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납치 감금 협박 폭행 강간 살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가정에서 이 같은 강력 범죄들이 증가하고 있다. 가정폭력과 패륜범죄는 가족과의 유대를 유독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가족의 달을 맞아 실태와 원인을 알아보았다.
‘금전 문제’ ‘무시한다’는 이유로...
지난달 19일 자신을 나무란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둔기로 때린 40대 남성이 존속 살해 미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월에는 20대 대학생이 친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금전 문제로 다투던 중 자신의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30대가 검거되기도 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뒤 범행을 숨기기 위해 아내와 자녀를 처갓집으로 보낸 뒤 아버지 시신을 비닐에 싼 뒤 침낭에 담아 바다에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 살해 동기에 대해 “평소 아버지와 금전 문제로 다투고, 이날도 금전 문제로 말다툼 중 홧김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최근 악귀가 씌었다는 이유로 세살배기 아이를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진돗개를 영물이라며 신성하게 여기는 사이비 종교 집단 소속인 부모는 아들이 악귀가 씌어 고집이 세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상습적으로 폭행을 해오다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들에게 폭행은 사이비 종교 의식이자 잘못된 훈육법이기도 했다.
사이비 종교로 인한 자녀 살해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같은 달인 4월에 경기 시흥시에서도 ‘애완견에게 씌인 악귀가 딸에게 옮겨갔다’며 딸을 참혹하게 살해한 어머니가 구속됐다. 54세 김씨는 25세 아들과 함께 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
아내 학대와 살해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족 내의 범죄다. 지난달 별거 중인 아내를 찾아가 흉기로 찔러 살해한 4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달 7일에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아내를 살해한 의사가 구속됐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자신의 주택에서 아내가 심장병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면제를 먹인 다음 미리 준비한 약물을 주입해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술에 취해 말다툼 하던 남편의 배 부위를 아내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가족의 해체, 가치관 변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만 18세 미만 자녀를 둔 응답자의 지난 1년간 자녀학대율은 27.6%로 나타났다. 남편으로부터 폭력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여성의 비율은 12.1%였다. 부인이 남편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9.1%였다. 만 65세 이상 응답자가 가족원으로부터 학대를 경험한 피해율은 7.3%로, 가해자는 아들·딸인 경우가 69.5%로 가장 많았다.
가정폭력과 학대는 범죄로 이어진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12년 982건에서 2013년 1088건, 2014년 1119건으로 존속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1~2015년 지난 5년간 존속살해는 282명으로 분석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정성국 박사의 분석에 의하면 살인사건 중 존속살해 비율은 5% 정도로 미국이나 영국 등의 서구와 비교시 4~5배 높다.
이 같은 패륜범죄는 과대망상 우울증 조현병 등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의 경우 입원 치료를 기피해 가족 내에서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증가시킨다. 가정불화도 중요한 이유다. 정신질환자가 가정불화를 함께 경험하며 패륜범죄에 이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의 해체 상황에서 빚어진 가치관의 충돌이 해결되지 못하고 갈등이 누적되면서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가부장제나 혈연주의, 부모부양 사상 등의 전통적 가치관이 옅어지면서 갈등 발생 요소가 커졌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아내에 대한 범죄 중에는 남편이 아내를 소유물로 인식하거나 가부장제의 권위가 상실되는 것에 격분한 범죄가 적지 않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부모는 권위주의와 부양의 의무 등 과거 질서를 당연시하는데 비해, 자녀 세대는 부모를 오히려 의존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등 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대립된다.
분노조절장애 사회 분위기도 이유
특히, 경제적 문제 등으로 가장이 자녀와 아내를 살해 후 자살하는 형태의 범죄는 외국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한국적 패륜범죄다. 가족을 소유의 존재로 바라보는 한국인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아동학대는 공동체 사회와 달리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처지에 처할 때 돌봐줄 타인도 없는데다 양육에 대한 조언도 듣기 어려운 환경에서 잘못된 훈계가 폭력으로 확대되거나 부양에 대한 부담이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의하면 자녀에게 학대받는 부모들의 상당수가 학대의 원인을 부양에 대한 부담으로 진단했다. 결국, 가족공동체는 빠르게 해체되는 데 비해 이를 대신할 사회적 장치는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 가정의 갈등을 증가시키고 범죄를 양산시키는 주원인으로 보인다.
가족이 끈끈한 공동체로 묶여져 있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오히려 존속 범죄의 발생 비율을 높이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한국 사회에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족의 유대감과 운명공동체적 경향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고 갈등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작은 갈등에도 분노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존속 범죄의 증가는 분노조절장애의 증가에 원인이 있다는 진단도 있다. 존속 살해범들은 자신의 범죄 이유를 “무시해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계층 사회에서 자존감을 상실하고 분노에 사로잡힌 개인이 가정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정을 느낄 때 극단적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