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명환 기자] 조선업계가 수조 원에 달하는 적자로 지난해부터 인력 감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조선업체기가 밀집된 경남 거제지역에서 협력업체 대표와 실직한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전국에서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12일 조선업계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거제시에서 조선업 관련 노동자는 모두 8만 913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직영, 사내하청, 외부 하청업체 노동자를 모두 포함한 규모로 대우조선 4만 7631명, 삼성중공업 4만 1502명이다.
그동안 대우조선해양 노조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가 조선소의 계약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연내 최대 2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기는 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같은 분석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어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글로벌 경제 악화 등에 이유로 국내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이 4월 ‘수주 제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수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한 해양플랜트를 중심으로 일감이 빠져나가고, 그에 따라 기간제 노동자가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거제시의 조선업 관련 노동자 수가 6만 7102명으로 3월 말보다 24.7%(2만 2,031명)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3월까지 예상되는 실직자 수는 현재 30.5%인 2만 7257명이다
실제 지난해 1만5000여 명이 일자를 잃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중대형 9개 조선사에서 고용한 조선·해양 분야 인력은 2014년 20만4635명에서 지난해 19만5000여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14년과 2015년 수주받은 물량이 내년까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조선업계에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발표한 조선업계 구조조정에 대해 “기업에 체감할 수 없는 정책만 발표하고 있다”면서 “밀어붙이실밀어붙이식 정책들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압박 못 이겨…벼랑 끝에 내몰린 직원
실제 무분별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최근 삼성중공업의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소속 김 모 씨(43)와 정 모 씨(34)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1일 오전 6시 15분쯤 경남 거제시 서문로 아파트 화장실에서 A씨(38)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남 거제경찰서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의 사내협력업체(하청업체)인 ㅅ 기업에서 2008년부터 최근까지 협력업체의 작업반장으로 근무한 정 씨는 조선업계 일감이 줄면서 작업반이 2개 반에서 1개 반으로 축소되고, 직급도 반장에서 조장으로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지난 10일 오전 11시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당시 현장을 최초 발견한 정 씨의 부인은 경찰진술에서 “11일 새벽 2시께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남편과 함께 잤는데, 아침에 남편이 보이지 않아 찾다가 화장실에서 숨진 남편을 발견했다”며 “잠 자기 전남편이 ‘회사에서 말렸지만, 사표를 냈다. 돌아가신 형님 옆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오후 3시 50분쯤 삼성중공업 내 컨테이너 선박 작업장에서 사내협력업체 S 기업 소속 김씨(43)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선박 블록에서 용접 등의 작업을 하는 현장직 근로자다. 경찰은 김씨가 목을 매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유서 등을 남기지 않았으나 “김씨가 채무 관계로 힘들어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구조조정 등 회사 업무와 관련해 자살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정확한 사망 원인은 좀 더 조사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 경기불황과 이에 따른 신분 변동과 불안 등이 정 씨를 심리적으로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과 회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 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경습 삼성중공업 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은 시사뉴스와의 통화에서 “사내 조직개편 때문에 스스로 필요 없는 사람이 됐다는 마음과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겹쳐 스스로 사직서를 내게 된 상황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조선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조선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조선 노동자의 70%에 이르는 하청노동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부 고용유지지원금 대부분이 정규직 지원에 사용되고, 정작 4대 보험 가입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물량팀(단기 비정규직)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내쫓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남 거제·통영·고성 등 3개 시·군엔 8개 조선 원청업체가 있으며, 이들 원청업체의 협력업체는 482곳, 협력업체 소속 하청노동자는 6만5800여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