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한국영화 남성천하 시대다. 영화계를 지배한 폭력적 마초 세계는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절망적 대중인식의 반영일까, ‘막장드라마’ 같은 자극적 영상의 선호 결과일까? 핏빛으로 물든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들의 흥행 와중에도 10월의 감성을 적실만한 동심 드라마도 잇달아 개봉을 앞두고 있다.
흥행 안전핀 리메이크
극장가에 할리우드 리메이크 화제작들이 대거 개봉되고 있다. 서부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존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인’의 리메이크 작인 ‘매그니피센트 7’, 1959년 아카데미 최초 11개 부문을 석권하며 걸작으로 손꼽히는 ‘벤허’ 등의 리메이크작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가운데 2009년 국내 개봉과 동시에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마터스’가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장르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기대를 높이는 ‘마터스’는 어린 시절 정체불명의 사람들로부터 학대를 당한 후, 극적으로 탈출한 소녀가 10년이 지난 후 잔혹한 복수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공포 스릴러다.
할리우드의 이 같은 리메이크 열풍은 검증된 콘텐츠라는 흥행 안전핀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중년팬들까지 흡수하기에도 용이하다. 바꿔 말하면 시장이 녹록치 않고 소재고갈에 시달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들 리메이크작들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싶고, 이야기할 의미가 있을만큼 매력적인 테마라는 뜻이기도 하다.
‘매그니피센트 7’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4년작 일본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1960년 존 스터지스 감독이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을 재차 리메이크했다. 결국 3번이 리메이크된 것이고 엄밀히 따지면 리메이크에 가까운 무수한 아류작들이 존재하는 콘텐츠다. 그만큼 오리지날의 매력이 강렬하며 시대를 거듭하며 이야기할만한 테마라는 뜻이다.
하드한 ‘한국식 느와르’의 인기
현재 한국영화의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는 남성천하라는 점이다. ‘남남’ 케미를 앞세우거나 남성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들이 개봉작의 대부분을 차지한지는 이미 오래다. 간혹 나오는 여성 주연의 작품들은 흥행에 실패하며 남성영화 시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스크린에서 여성의 자리는 점차 위축되다 최근에는 아예 제거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또한 여성 주연영화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남성성은 할리우드와는 달리 생물학적 성뿐만 아니라 폭력적이고 암울한 마초적 세계라는 점에서 진정한 남성천하라 할만하다.
이는 하드한 ‘한국식 느와르’의 인기가 계속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아수라’는 한국식 느와르의 계보를 잇고 있다.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내부자들’ 등 느와르가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한국영화는 남성천하가 됐다. 여성 감독과 배우의 기근이라는 표면적 문제보다 한국 관객이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현실을 폭력적인 약육강식의 ‘느와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 이유일지 모른다.
‘막장 드라마’라는 장르를 낳은 한국 드라마 시장처럼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한국적 취향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영화의 폭력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남성적 폭력은 한국영화의 가장 강한 색깔이 되어 가고 있고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평론가들의 우려가 적지 않다.
작품성 입증된 어린이 주연 드라마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폭력적 남성영화가 지배하는 가운데 어린이가 주연인 영화들이 대기하고 있다. 전통적 10월 감성에 걸맞는 동심 드라마들이다. 13일 개봉하는 ‘우리친구 피들스틱스’는 평균에 사로잡힌 어른들에 맞서는 사고뭉치 꼬마 악동들과 그들의 친구 긴코너구리 피들스틱스가 펼치는 코믹판타지 어드벤처다. 화려한 영상미와 독특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제33회 뮌헨 국제영화제, 제10회 취리히 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 및 초청경력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산어린이청소년영화제로 첫선을 보였다.
27일 개봉예정인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는 세 살 때 친엄마에게 버려지고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살아온 열두 살 소녀 질리가 새로운 위탁모 트로터 아줌마를 만나게 된 후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캐서린 패터슨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 했으며, 영화 ‘미저리’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캐시 베이츠, ‘헬프’의 옥타비아 스펜서, ‘본’ 시리즈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줄리아 스타일스, 신예 소피 넬리스, 글렌 클로즈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27일 개봉하는 ‘와와의 학교 가는 날’은 중국 차마고도 윈난성,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어 외줄 짚라인을 타고 학교에 다니는 누나 나샹과는 달리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 통학 금지령을 받은 개구쟁이 동생 와와가 엄마 몰래, 누나 몰래 학교에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중국 3대 영화상을 포함한 다수의 영화제 수상이력을 자랑하는 수작이다.
특히 중국 고산지대의 실제 등교길을 소재로 삼아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6일 디지털 및 온라인으로 최초 개봉한 ‘라트비아의 소년’은 워커홀릭 엄마와 12살 사춘기 소년의 리얼 감성 성장드라마다. 워커홀릭 엄마와 단 둘이 살며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이 어느 날, 친구와 어울린 일탈로 인해 학교 밴드부에서 사용할 색소폰을 잃어버린 뒤, 이를 덮으려 시작한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리얼하게 다뤘다.
기존 성장영화의 클리셰를 과감하게 탈피해 12살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제63회 베를린 영화제 제너레이션 케이플러스 대상수상, 2013 로스엔젤레스 영화제 작품상, 2013즐린 국제청소년영화제 ECFA상, 2013 버스터 국제어린이영화제 각본상 수상 등 다양한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