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과학 혁명이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인류가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길목에 놓여 있으면서도 진정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10가지 긍정적 변화
‘사피엔스의 미래’는 최고 권위자나 전문가가 국제적인 이슈를 놓고 벌이는 토론회인 멍크 디베이트의 2015년 11월 내용을 엮은 책이다. 이날 토론 주제는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찬성 팀에 선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와 세계적 과학 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다. 여기에 맞서 반론을 펴는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과, ‘아웃라이어’ 등 다섯 권의 책을 써서 1000만 부 이상의 판매를 올린 독보적 경영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이다.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스티븐 핑커는 인류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확신’시킬 것이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수명 건강 물질적 번영 평화 안전 자유 지식 인권 성평등 지능 등 인류의 삶에 그간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10가지 요소를 사실과 수치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짚었다.
매트 리들리는 인구폭발 기근 환경오염 등 10~20년 전에 했던 암울한 전망이 모두 거짓 경보였거나 과장됐다고 운을 뗐다. 인구 증가는 극적으로 느려지고 농장의 수확량이 대폭 늘고 있으며 환경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숲과 야생동물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박사 출신이기도 한 그는 현재 진행 중인 혁신이 인류의 진보를 이끄는 동력이며 인터넷 같은 신기술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속도를 높여주었다고 역설했다.
기술 발전에 상응해 취약성도 증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이 태어난 난 스위스의 예를 들어 반박했다. 빈곤 전쟁 질병 같은 문제가 모두 해결된 나라라고 해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않으며, 전쟁이 사라졌다고 해도 폭력은 지속되며, 의료 수준이 높아져도 여전히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날 논쟁을 과학이 아닌 철학적 논쟁이라고 정의했다.
말콤 글래드웰은 지금까지 좋았다고 앞으로도 좋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여러 요소가 줄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핵전쟁은 단 한 차례만 벌어지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기술 발전에 상응해 취약성도 증대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총 90분간 진행된 토론은 모두 발언 각 8분, 상대편 발언에 대한 반박 각 3분에 이은 자유토론으로 진행됐다. 과학 인문학 경영학 저널리즘의 최전선에 선 토론자들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저마다 달랐다. 상대를 향해 날 선 공격을 하거나 응수하면서도 중간 중간 위트 있는 유머로 청중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열띤 토론 뒤에도 청중들의 의견은 바뀌지 않았다. 토론 전 투표 결과 찬성 대 반대가 71% 대 29%에서 토론 후 73% 대 27%로 토론의 승리는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팀에 돌아갔다. 멍크 디베이트의 현장을 생생하게 되살린 이 책의 국내판에는 원서에 담긴 토론 전 인터뷰, 전문가 논평 외에도 ‘옮긴이의 말’을 통해 토론의 의미와 재미를 짚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