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다. 기존 시스템이 낳은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변혁의 요구는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촛불 혁명’이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의 실체는 무엇일까? 성숙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 같은 요구를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알아보았다.
공정과 정의가 절실하다
‘촛불민심’은 박근혜 정부의 퇴진과 처벌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경유착 부정부패의 척결과 검찰 언론 개혁, 친일 독재 역사 청산을 외치고 있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혁명 수준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절대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정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배경에는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진 현실과 불법행위나 잘못된 관행 등 사회부조리에 원인이 있다. 국가에 대한 강한 불신이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신뢰도는 1인당 GDP, 지니계수 등 경제변수와 높은 연관성을 보이는 지표라는 점은 이를 잘 뒷받침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집단은 주변 이웃(6.2점)이었으며, 정치권(2.8점)을 가장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전반의 불신 분위기 때문일까. 사적 부문의 신뢰도에서도 우리나라는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인 사회로 드러났다. 사회 전반적 신뢰도가 매우 낮은 나라인 것이다.
능력에 따른 보상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이 높았다. 능력에 따른 보상은 사회체제에 대한 평가에서 2.8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차지했다. 또한 계층 이동가능성이 낮은 편이라고 느끼는 국민이 전체 응답자의 44.0%인 반면, 계층 이동가능성이 높다고 느끼는 국민은 15.8%로 크게 낮았다. 공정사회를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특혜 내려놓기(28.5%), 법과 원칙에 의한 사회운영(26.2%)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짜 민주주의’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국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시스템적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각종 불법과 비리는 한국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가진 모순점을 잘 보여준 계기가 됐다. 참여사회연구소가 최근 개최한 심포지엄 ‘한국 민주주의 30년, '전환의 계곡'과 그 너머’에서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는 다중의 결손이 중첩되어 정기적인 선거 실시 이외의 모든 민주적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짜 민주주의에 근접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출된 권력이 다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것을 정당성 근거로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거민주주의를 헌법주의 법치주의 참여민주주의로 제어해야 한다. 즉 선거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얻었다 해도, 헌법적 근본가치와 시민적 기본권을 훼손해선 안 되며, 법의 지배를 벗어날 경우 처벌될 수 있어야 하며,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표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의 해체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 토론회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국회 예결특위 상설화와 인사청문회 강화 등 대통령의 예산권과 인사권에 대한 국회의 견제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해임건의권을 보장하고 대통령 비서실 축소 등으로 헌법상 보장된 책임총리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과 정치권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방안으로 검경 수사권 분리와 검사장 직선제 등의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검사장 직선제는 일정 경력 이상의 지방 고등검찰청검사장을 임용직이 아닌 직접선거로 뽑는 선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으로 보다 적극적 검찰개혁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이 더 이상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할 필요가 없어지며, 시민들의 통제를 받게 된다.
혁명의 수단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현재 정치 구조가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속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지난 6월 ‘한국, 민주주의를 말하다’를 주제로 가진 ‘6월항쟁 29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권수현 박사는 “20대 국회는 50대 이상, 대학원 졸업, 평균 41억원의 재산을 가진 남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라면서 청년과 여성의 대표성이 약화된 문제를 제기했다.
권 박사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 평균연령은 55세로 19대 국회(53.9세)보다 두 살 가까이 늘었고 19대 국회에서 9명이던 20~30대 국회의원이 20대 총선에선 3명으로 줄었다. 20대 총선에서 여성의원 비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와 정당의 홍위병 노릇을 한 여성들이 대거 비례대표로 뽑혔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수 계층이 참여하는 대의제가 아닌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심포지엄에서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수 다른 의견을 내고 조정하면서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합의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며, 투명한 일처리, 평등한 소통, 능력주의 등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의사결정의 강점을 소개했다.
문제는 시민적 역량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대 김현진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시민사회, 학계 등 일반 유권자들이 정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이관후 박사는 ‘토의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제안했다. “공교육과 시민교육에서 토의를 핵심적 방법론과 주제로 다룰 것”을 방안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