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전기자동차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전기차를 출시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한국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한층 더 달아오르는 형국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등록된 전기차 수는 1427대다. 지난해에는 2945대가 등록됐다. 연간 신규등록차량이 150~180만대에 이르는 국내 자동차시장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2013년과 2014년에 등록된 전기차가 각각 614대, 1315대였던 것에 비하면 연간 두배 이상씩 늘어난 수치다.
현재 국내에서는 총 7종의 전기 승용차가 판매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준중형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기아자동차가 크로스오버차량(CUV) ‘쏘울 EV’와 ‘레이 EV’를, 르노삼성이 준중형 세단 ‘SM3 Z.E.’를, 한국GM이 경차 ‘스파크 EV’를 선보이고 있다.
2012년에 출시된 레이 EV와 2014년 출시된 쏘울 EV는 각각 1335대, 1925대 판매됐다. 2013년에 출시된 SM3 Z.E.가 약 1967대 판매됐으나,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스파크 EV는 판매량이 7월까지 320대에 그치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쏘울 EV가 148㎞, SM3 Z.E와 스파크 EV가 135㎞, 레이 EV는 91㎞다. 가격은 쏘울 EV와 레이 EV, SM3 Z.E.가 4000만원대이며 스파크 EV가 3000만원 후반대로 가장 저렴하다.
수입차 업체 중에서는 BMW가 1회 충전 시 132㎞ 주행 가능한 준중형차 ‘i3’를 6000만원 안팎에 선보이고 있으며, 2014년부터 지난달까지 총 623대를 팔았다. 닛산은 전 세계에서 23만대 이상 판매된 전기차 세계 판매 1위인 ‘리프’를 2014년 말부터 판매 중이나 국내에서는 약 140대밖에 판매되지 않았다. 리프는 1회 충전 시 132㎞ 주행할 수 있으며 가격은 5000만원 안팎이다.
‘아이오닉’ 판매 호조, ‘테슬라’ 진출… 시장 확대 가능성 보여주나
이렇듯 전기차 판매량은 국내 전체 자동차 시장 규모에 비하면 매우 미약하다. 하지만 지난 6월 현대차가 출시한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출시 두 달 만에 700대 이상 판매되는 저력을 보이며 국내 전기차 시장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는 올해 7월까지 등록된 전기차의 약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가격은 다른 국내 전기차와 비슷한 수준인 4000만원대이나,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91㎞로 국내 시판 전기차 중 가장 길다.
최근에는 국내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 테슬라가 전기차의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주행거리를 크게 늘린 신형 배터리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지난 8월24일 블룸버그 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컨퍼런스에서 공개한 신형 배터리는 1회 충전에 482㎞를 주행할 수 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 주행거리의 2.5배가 넘는 수준이다.
테슬라의 신형 배터리는 내년 초 국내에 출시하는 세단 ‘모델S’와 SUV ‘모델X’에 장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모델S와 모델X의 주행거리는 다른 전기차에 비해 획기적으로 증가함은 물론 가속도 역시 대폭 개선된다. 모델S의 최상위버전인 ‘P100D’의 경우 2.5초 만에 최대 96㎞를 낼 수 있는데, 이는 페라리의 ‘라페라리’와 포르셰 ‘918 스파이더’에 맞먹는 속도다. 이에 대해 머스크 CEO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가 역사상 처음으로 전기차가 된 순간”이라며 “앞으로 우리는 휘발유차량을 증기차를 보듯이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국내 전기차 경쟁력보다 2년 이상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테슬라의 진출로 전기차 시장이 활기를 띌 전망이다. 테슬라는 이미 지난해에 테슬라코리아 국내 법인 등록을 마쳤으며 올 연말께에는 매장을 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모델3’에 한국타이어 제품을 장착하기로 하는 등 각종 부품 조달을 위해 국내 업체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글 홈페이지를 열고 모델3와 모델S, 모델X의 사전예약을 시작하기도 했다. 모델3의 경우 100만원, 모델S 200만원, 모델X는 500만원의 예약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뜨거운 관심을 드러냈다.
높은 가격 · 부족한 충전소, 보급 확대까지는 과제 남아
지난 7월부터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200만원 더 올린 14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 450만원, 충남 천안시 500만원(2018년부터), 전라북도 600만원(2017년부터) 등 각 지자체들도 보조금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 시판 전기차 중 가장 저렴한 스파크 EV의 경우 경차임에도 가격이 대형차인 현대차 그랜저, 기아차 K7, 쉐보레 임팔라, 르노삼성 SM7를 웃도는 수준으로, ‘높은 가격’이 지적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테슬라의 경우에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 자격을 위한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류 절차만 밟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전기차 보급 대상 평가 규정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충전 시간이 10시간 이내(7㎾h 완속충전 기준)여야 하지만 테슬라의 모델S와 모델X는 충전 시간이 10시간 이상 걸릴 수 있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전기차들은 ‘높은 가격’이라는 단점을 보조금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지만, 이외에도 충전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전기차 보급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산업의 전기동력 자율주행화 가속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현재 전국 평균 17.1대의 전기차가 한 개의 충전기를 쓰고 있지만 미국은 2대당 한 개꼴로 구축됐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업계는 “앞으로 전기차가 점차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시장 확대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이 연구위원도 “테슬라가 국내에 들어와도 고급차 위주인 만큼 살 사람 많진 않을 것”이라며 “충전기 구축 등이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판매 호조와 테슬라 진출 등으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단점으로 지적되는 ‘높은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은 국내에서 전기차 수요가 단기간에 확대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