8명의 생존자는 무인도에서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간다. <더 스퀘어>에 이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더 스퀘어>에 이은 현대의 남성성을 탐구하는 3부작 시리즈 중 완결판이다.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조롱하다


영화는 총 3부로 구성된 구조로 1부에서 모델 커플인 칼과 야야의 갈등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경제력과 권력은 전통적 젠더 계급을 뒤집은 것이지만 여전히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패션산업과 젠더 갈등 등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순과 한층 복잡해진 현대 시대의 계급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1부의 메시지는 칼과 야야가 협찬으로 승선한 초호화 크루즈의 풍경을 그린 2부로 이어지면서 보다 선명해진다. 부자들의 역겨운 위선과 그들의 과잉 소유와 소비에 대한 감독의 조롱과 구토로 가득한 2부는 1부와 함께 3부를 위한 빌드업이다. 3부에서 흥미진진한 계급적 전복이 일어나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무인도 표류를 통한 계급 전복을 그린 배리의 희곡 <훌륭한 크라이턴>(1902년)과 여기에 젠더 권력 문제를 더한 베르트뮐러 감독의 코미디 <귀부인과 승무원>(1974년) 등이 떠오르는 설정이다. 원초적 세계 속에서 계급적 전복이 어떻게 일어나며 또 어떻게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가는지를 코미디로 그린 이들 작품과 같은 방식으로 <슬픔의 삼각형>은 인간의 속성을 파헤친다. 


거칠고 노골적인 상징들은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일 수도 있다. <슬픔의 삼각형>은 탄탄한 구조 속에 세련된 비유들을 맛보는 영화가 아니라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조롱하는 쉽고 직설적인 영화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귀족의 천박함에 대한 비판은 더 이상 날카로울 것도 없이 반복돼온 이야기지만, 우리가 다 알고 다 느끼는 현실을 시원한 유머로 풍자하고 전복의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계급적 욕망과 위선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평등을 꿈꾸는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번번히 그것은 공허한 허상일 뿐이다. 뒤집어져도 굳건히 그 모양을 유지하는 삼각형처럼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계급적 욕망과 위선의 속성을 그린 이 영화의 메시지는 새롭지 않아도 여전히 살아있는 화두임에는 분명하다. 


나아가서 <슬픔의 삼각형>은 공산주의 실험에 실패하고, 페미니즘의 모순에 직면하고, 다양한 정치적 시도들이 모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다 더 이상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게 된 현대인들의 전 지구적 자조와 농담 그 자체로 해석된다. 무인도에서의 계급 전복이라는 새롭지 않은 소재를 다른 맛으로 곱씹게 만드는 이 영화의 힘은 인간은 별 수 없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이 만연한 세상과 진보를 포기한 시대적 분위기에 있다. 이 시의적절함은 <슬픔의 삼각형>이 가진 결정적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과감한 유머들이 단점들을 커버하고 147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잊게 만든다. 정신없이 웃긴데 슬픈 감정을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로 극장을 나와서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안겨준다. 

 

 

야야 역의 살비딘은 실제 탑 모델 출신으로 <슬픔의 삼각형>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해 호평을 받았으나 영화 공개 후 얼마 뒤 세균성 패혈증으로 32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칼 역의 해리스 디킨슨은 <말레피센트 2>,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마티아스와 막심> 등을 통해 알려진 영국 배우로 감독은 ‘못생김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고 캐스팅 이유를 말했다. 에비게일 역의 돌리 드 레온은 30편 이상의 연극 작품과 다양한 TV 시리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온 필리핀의 베테랑 배우로 뛰어난 연기력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더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선장 토마스역에는 <헝거게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쓰리 빌보드> 등으로 알려진 우디 해럴슨이 맡았다. 아카데미 3회 노미네이트, 골든글로브 4회 노미네이트 등의 타이틀을 자랑하는 헐리우드의 대표 배우 중 하나인 우디 해럴슨은 독특한 캐릭터에 존재감을 부여한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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