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최근 SBS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헤어지자는 여성 주인공을 상대로 남성 캐릭터가 벽에 밀치고 키스하는 장면이 논란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했다며 “데이트 폭력을 미화했다”고 지적했다.
강간·가정폭력 일상적 장면으로 표현
로맨스 드라마에 흔한 강제 키스 장면에 대해 불편한 인식이 많아지는 추세다. 현실에서 성범죄에 해당하는 강제 키스를 발라드 배경음악으로 깔고 미화하는 미디어의 형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1990년대 신데렐라 로맨스에서 벽에 밀치기, 기습 키스하기, 주변 집기 부수기 등 가부장적 모습이 낭만적인 것으로 표현되곤 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로맨스의 폭력성을 은폐해 온 ‘나쁜 남자’ 판타지가 마침내 시효를 다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사회단체 한국여성의전화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동주최로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여성인권영화제 10회 기념포럼 ‘당신이 보는 여성은 누구인가’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이날 포럼에서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한 성별에 일방적으로 초점을 맞추거나 ‘남성 서사’ 위주다. 장르영화가 성장하면서 폭력 재현이 과잉 남발되고 있는데, 여성에 대한 강간도 일반적 폭력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라고 지적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가정폭력을 다루면서도 폭력이 발생하는 장면만 묘사하고 처벌을 통해 가정폭력이 해결되는 과정은 보여주지 않는 드라마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가정폭력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것이고,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을 심는다”고 우려했다.
피해자에게 2차 피해주는 성범죄 보도
성차별적 언론 보도도 심각한 상황이다. 리우올림픽 지상파 중계방송은 차별적 표현으로 거센 비판을 받아야했다. KBS 비치발리볼 중계에서 진행자들은 “해변은 미녀랑 가야지”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여자 펜싱 중계에서는 “저렇게 웃으니 미인대회 같다. 서양의 양갓집 규수의 조건을 갖춘 것 같다”고 선수들을 묘사했다. SBS 유도 중계에서는 몽고 선수에 대해 “보기에는 야들야들해 보이는데”, “스물여덟이라면 여자 나이로는 많은 나이” 등의 부적절한 표현을, 수영 중계에서는 “박수 받을만 하죠. 얼굴도 예쁘게 생겼고”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외에도 ‘엄마 선수’, ‘주부 선수’ 등의 수식어도 논란이 됐다. 선수 이전에 여자로 보는 시각이 팽배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동학대 사건 보도에서도 근본 대책을 강구하고 시스템의 문제를 분석하는 언론의 기능에 충실하기 보다는 사건을 자극적으로 나열하면서 ‘계모’를 학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낸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언론들이 본질적 문제는 오히려 외면하고 ‘마녀 계모’ 등의 표현으로 계모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성폭력 보도에서 성차별적 표현도 문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지난달 뉴스 미디어가 성폭력을 다루는 방식을 연구한 보고서를 냈다. 지난 5월17일부터 7월7일까지 18개 매체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 성차별적 보도건수는 81건에 이르렀다. 가장 흔한 문제는 선정적 묘사였다. 사건이 본질과 관계없는 경과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자극적 삽화와 재연 등으로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목적으로 접근하는 매체가 많았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상황보다 가해자의 상황을 설명하는 보도가 3배 정도 더 많았다. TV조선은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보도에서 음주 행위가 성폭행 사건의 발단이라는 어조를 드러내며 범죄의 본질을 흐리기도 했다.
무감각한 방심위
미디어의 이 같은 성차별적 표현은 꾸준히 논란이 되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방심위의 솜방망이 제재에서 그 이유를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 위반과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의 정당화를 문제 삼았고 방심위는 이를 반영해 개정안을 특정 성에 대한 혐오표현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여성가족부는 자녀 양육과 시어머니 돌봄을 여성의 몫으로 돌리거나, 남성은 강인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남성 의존성향을 강조하는 장면 등이 빈번하지만 제재가 없다고 지적했다.
기존 방심위는 성차별에 대해 무감각으로 행동해왔다. 여성 선수를 “야들야들해 보인다”고 표현한 스포츠 중계, 여성 시신이 가방에서 발견된 사건에 대해 ‘가방녀’라고 표현한 보도, 여성 정치인을 외모순으로 평가하고 남성 정치인의 부속품 취급한 보도 등에 대해서 방심위는 모두 권고 처분 또는 문제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 2015년을 기준으로 1303건의 심의건수 가운데 방심위가 과징금 부과한 경우는 3건에 불과했다. 관계자 징계 34건, 경고가 120건, 주의가 230건, 권고가 663건, 의견제시 135건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 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방심위에 대한 비판이 높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TV부터 없애는 것이 교육’이라는 가치관이 등장하는 데에는 방심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