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뇌물죄 혐의 재판에서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변호인을 통해 18가지에 이르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서도 발언 의사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는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하는 등 담담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법원종합청사 417호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11차 공판을 열었다. 박 전 대통령의 네 번째 재판인 이날에는 전날에 이어 핵심 쟁점인 삼성그룹 뇌물 수수 관련 혐의 심리가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와 귓속말로 몇 차례 대화를 나눌 뿐 피고인으로서의 의견 진술이나 재판장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증거조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도중 특별한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증인과 검찰, 재판부 등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기는 했으나, 최씨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전날 재판에서도 “묻고 싶은 사항이 있는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담담한 표정으로 “없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첫 재판서 18가지 혐의 모두 부인
지난 3월31일 구속된 후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열린 첫 재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검찰이 적용한 18가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유 변호사는 이날 25분에 걸쳐 검찰의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적극적인 주장을 펼쳤다.
유 변호사는 “앞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18가지 공소사실에 대해 일괄 부인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보충 설명을 드리겠다”며 “공소사실은 엄격하게 기소된 것이 아니라 추론과 상상에 기인해 기소됐다”고 말했다. 그는 “상당수 증거가 대부분 언론 기사로 돼 있는데 참고자료 같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언론 기사가 증거로 제출돼 있다”며 “언제부터 대한민국 검찰이 언론 기사를 형사사건 증거로 제출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과 관련해서는 “재단 설립 지시가 없었다”며 청와대 방모 행정관 진술을 근거로 검찰 공소장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강조했다. 삼성그룹과 관련한 뇌물 혐의에 대해서도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활동을 지원한 약 79억원은 “삼성전자와 코어스포츠 간의 용역계약에 따라 코어스포츠 법인 계좌로 송금됐다”며 “제3자가 뇌물을 받았을 때 본인(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경제공동체 개념이 성립해야 하는데,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어떻게 돈을 받아내겠다는 구체적인 모의 과정과 범행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주장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지시 및 관여 혐의도 부인했다. 유 변호사는 “공판준비기일에서 블랙리스트 부분과 관련해 검찰 공소장은 관계 공무원들과 공모했다고 적혀있는데, 그럼 당시 장관인 유진룡은 공범이 되는지 (검찰에) 설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박 전 대통령이 관계부처나 실무자, 관계 수석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문화·예술계 지원을 배제하고 또 지원하지 말라고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좌편향 단체 등에 대해 어떤 말을 했더라도 그 말 한마디를 했다고 해서 지금의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일련의 과정까지 책임을 묻고 따진다면 살인범 어머니에게도 살인죄 책임을 묻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檢 “정치상황 따라 기소한 것 아냐”
유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검찰 측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기소한 게 아니다”라며 “(당시) 대통령인 피고인이 모든 행위를 다할 수 없다. 공동정범이론에 따라서 행위지배가 충분하다는 법리판단을 거쳐 기소하게 된 것이다. 수사 당시 현직 대통령인데 어떻게 여론과 그리고 언론 기사에 의해 기소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기업 관련 뇌물 혐의에 대해 검찰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가 다시 뇌물 혐의를 적용하는 등 변화무쌍한 기소권을 발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검찰 측은 “재단설립 출연금을 낸 기업 외에 추가 자금을 지원한 곳이 삼성그룹, 롯데그룹이고 요구받은 기업이 SK그룹”이라며 “처음 검찰이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3곳에 대해서는 뇌물 혐의를 두고 수사했고 이후 특검 출범 후 기록을 넘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검이 검찰 수사기록을 토대로 삼성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고, 다시 인계받은 검찰이 SK와 롯데 기록을 상세히 검토해 추가로 뇌물죄를 적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 사건 수사와 기소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것이며, 올해 4월까지 지속된 수사로 수집된 증거를 엄밀하고 엄정히 판단해 거친 것”이라며 “이 사건 심리와 관계없는 촛불시위나 정치지형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순실 “朴 취임 때 떠났어야”
한편, 최씨는 지난달 23일 첫 공판 때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죄스럽다”며 발언을 자제하던 모습과 달리, 같은 달 30일 열린 재판에서는 다소 격앙된 모습으로 감정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최씨는 이날 재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뒤 “억울한 부분이 많다”라면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등이 삼성을 이용하기 위해 정유라를 끼워 넣었다”며 흥분한 어투로 말했다.
최씨는 다음날 정씨가 송환되는 것을 언급하면서 “너무 억울하고, 딸이 걸려있는 문제라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며 “정유라가 완전히 영혼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검은 진실을 밝혀주고, 정유라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가 송환된 5월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김수정) 심리로 열린 최씨와 최경희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 등의 공무방해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는 정씨에 대해 “어려운 귀국길에 올라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며 오열하는 모습도 보였다. 또,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께서 취임하면서 40년 지기가 떠나야 했는데, 신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남은 게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정말 후회스럽고 절망스럽다”고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