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상실감과 분노를 위로하는 ‘웃픈’ 패러디와 풍자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개그보다 웃기는 현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저질인 정치판’ 앞에서 패러디는 국민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고 정확하게 대변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국민 상실감을 담아낸 ‘순실의 시대’
네티즌들은 각종 영화나 드라마 포스터를 비틀어 최순실 국정논단을 비판하고 희화화하는가 하면, 애니메이션 영화 더빙이나 자막제작은 물론 무능력한 대통령을 비아냥거리는 스마트폰 게임마저 등장하는 등 ‘씁쓸한 조롱’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DC 인사이드에 ‘최순실 갤러리’가 신설되기도 했다. 운영자는 공지사항에 ‘최순실 관련 내용이 없는 경우 삭제된다’는 운영원칙을 올렸다.
패러디물의 단골인 영화 ‘몰락’(The Downfall)의 패러디는 어김없이 등장해 유튜브에서 큰 인기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궁지에 몰린 히틀러의 좌절과 광기가 담긴 장면을 박 대통령의 현재 상황에 대입했다. ‘지금 그 분의 심경’이란 제목이 붙은 이 패러디물은 히틀러의 연기에 박 대통령의 대사를 창작했다. 자막은 ‘써준 것도 못 읽어서 욕 먹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 ‘순실이가 시키는 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나 보고 어쩌라고!’ 등의 박 대통령에 대한 조롱으로 점철돼 있다. 이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노벨 패러디 문학상 감’ ‘웃으면서도 화가났다’며 공감을 표현했다.
명성황후에 최순실 얼굴을 합성하고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문구를 넣은 패러디가 확산되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미실’을 최순실에 빗댄 패러디도 유명하다. 막강한 실권을 가진 최순실에게서 제정일치의 고대사회 신라 최고의 제사장이자 권력가였던 ‘미실’을 연상한 것이다. 그 만큼 정치상황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네티즌들의 비판이 녹아있다.
아이폰의 인공지능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Siri)’를 패러디한 ‘순-시리’도 웃음을 자아낸다. 이름의 사운드는 물론 음성으로 지시하는 ‘시리(Siri)’의 기능과 이번 사태가 절묘히 맞아떨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의 표지 제목을 살짝 바꾼 ‘순실의 시대’ 발음적 유사성 외에도 국민의 상실감을 담아내며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각종 콘텐츠 속에도 풍자 녹여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캐릭터에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도 인기를 끌었다. ‘박근혜 공주를 키워보는 리얼리티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설명된 이 패러디는 게임 캐릭터가 박 대통령이며, 플레이어는 최순실이다. 옷을 갈아입히는 것은 물론, ‘선거방해’ ‘고소고발’ ‘공천심사’ ‘북풍공작’ ‘언론조작’ ‘댓글알바’ ‘꼬리절단’ 등의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할 수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실제 모바일 게임도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주인이 닭에게 ‘연설문 수정’ ‘물 뿌리기’ ‘펜 세우기’ 등을 지시하면서 닭을 성장시키는 게임이다. ‘순실이 빨리와’는 말을 탄 캐릭터가 수갑을 피해 추락을 이겨내고 도망가는 게임이다. ‘최순실 게임’은 박 대통령이 정해준 연설문대로 읽지 않으면 최씨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낸다.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은 ‘고양이가 만든 게임’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 ‘다음 업데이트는 개발자가 살아있을 시’ ‘끌려갈 때까지 업데이트 할 것 같다’ 등의 안내문으로 풍자하고 있다. 사용자 리뷰도 권위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던 정권에 대한 해학이 담겨있다. ‘판사님 억울합니다’로 시작되는 사용자 리뷰는 ‘접신해서 다운받았다’ ‘우주의 기운이 영접해 받았다’ 등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상파 예능과 드라마에서도 패러디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는 ‘오방색 풍선’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 등의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30일 MBC ‘옥중화’에서는 무당이 오방낭을 건네며 “간절히 바라면 천지의 기운이 마님을 도울 것“이라는 대사가 나왔다. 제작진은 의도적 패러디를 인정했다. 같은 날 방영된 SBS ‘런닝맨’에서는 ‘비만 실세’ ‘간절히 먹으면 온 우주가 도와 그릇을 비워줄 거야’라는 자막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