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케이뱅크가 출범하며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가 시작됐다. 케이뱅크의 초반 흥행으로 시중은행들은 비대면 서비스·모바일 상품 및 고객 편의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산 규모가 작은 케이뱅크가 시장 전체를 흔들어놓을 만큼 시중은행들에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당장 은행권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출범 4일 만에 고객 10만명을 돌파하는 등 초반 흥행 몰이에 성공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케이뱅크에 따르면 출범일인 3일 자정부터 이날 오전 8시 기준으로 가입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계좌를 개설한 고객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30대로, 39.8%(3만8783명)를 차지했다. 이어 40대가 30.4%(2만9623명), 20대 16.9%(1만6506명)로 나타나 30~40대의 비중이 70%에 달했다.
더 편한 서비스·가격 경쟁력으로 승부
케이뱅크의 초반 성공 요인에 대해 금융권은 ‘서비스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을 꼽고 있다. 케이뱅크는 실물 비밀번호생성기(OTP)를 들고 다녀야 이체를 포함한 모바일 금융거래가 가능한 시중은행 서비스와 달리, 스마트폰만 있으면 실물 OTP 없이도 모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모바일로 계좌를 개설하는 데에는 10분 정도가 걸리고, 소액 마이너스 대출 신청·승인은 지문 인증 등을 거치면 단 1분 만에 가능하다.
점포가 없는 비대면 거래를 통해 고정비를 절감해 가격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예금금리는 최근 시중은행에서 찾아보기 힘든 최고 연 2%대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직장인K 신용대출’의 경우 최저금리가 연 2.73%로 주요 시중은행보다 1~2%포인트 낮다. 이번 달 대출을 잘 갚기만 하면 다음 달에는 대출금리가 연 1%포인트 내려가는 ‘슬림K 중금리대출’도 있다. 또, 계좌 내에서 사용하지 않을 금액을 미리 설정하면 한달 뒤에 해당 금액에 대해서는 정기 예금 수준의 금리를 지급하는 요구불 계좌도 출시하는 등 기존 은행과 차별화를 뒀다.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을 넘어서기 어려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공략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케이뱅크는 통신정보 등을 활용한 정교한 신용평가를 통해 청년·소상공인 서민계층을 대상으로 연 4.2%에서 10% 미만의 중금리 대출을 공급한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케이뱅크의 흥행은 기존 은행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며 “고객들은 금융 서비스의 질을 보고 거래 은행을 수시로 바꿀 수 있다. 케이뱅크는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어 “금융업은 신뢰가 중요한데 인터넷은행은 저축은행 등의 제2금융권이 아닌 1금융권이라는 점에서 대출 등을 받을 때 더 믿고 거래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케이뱅크 의식한 시중은행, 비대면 서비스·모바일 상품 확대
이 같은 시장의 움직임에 시중은행들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비대면 금융서비스 및 모바일 상품 확대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은 모바일 전용 상품 ‘써니 전·월세대출’을 출시했다. 지난해 말 모바일 전용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모바일로 가능한 주택 관련 대출상품을 추가한 것이다. 은행 영업점에 갈 필요 없이 신청부터 대출 승인까지 가능하다. 계약서 등 관련 서류는 직원이 직접 고객을 찾아 받는다.
KEB하나는 삼성전자와 제휴해 ‘KEB하나 삼성페이 서비스’를 지난 6일부터 시행했다. 카드나 통장 없이도 삼성페이가 지원되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삼성페이 앱을 통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입출금 거래 및 계좌내역 조회가 가능한 서비스다. 삼성페이 앱에서 지문과 거래비밀번호, 서명등록 등의 과정을 거쳐 계좌를 등록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음성으로 금융거래가 가능한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뱅킹 ‘소리(SORi)’를 출시했다. 스마트뱅킹 앱 ‘원터치개인’의 메인화면에서 ‘소리’ 아이콘을 클릭해 음성명령으로 계좌조회, 송금, 환전, 공과금 납부 거래를 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조만간 이체 등의 금융 거래도 적용할 방침이다.
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은 “비대면 거래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은행까지 출범했기 때문에 모바일 상품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케이뱅크의 영업 전략과 이용자 패턴을 모니터링하면서 고객의 니즈에 맞는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도 인터넷은행 출범에 대비해 1~2년 동안 모바일 플랫폼을 내놓는 등 디지털 금융을 강화해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분위기”라면서도 “IT 기업이 주도하는 은행이라는 점에서 현재 상황보다는 향후 출시될 서비스가 위협이 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격 경쟁 서두를 이유 없어
그러나 케이뱅크 출범으로 당장 시중은행들이 금리와 수수료 등 가격 경쟁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을 전망이다. 케이뱅크가 은행권을 흔들어놓을 만큼 시중은행들에게 위협적이 존재가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앞서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취임 100일 기념 간담회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돌풍에 겁이 덜컥 난다”면서도 “1년 정도 지나야 위상이 정리될 것이다. 금리 경쟁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터넷 전문은행으로의 고객 이탈에 대해 “신용등급이 높은(1~3등급) 고객들은 기존대로 은행과 거래하고, 그 아래 4~6등급 고객이 저축은행 등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봤다.
은행권 관계자는 “핀테크(금융+기술) 사업은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고 선점하지 않으면 활용도가 떨어져 은행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상품이나 가격 정책은 시중은행이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자본금이 적은 케이뱅크가 소액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만큼, 시중은행들과 주 고객층이 겹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케이뱅크를 단독으로 이용하는 고객보다는 시중은행과 병행해 거래하는 고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케이뱅크 출범 후 3일간 승인된 대출 건수는 8021건인데 반해 대출액은 410억원에 그쳤다. 1인당 평균 약 500만원을 대출한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으로 자산 규모가 적어도 30조원 이상은 돼야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출 수 있다”며 “케이뱅크는 자본금 2500억원으로 소액대출을 중심으로 사업을 해 자산을 불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 경쟁력은 있지만 직장인들은 대출을 받을 때 한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기존 은행권 우량 고객보다는 2금융권을 이용하는 중저신용자가 일부 인터넷은행으로 흡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