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한 순간의 정지된 영상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것은 사진의 묘미다. 특히 사건과 사람, 현장의 이야기를 쉼 없이 따라다니는 보도사진은 이 같은 사진의 묘미가 극대화 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한 ‘서울외신기자클럽 사진전’과 지구촌 곳곳의 풍경과 사건을 담은 ‘로이터 사진전’이 잇달아 열렸다. 사진의 창으로 역사와 세계를 돌아보는 의미 깊은 전시다.
한국의 변화상을 한눈에 보다
서울외신기자클럽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난 14~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보도사진전을 개최했다. 서울외신기자클럽은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1956년 9명의 발기인으로 출범한 단체다. 이번 전시회는 AP 김천길, 로이터 정태원, 윤석봉 등 원로기자들을 포함해 현역에서 활동하는 27명의 외신 사진기자들이 참여해 70여점의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의 묘미는 한국의 주요 사관과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익숙하고 낯익은 사진이 상당히 많다. 그만큼 굵직한 사건들을 포착한 대표작들이 많다는 의미기도 하다. 전 로이터 정태원 기자의 ‘이한열 최루탄 피격’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열린 2016 이한열유물전에 전시되기도 했다. 이한열 군이 머리에 최루탄 파편을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동료 학생이 구출하는 이 유명한 사진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정태원 기자는 이 사진에 대한 저작권을 이한열기념사업회 후원금으로 보내고 6월항쟁 관련 사진을 기부하는 등 자신이 담은 사진의 역사적 의미를 동감하고 동참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 AP 맥스 데스풔(Max Desfor) 기자의 ‘South Korea The 60 Year War’도 전시됐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한 맥스 데스풔는 붕괴된 대동강 철교에 달라붙어 강을 건너려 안간힘을 쓰는 피난민의 처참한 모습을 담은 이 사진으로 그해 퓰리처상 수상했다.
전 AP 김천길 기자의 대표작인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장군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전시됐다. 차지철, 박종규 등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지지 시가행진을 바라보는 이 사진을 비롯해 김천길 기자는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기록해왔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을 담은 윤재형 기자의 ‘SOUTH KOREA COLLAPSE’, 가라앉은 세월호의 모습을 포착한 로이터 김홍지 기자의 ‘KOREA-SHIP’ 등 비극의 기록도 생생하다.
지구 구석구석의 일상과 사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9월25일까지 세계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로이터통신사의 주요 사진 작품을 소개하는 ‘로이터사진전’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는 부제가 붙었다.
로이터社 본사의 협조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600여명의 로이터 소속기자가 매일 1600여장씩 제공하고 있는 사진들과 로이터社가 보유한 1300만장 이상의 아카이브 자료 중에서 엄선한 440여점의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1851년부터 현재까지 160여년동안 모인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삶과 다양한 시각의 사진들 중 엄선한 사진들로 기획된 ‘로이터사진전’은 20세기 발생한 굵직한 지구의 사건들을 담은 기념비적인 사진들을 비롯해 로이터가 포착한 역사적인 순간들,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감정의 기록 등 다양한 컨셉의 사진이 전시됐다.
호정은 큐레이터는 “로이터社와 함께 사진셀렉에 매우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전시인만큼 다양한 관람객들이 로이터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보며 세상을 담은 한편의 드라마를 감상하듯 전시를 관람했으면 한다”라며 전시의도를 전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동독 공산당 서기장으로 재선된 에리히 호네커에게 우정의 포옹과 입맞춤으로 축하 인사를 하는 순간, 한 시위자가 베를린 장벽을 때려 부수는 모습 등 역사적인 사진들의 나열은 드라마 그 이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2015년 11월16일 파리에서 11월13일 금요일에 일어났던 치명적인 테러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에펠탑 앞 트로카데로에 정적이 흐르는 순간, 터키와 그리스 사이 에게해의 그리스 코스섬 인근 해역에서 시리아 난민을 가득 태운 작은 배가 엔진 고장으로 표류해 있는 고독하고 절박한 분위기 등을 담은 사진들은 최근의 세계 이슈를 보여준다.
영국 서부 말버러 인근의 블루벨로로 뒤덮인 숲속,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 상공의 별들 사이로 유성이 긴 꼬리를 흔들며 밤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풍경, 하늘에서 내려다본 유럽의 정원으로 불리는 쾨켄호프 공원 인근 꽃밭의 모습 등 아름다운 자연도 감상할 수 있다.
지구 곳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들의 일상과 희로애락을 담은 사진들은 여행을 하는 듯한 흥미로움과 동시에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과 감동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