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지난해 9월 시행된 ‘김영란법’이 소비 침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면서 개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개정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절반 이상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이 감소했으며, 외식업 운영자의 대부분도 전년보다 매출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행된 지 4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법을 정착되기도 전에 손보려는 움직임에 대해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6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2017년 정부 업무보고’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른 농축산·화훼업계 등의 피해와 관련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화훼 업종의 타격이 크고 요식업 매출 감소가 있다”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몇 가지 제안을 했고, 우리도 참여해서 보완방안을 마련해보는 게 좋겠다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날 업무보고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김주훈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식대 3만원 조항 현실화 △명절선물 예외 적용 △경조사비에서의 화훼 분리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새누리당 역시 김영란법 개정에 공감의 뜻을 밝혔다. 이현재 정책위의장에 따르면 당정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17일 당정 협의를 통해 김영란법 시행으로 농·축산업계에 문제가 많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개정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당정 협의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이 의장은 “정부에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 중”이라며 “당에서는 정부에 조속한 개정 작업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김영란법 개정은 법 시행 이후 악화되고 있는 화훼업, 축산업, 요식업 등의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선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유력 방안은 ‘5·10·10’ 또는 ‘10·10·10’이다.
10만원으로 제한된 경조사비에서 화환 등을 분리하는 방안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김영란법에서는 화환을 포함해 경조사비를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어, 화훼업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화환보다는 경조사비를 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늘면서 화환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축산농가에 대한 예외규정 적용 등이 이뤄질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김영란법 때문에 매출 줄었다”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은 김영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김영란법 실시 후 3000여개 전국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태조사에서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은 절반이 넘는 55.2%로 나타났다. 이들 중 53.3%는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김영란법 시행을 꼽았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외식업 운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84.1%가 전년 동월 대비 2016년 12월에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농촌진흥청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42.7%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선물용 농식품 구입액을 줄였다’라고 답해, 김영란법이 선물 소비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으로 꼽히는 화훼업의 경우, 지난해 총매출액이 7000억원대에 그친 것으로 추산돼 전년(1조2000억원)보다 크게 감소했다.
지난달 12일 리얼미터가 김영란법 ‘3·5·10’ 기준 상향조정에 대해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3%포인트)에서는 상향 찬성 의견이 반대를 앞섰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찬성한다’는 응답은 49.6%로, ‘반대한다’는 응답 40.3%보다 9.3%포인트 높았다. △‘매우 찬성’이 17.6% △‘찬성하는 편’ 32.0% △‘반대하는 편’ 22.6% △‘매우 반대’ 17.7% △‘잘 모름’은 10.1%였다. 시행 전인 지난해 8월3일과 비교했을 때, 상향 조정 찬성 의견(30.0%)은 19.6%포인트 상승했고 반대 의견은(59.3%)은 19.0%포인트 하락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김영란법 개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며 “김영란법이 도입된 이후 국산 농수산물이 외면 받고 수입 농수산물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법의 취지가 변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가 금액에 함몰돼 ‘5만원 이상은 뇌물이고 5만원 이하의 선물은 뇌물이 아니다’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면 안된다”며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쓰러져가는 농수산·축산업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청렴해서 망한 나라 없다”
부정부패 방지와 공직 사회의 청렴성 제고라는 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한다며 김영란법 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참여연대는 1월9일 정부의 김영란법 시행령 기준 완화 검토와 관련해 “청탁금지법 시행이 100여일 밖에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속단하고 법 기준을 후퇴시키고 있다”며 “정부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완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금품수수 금액기준은 관련 업계 영향보다는 부패 발생이나 사회적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가 우선돼야 한다. 특정 산업분야의 매출부진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책적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지 반부패제도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회와 정치권은 본인들이 입법한 청탁금지법을 후퇴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도 성명을 통해 “김영란법 때문에 업계의 피해가 증가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부정부패가 만연했다는 주장과 다름없다”며 “김영란법 시행 초기인 만큼 일시적인 혼란과 업계의 일부 피해가 발생할 수는 있으나, 서민경제 파탄의 근본 원인이 김영란법 때문이라는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심각한 가계부채와 양극화 심화를 호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실련은 “부패 때문에 망한 나라는 있어도 청렴해서 망한 나라는 없다. 김영란법은 공공성이 강한 민간과 공직자의 영역에서 부패의 고리가 되는 일상적인 접대와 향응을 끊어내기 위한 근원적인 조치”라며 “정부와 국회는 부정부패 근절과 공직사회 개혁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바람을 또다시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