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트럼프발 글로벌 무역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그동안 다른 나라에게 빼앗긴 미국의 부, 미국민의 일자리를 되찾아 올 것을 강조하며 미국 우선주의 기치를 높이 든 트럼프의 공식 등장은 세계경제에 큰 위협요인이 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 경제에도 큰 위협요인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 무역 의존도가 큰 우리로서는 미국·중국 G2간의 충돌 가능성이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점이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 총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G2간 무역 전쟁 발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다른 나라의 유린으로부터 우리의 국경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주타깃이 중국과 멕시코가 될 것이며, 백악관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트럼프는 대(對)중국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에 환율조작국 지정, 45%의 고율 관세 부과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중국 관영 매체와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강경 제재를 시행한다면 중국도 수입 제한, 반덤핑 조사, 관세 부과, 반독점 조사 등으로 보복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미국에 무역 보복 조치 가능성을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물밑에선 중국도 미국의 통상 충돌에 대비해 대응 카드 마련에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레스터 로스 주중 미국 상공회의소 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차기 미국 정부가 중국에만 차별적으로 무역과 투자 제한을 가할 경우에 대비해 중국 정부가 대응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中, 무역 전쟁 시 '반격 카드'는?
그렇다면 중국이 미국의 강경한 무역 정책에 맞설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중국은 미국과의 통상전쟁 발발 시 미국 주요 농산물에 수입 제한을 걸 수 있다. 제한 품목으로는 대두, 옥수수, 가축사료, 면화 등이 꼽힌다. 14억명에 이르는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중국은 최대 곡물 소비국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미 가축 사료에 넣는 첨가물인 미국산 DGGS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작년 9월에 지정한 33.8%에서 지난 11일 53.7%로 두 배 가까이 인상했다. 또 '여객기 큰손' 중국이 미국의 보잉사 여객기 구매를 취소하고 유럽산 에어버스로 구입처를 바꿀 수 있다. 보잉은 중국이 향후 20년 동안 1조 달러에 이르는 여객기 6800대를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산 제품 구매를 축소함과 동시에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 반덤핑 조사를 착수할 수도 있다. 로스 위원장도 중국이 일부 미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혐의를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주요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인상이나 독점금지 조사에도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점쳐졌다. 블룸버그는 이 중 윈 리조트(약 60%), 퀄컴(57%), 미크론 테크날러지(43%), 애플(22%) 등이 중국 시장 비중이 높은 기업으로 꼽았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는 이미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는 준비를 완료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전쟁에) 먼저 나서면 중국 정부 고위 관료들이 보복 계획 실행을 승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년 수십 만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의 미국 유학 행렬에도 중국 정부가 제한 조치에 나설 수 있다. 이 밖에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국채를 많이 보유한 국가인 중국이 미국 국채를 일시에 매각,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확률은 낮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중국팀장은 "중국이 미국 국채까지 한꺼번에 팔게 되는 것은 양국이 이성을 잃고 충돌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미국 국채를 빠른 속도로 내다 팔면 채권금리 인상으로 부동산담보대출 등의 부실 우려가 부각되는 등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겠지만 중국도 채권가격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미중 통상전쟁 임박…한국, 새우등 터지나
미국이 중국을 정조준할 경우 우리나라 교역의 핵심인 대(對)중국 수출도 휘청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그만큼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나라의 수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으로 중국의 대(對)미 수출이 10% 감소할 경우 우리나라 총수출은 0.36% 감소한다는 추정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 주력품목인 전자·반도체, 석유화학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환율 조작국 지정 문제, 리쇼어링(Re-shoring, 해외로 나간 기업이 자국으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인한 투자유입 위축 가능성 등이 위협요인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신정부 출범 직후 여러 채널을 통해 정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입장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관련 공약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단계에서는 가장 큰 쟁점이 될 TPP를 제외하면 한-미 FTA가 재협상의 첫 번째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선거 후 대통령 당선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고위급 채널과 민간 채널을 통해 전방위로 접촉해 정책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