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최근 물가까지 급등하면서 ‘경기불황(Stagnation) 속 물가상승(Inflation)’을 나타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우려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부진하면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지만, 공급 측 충격으로 공급능력이 감소할 경우 경기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지난달 13일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존 전망치인 1.9%에서 1.8%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날 통화정책방향 설명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소비자물가가 2%를 넘을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분석 결과 물가 연중 평균은 1.8%로 예상된다”며 “올해 경제성장률이 하반기로 가면서 회복세가 높아질 것으로 보이나, 수요면에서 물가를 끌어올릴 만큼의 상승률이 높지는 않다고 본다”고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인식과는 달리,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지난 3일 발표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는 한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경제는 기존 ‘저성장-저물가’ 구조에서 ‘저성장-고물가’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9월 이후부터 1.3~1.5% 수준을 유지하며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치인 2.0%를 크게 하회했던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7년 1월에 비교적 크게 증가하며 2.0%를 기록한 것이다. 2%대 진입은 무려 51개월만의 일이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 물가 목표치 수준이지만 가계의 구매빈도가 높은 품목들을 중심으로 물가 부담이 확산되고 있다. 농산물의 경우 설 대목에 따른 수요 증가와 계절적 요인이 겹쳤고, 축산물은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으로 가격이 급등했으며, 석유류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물가 불안은 가계의 소득여건 개선이 미흡한 상태에서 발생해 체감 물가가 더욱 높은 상황이다. 전국 2인 이상 가계의 실질 소득 증가율은 △2016년 1분기 -0.2% △2분기 0.0% △3분기 -0.1%로 낮은 수준이다. 신규 취업자 증가율은 1%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제조업 취업자 증가율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상승하는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농축수산물 물가도 불안
공급 측에서 물가가 상승하게 된 요인으로는 크게 ‘유가·원자재 가격 상승’과 ‘농축수산물의 물가 상승’을 꼽을 수 있다. 최근 국제 유가는 신흥국 수요 둔화와 석유 생산 확대 등으로 하락세를 보이다 반등했다. 2016년 초 배럴당 20달러 후반까지 하락했으나 신흥국 및 미국 등의 지역 원유 수요가 확대되면서 공급과잉이 완화되며 최근 50달러 중반 수준까지 오른 것이다.
원자재 가격도 소폭 반등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원자재 시세를 나타내는 CRB선물지수는 2016년 2월말 기준 163.2포인트까지 하락했다가 1월말 193.3포인트까지 올랐다. 이에 대해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유가 및 수입 원자재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의해 국내 물가가 영향을 받는 정도가 크다”며 “우리나라는 GDP 대비 수입비중이 약 50% 수준이며, 특히 수입중 원자재 비중은 60%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6년 초 안정세를 보였던 농축수산물 물가는 △2016년 9월 9.1% △10월 7.7% △11월 8.0% △12월 6.7% △2017년 1월 8.5%로 급등하며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AI 여파와 설 성수품 수요 확대로 물가 불안은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AI로 ‘계란 대란’이 일어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 축산물 가격은 2017년 1월에 전년 동월 대비 9.5%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 구제역까지 발생해 축산물 가격의 불안정한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소비자물가는 계절에 따라 일부 품목의 수요와 공급 영향을 크게 받으며, 특히 농산물의 경우 설이 포함된 달에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농산물 물가도 폭염 및 가뭄에 따른 작황 부진 등으로 2016년 9월 전년 동기 대비 12.8% 급등했으며, 이후에도 불안정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수산물 물가는 2017년 1월에 전년 동기 대비 6.6%까지 올랐다.
환율 불안정… 주요국 물가 상승 추세
‘원/달러 환율 상승’과 ‘주요국의 물가 상승’도 국내 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6년 9월에 1100원대를 하회했던 원/달러 환율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후 불확실성 증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달러화 강세 움직임이 나타나며 12월 중 1200원대를 돌파했다. 이후 올해 1월 중순부터 낮아지며 현재는 1100원대 중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의 2017년 3차례 기준금리 인상 시사와 미국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세 유지 등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에 더불어 미국 신정부의 달러화 약세 유도 정책 등 약세 요인이 혼재하고 있다”며 “환율이 상승하면 원자재 등을 수입하는데 기업들이 더 많은 원화를 지급해야하기 때문에 국내 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주요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서서히 오르는 모습이다. 해외물가 상승은 교역재 부문을 통해 국내 물가에 전이된다. 미국은 임금 상승에 따른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2%에 근접해 가고 있다. 중국도 2016년 12월에 2.1%까지 확대됐다.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유로와 일본의 경우, 유로는 2017년 1월 기준 1.8%, 일본은 2016년 12월에 0.3%로 높아졌다.
선진국의 GDP갭률(실제GDP와 잠재GDP 간의 차이를 뜻하며 플러스일 경우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에서 ‘인플레갭’, 마이너스일 경우 경제가 침체돼 있다는 뜻에서 ‘디플레갭’이라함)은 2013년에 -1.8%까지 디플레갭이 커졌으나 2014년 이후부터는 차츰 줄어들면서 인플레갭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향후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해외측 물가상승 압력 지속 예상
현대경제연구원의 물가 상승 방향성 예측 결과에 따르면 국내 경제는 수년간 지속되던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마감되고 ‘저성장-고물가’ 기조로 이행해 갈 가능성이 있다. 국내 경제는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이 높지 않은 반면 환율 상승, 주요국 물가 상승 등 해외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 압력은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김 연구위원은 “가능성은 낮지만 국내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진입도 배제할 수 없다”며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차단하고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