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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과 사람] ‘희대의 참사’ 그 저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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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명 유가족과 생존자의 회고를 담은 구술집 ‘1995년 서울, 삼풍’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1995년 6월29일 오후 5시57분, 서울시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한국전쟁 이후 단일 사건 최대 사상자를 초래한 이 참사로 502명이 죽었고, 937명이 다쳤다. 하지만 이렇게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삼풍백화점 참사의 풍경은 충분히 그려지지 않는다. 이 책은 개인의 아픔이 단순 숫자가 되는 외연적 관점의 역사관을 넘어, 그들의 기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그래서 익명의 다수가 아닌 개인이, 숫자가 아닌 삶이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탄생시켰다.


현장 구석구석의 이야기
 
 서울문화재단은 재난의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 하는 방식으로 구술 기록을 수집했다. 5명의 ‘기억수집가’가 2014년 10월7일부터 2015년 7월30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총 108명을 인터뷰했다. 책에는 59명의 구술이 실렸다.
 책에 실린 구술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시루떡 형태로(당시 도봉소방서 경광숙 씨)” “착착 포개져(유가족 허재혁 씨)” “지하로 쑥 내려가(유가족 김문수 씨)” “폭격에 맞은 듯한(당시 조선일보 기자 홍헌표 씨)” 모양이었다고 한다.
 삼풍백화점 직원들은 붕괴 전에 “이러다 백화점 무너지는 거 아냐?”하는 농담을 주고받았고, ‘오후 5시55분 붕괴의 순간’에 삼풍주유소 직원은 갑자기 다닥다닥 깨지던 백화점 유리창을 지켜보다가 불과 몇 초 만에 백화점이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한다.
 책의 1장~3장, 230여 쪽에 걸쳐 59명의 참사의 당사자 구술을 읽다보면 참사의 풍경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붕괴 현장에서 골프채를 훔치는 좀도둑을 잡은 경찰, 취재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기자, 자녀에게 끝끝내 참사 경험을 숨기고 마는 생존자, 매몰된 부상자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119구조대원, 소방 호스로 구조대의 옷에 밴 시신 냄새를 씻겨준 자원봉사자, 600여 구의 시신 지문을 발췌하던 경찰, 토막 시신이 널브러진 붕괴 현장에서 말을 잃은 민간구조대, 브래지어로 시신의 성별을 구분했던 의료진, 실종자 가족 대표를 뽑는 절차를 만들었던 서울시 공무원, 꺼림칙한 기분에도 자리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매장 직원, 적용죄명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던 검사, 난지도에 버려진 발가락 시체를 붙들고 꺼이꺼이 울던 유가족, 딸의 보상금을 가지고 소식을 끊은 사위까지…. 59명, 개인들의 기억으로 재구성된 ‘경험담’을 읽다 보면 장마철이었다는 참사 당시의 축축한 공기가 코끝에 닿는 듯하다.
 
객관적 자료 첨부


책에 실린 30여 장의 참사 현장 사진은 우리 눈에 익숙한 구도의 보도 사진이 아니다. 서초소방서와 구술자 이종관 씨(당시 대한 건축사협회 이사, 특별대책점검반)가 찍었던 참사 당시 ‘기록용 필름 사진’은 현장감 넘치는 다큐멘터리 느낌이 강하다. 독자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참사 현장의 컬러 이미지를 속속들이 볼 수 있다.
 ‘붕괴의 책임과 처벌’에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백서를 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수사하게 된 검사와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의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그가 송치된 의왕구치소로 찾아간 서울시 공무원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부록: 기억의 재구성’에는 상세한 사건개요와 사고에 관한 판결문, 보상금 및 사건발생비용 등의 객관적 자료가 있어 책이 단순 구술집의 장르를 벗어나 ‘기록’ 본연의 의미에 더욱 가까워졌다. 또한 독자들이 사건에 관한 일련의 객관적 자료에 접근하는 데 용이하다.
 ‘2장 살아서 돌아오다: 생존자의 기억’에는 43쪽에 걸친 생존자 5명의 상세한 구술이 실려 있다. 삼풍백화점 내 호화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삼풍 아트홀’ 관장이었던 주성근 씨의 구술을 읽다 보면 당시 삼풍백화점의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한눈에 그려진다. 피범벅이 된 삼풍백화점 유니폼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생존자 박은희(가명) 씨는 매장에서 일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경우인데, 이후 구조 현장에서 다른 삼풍 직원 생존자들과 지속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3장 남겨진 사람들: 유가족의 기억’에는 73쪽에 걸친 유가족 5명의 구술이 담겨 있다.




‘개인의 기억’을 ‘사회적 기억’으로


 ‘4장 ‘사회적 기억’으로 가는길’에는 삼풍백화점 참사의 사회적 시대적 의미를 짚어본다. 박해천 동양대 공공디자인학부 교수, 정윤수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등의 비평이 실렸다. 박해천 교수의 글에서는 1990년대 서울의 백화점이라는 ‘장소성’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며 정윤수 교수의 글에서는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참사위령탑 현장 답사기를 통해 ‘사회적 기억’과 ‘기억의 장소성’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기록물이 한국 사회의 기록 문화를 풍부하게 했고 이에 화답하듯 출판계에도 ‘기록’과 ‘당사자성’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고’ 혹은 ‘사건’은 결코 그 당사자만의 불행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공론장에 펼쳐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움튼 것이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구술자는 무려 21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구술자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아물지 않았고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에 ‘아픈 기억을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하지만 기록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이들의 ‘청자’가 됐다. ‘들어주는 행위’가 매정한 망각에 빠진 사회에서 묵묵히 21년을 버틴 당사자의 기억을 매만졌다. 화자와 청자, 이 관계성 덕분에 21년 전의 기억이 공론장으로 겨우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기억 속 잔상에는 이들의 모습이 충분히 그려진 적이 없을까. 왜 그저 ‘기적적인 생환자’, ‘부실공사 단죄’와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말초적인 뒷이야기만 물씬물씬 떠오를까. 우리의 ‘집단 기억’에 있어 삼풍 참사는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잊혀진 것일까. 이것은 책이 280페이지에 걸쳐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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