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 인선이 계속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5월31일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준안 국회 표결에 맞춰 후속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전날 현역 국회의원인 장관 후보자 4명을 한꺼번에 내정한 데 이어 이날 6명의 신임 차관을 발표했다.
차관 임명자들은 모두 해당 부처의 공무원들로 파격 없이 '안정성'에 방점을 두었다. 앞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러 인물을 인선하려다보니 빨리 진행이 안 됐다"며 "차관급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차관 인사는 조금 많이 묶어서 발표하려 한다"고 말했다.
애초 문 대통령은 정권 출범 3주차인 5월 넷째 주 주요 인선을 마무리하려했지만 대선후보 시절 공약한 '5대 비리 인사 배제원칙(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탈루·위장전입·논문표절)'에 어긋나는 후보자들로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였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부부 소득 내역 신고 누락 등으로 청와대와 야권이 정면 충돌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5월29일 취임 후 두번째 주재한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지금의 논란은 그런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란 점에 대해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께 양해를 당부드린다"고 사실상 사과하며 사태를 가라앉히려 했다.
이어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늦어지고 정치화되면서 한시라도 빨리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고자 했던 제 노력이 허탈한 일이 돼 버렸다"며 "또 새 정부가 한시 빨리 진용을 갖춰서 본격적으로 가동되길 바라는 국민들에게도 큰 걱정을 끼치고 있다"고 이낙연 후보자의 국회 인준안 통과에 대한 국회 협조를 청했다.
다음날 문 대통령은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도종환 민주당 의원을 각각 내정했다고 밝혔다. 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김현미 민주당 의원을,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는 김영춘 민주당 의원을 내정했다.
그동안 내각 구성을 미뤄오던 문 대통령이 '장관 무더기 인선'에 나선 것은 전날 양해 입장을 내놓으면서 인사 원칙 논란을 일부 해소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발표한 네 명의 장관 후보자는 모두 민주당 현역의원들이다. 여당 인사를 대우한다는 의미도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현역 의원을 우선 검토한 결과로 해석된다.
인선에 속도를 내는 문 대통령에게 6월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는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특히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국방부, 법무부, 통일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의 장관 인선도 남아있다.
특히 국방·법무·통일부는 사드 배치 및 발사대 추가 반입 미보고 논란, 검찰개혁,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첨예한 현안이 걸린 부처인만큼 어느 인물이 장관으로 지명되든 격렬한 여야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은 부처의 장차관은 인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순서와 상관없이 발표하려 한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에 부는 '여풍'...장차관 줄줄이 꿰차
문재인 정부에서 여성 고위 관료가 장·차관 자리에 속속 발탁되고 있다. 공직사회에 불기 시작한 '여풍(女風)'이 거세질지 주목된다. 여성 공무원 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고위직 비율은 여전히 낮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정무직인 장·차관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1·2급 여성 고위공무원단은 전체(1515명)의 0.04%인 71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견고했던 '유리천장(승진을 가로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에도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5월31일 박춘란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을 교육부의 첫 여성 차관으로 발탁했다. 행시 33회로 공직에 첫 발을 내딛은 박 부교육감은 '여성 1호' 기록을 여러 개 보유한 인물이다. 2005년 만 40세에 정부 최연소 여성 부이사관(3급)에 오른 뒤 2007년 교육부 첫 여성 국장에 발탁됐다.
박 부교육감은 교육부 정책기획관, 대학정책관, 평생교육직업교육 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관을 보좌해 내부 살림과 대외업무를 원활하게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박 부교육감은 여성 특유의 꼼꼼함에 남성 못지않은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전날 지명된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여성이다.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 불모지로 여겨졌던 국토부 장관으로 발탁되자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김 의원은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데 앞장서 '4대강 저격수'로 알려질 만큼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닌 데다 '세심한 주거 정책 추진'을 예고해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문 대통령이 5월21일 외교부 장관으로 내정한 강경화 유엔(UN)사무총장 정책특보는 외교부 역사상 첫 여성 장관이다. 강 후보자는 균형감과 원칙을 지킬 줄 아는 합리적인 성격, 원활한 소통 능력이 장점으로 꼽힌다.
앞으로 여성 고위 관료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내각에 여성장관 30% 이상 등용' 공약을 실행에 옮기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은 "성평등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명서에 서약을 하기도 했다. 또 자서전 '운명'을 통해 '남성전유물처럼 생각돼왔던 자리에까지 여성들을 과감하게 발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의 한 국장급 남성 공무원은 "여성 공무원은 (남성에 비해)상대적으로 업무 처리가 꼼꼼하고 조직 내 원활한 의사소통에도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며 "새 정부가 여성 관료 중용에 관심이 많아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