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한국방송공사(KBS) 수신료 인상 추진의 포문이 열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월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최성준 위원장 주재로 열린 ‘2017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KBS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는 조정기구 설치 계획을 밝혔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비판이 높은 시점에서 방통위의 이 같은 행보는 논란과 비판을 불러오고 있다.
“공적 책임 할 수 있도록 재원 안정화”
방통위는 ‘업무보고’에서 “방송의 공적책임과 품격을 제고하고자 한다”며 “공영방송 재원 안정화를 위해 수신료 조정기구를 설치하고 공영방송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수신료와 기타수입을 분리해 회계처리하고 수신료 백서 발간을 검토하고자 한다”고 발표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업무보고’에 앞서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도 수신료 인상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최 위원장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변함없이 추진해 나갈 가장 중요한 임무가 있다. 바로 공적 책임을 다하는 방송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이 그 역할 및 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수신료 등 재원을 안정화하고 관련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수신료 인상뿐만 아니라 방통위의 신년 업무계획에는 규제 완화 등 방송 사업자, 특히 지상파 방송에게 유리한 기획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사업자 배만 불려준다’, ‘지상파의 지배권 강화에 방통위가 나서고 있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방통위는 “방송통신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류확산을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다. 광고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방송사 및 산업계 등 현장의 수요를 적극 반영해 협찬고지 및 가상 간접광고에 대한 규제완화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가 꾸준히 제기해온 광고 규제를 완화시키겠다는 의미다.
또한, “한류 방송콘텐츠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한중 교류협력을 지속 추진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이슬람권 등으로 공동제작 협정 체결을 확대해 나가고 정책자문단 및 법률자문단 등을 운영해 콘텐츠 제작 및 수출환경 개선에도 힘쓸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류 방송콘텐츠가 국익이며 이를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지상파 방송국들, 특히 KBS가 대대적으로 피력해온 내용이다.
인터넷 방송까지 형평성 고려
포털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SNS) 등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최 위원장은 1월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가진 신년 간담회에서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를 추진할 것을 밝혔다. 최 위원장은 “공적 책임이 있는 방송은 여러 규제가 있지만 인터넷 분야는 그렇지 않다”며 “올해부터는 여러 측면을 검토해 구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 인터넷 기업들이 지상파 광고 실적을 넘어서고 있지만, 지상파와 달리 별다른 규제가 없다는 해당 사업자들의 불만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인터넷 광고 규제가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최소한의 제재를 하는 대신 지상파 광고 규제를 풀어주는 방안으로 형평성을 맞출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결국 방통위의 속내는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의 이익 챙겨주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형태다. KBS의 공정성과 품위를 높이기 위해 수신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광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논리는 모순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지상파 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같은 잣대로 규제 대상에 넣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발도 큰 마당에, 수신료 인상과 광고 규제 풀어주기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은 정당성마저 잃기 때문에 더 큰 불만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방송’ 아닌 ‘부역자 방송’
여론은 싸늘하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그에 대한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공영방송 재난방송의 중요성을 비롯해 한류 콘텐츠 수출로 인한 국익 기여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미 지난 경주 지진 등 일련의 사건에서 밝혀졌듯이, 국가 재난에 KBS의 대처는 칭찬받을만하지 못했다.
한류 콘텐츠 또한 몇몇 대기업에만 수혜를 입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실 ‘한류’의 수혜는 절대적으로 방송사가 챙기고 있다. 방송사가 “한류 장사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다. KBS는 자체 보도 등을 통해 한류 산업을 공적 이익을 위한 산업인 듯 열심히 포장하고 있지만, 공감대를 거의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지상파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방통위의 지상파 챙기기는 더욱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KBS와 MBC는 내부에서조차 비판과 한탄이 줄을 잇는 상황이다.
KBS 기자는 지난해 12월26일 공동성명을 통해 KBS의 불공정성을 규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시작된 이래 한 달 동안 KBS는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KBS는 국민의 방송인가, 청와대 방송인가?” “촛불 현장에서 기자들은 모욕 속에 쫓겨 다녔다. KBS 중계차는 ‘니들도 공범이다’, ‘각성하라’는 글귀로 덮인 뒤 골목으로 숨어야 했다. ‘수신료를 JTBC에게 주자’는 뼈아픈 인터넷 댓글이 줄을 이었다”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부역자 방송’으로 불리고 있다”
촛불 광장에서 방송사 로고를 떼고 방송을 해야했던 MBC 기자들의 회의감도 이와 다르지 않다. MBC 기자들 또한 최근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좀 더 몸을 던져 싸우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먼저 살피지 못했다”면서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연이은 성명서로 ‘엠빙신’으로 조롱받게 된 MBC의 현실에 대한 참담한 심경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중의 지상파 방송의 공영성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하다. 시청률 인상 움직임에 대해 네티즌들은 “정권의 개에게 강제 수신료 징수도 억울한데 수신료 인상이라니” “가뜩이나 불 지피고 싶은데 염장 지르나” “JTBC에게 수신료를 내겠다” 등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KBS 수신료 안내는 법’ 등을 공유하고 수신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이 구체화될 경우 이 같은 운동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