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규모 5.8의 역대 최대 지진과 4.5의 여진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경북 경주 일대 양산단층에 밀집된 원전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번 지진 진앙지는 월성원자력발전소와는 27km, 고리원자력발전소와는 50km 떨어진 지점이다. 이 일대에는 노후 원전을 포함해 핵발전소 6기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있다.
내진설계 믿을 수 있나?
지진에 따른 원전의 안전성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정부는 내년 말까지 국내 원전의 내진설계를 규모 7.0으로 보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고리 월성원전 내진설계는 규모 6.0으로 설계됐으나 정부는 6.5까지 보완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신과 불안은 여전하다. 주승용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대행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부가 국내 원전에 규모 6.5 지진에 대비한 내진 설계를 적용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원전의 내진설계가 아니라 실제 어느 정도의 지진을 견디는지 평가를 해야 한다. 내진설계는 설계일 뿐이며 시공과는 다른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내진설계 평가에는 설비의 노후화를 반영하지 않았으므로 오래된 원전일수록 내진설계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 연쇄 폭발의 경우 견고한 안전시스템이 동작해 규모 9.0에도 문제가 없었으나, 15m의 해안방벽도 막을 수 없는 23m의 쓰나미에 침수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으나 비상 발전기가 침수되면서 망가졌고, 내부의 수많은 배관이 부서졌다. 구조물뿐만 아니라 케이블과 배관 등도 지진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므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단순히 내진 설계만으로 안전이 확보됐다 안심할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과거 데이터, 안전의 절대 기준 아니다
내진 설계 7.0이 '안일한 기준'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규모 9.0 수준의 지진을 불가능의 영역에 놓고 대처하다 엄청난 국가적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과거의 데이터가 안전의 절대 기시한폭탄준이 될 수 없음을 잘 말해준다.
지금까지 학계에는 한반도에 6.5 이상 대형 지진은 일어나기 힘들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근거 없는 믿음'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최근 한반도 지진 횟수는 점차 잦아지고 있으며, 작년부터 눈에 띄게 지진 발생 횟수가 증가했다. 지진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지반이 약해지면서 지진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계기지진 관측 이후에는 이번 지진만큼 큰 규모의 지진은 일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 과거 역사 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 규모 7.0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수차례 있었다. 물론 추정에 불과하지만, 지진 주기에 비해 과학적으로 지진을 관측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역사 기록에 의한 추정도 무시하기 어렵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홍태경 교수는 한반도 예상 최대지진 규모를 7.45±0.04로 제시한 바 있다.
무엇보다 지진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더욱 안심할 수 없다. 올해 일본 구마모토 지진 때도 6.3 규모가 본진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에 규모 7.3의 더 큰 지진이 일어났다. 여진은 보통 1~2년간 계속되는데 뒤에 더 큰 지진이 일어나면 그것이 본진이 된다. 어느 것이 본진인지는 현재 시점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더 큰 지진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위험지대에 기가 막히게 골라 지은 꼴"
1980년대부터 제기됐던 양산단층 활성화 논란을 무시하고 원전을 집중 건설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양산단층은 가장 지진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에서 양산 경주 포항 영해로 이어지는 양산단층대는 세계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이 됐다. 현재 양산단층 위에는 원전 14기와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있다. 또한 건설 허가가 떨어진 신고리 5·6호기까지 합하면 이 일대의 원전은 16기로 늘어난다.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은 지난 9월19일 한국지질자원 연구소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지진 발생지역 분석한 결과 진도 2.0 이상의 총 491건의 지진 중 경북에서만 25%인 124건이 발생했고 국내 원전이 몰려있는 경주 울산 부산 지역을 합치면 32% 총 157건에 달했다.
신 의원은 "현행 원자로 시설 등의 기술 기준에 관한 규칙, 4조 1항에 의하면 '원자로 시설은 지진 또는 지각의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인정되는 곳에 설치해야 된다'고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동안 한반도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지역에 원전을 밀집시켜서 기가 막히게 골라 지은 꼴이다"고 비판했다.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주장은 1983년 국내 1호 지진학 박사인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해 제기된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란이 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활성단층이 아니라는 의견만을 근거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왔다.
지진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이라도 긴 안목으로 정부가 지원하고 체계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서 거의 유일하게 활성단층 지도가 없다"며 활성단층 지도 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