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군부독재 종식 이후 가장 시대착오적이며 폭력적인 문화예술계 탄압의 사례가 된 블랙리스트 사태. 이 블랙리스트의 실행과 작동은 세월호 사건 이후 본격화됐다. 이 책은 바로 그 험난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검열의 만행과 억압의 시스템
박근혜 정권에서 ‘세월호’는 가장 강력한 금기어였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세월호를 추모하는 공연은 지원에서 배제됐으며, 작품에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단어들만 포함돼도 공연이 저지됐다.
2014년 11월 ‘서울연극제’가 대관 심사에서 탈락되며 검열 문제가 수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이후, 2017년 3월 광화문 광장에 임시극장인 블랙텐트가 세워지기까지 역사의 현장을 담은 이 책은 무대 거리 광장 토론회 등에서 퍼포먼스와 토론을 벌였던 연극인들의 저항의 기록이자, 한국연극의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기 위한 연극인 동시에, 시민들의 뜨거운 연대기다.
현재 한국연극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극작가 연출가 연극평론가뿐 아니라, 블랙리스트 규명에 앞장섰던 언론사 기자 등 21명의 필자들의 증언 논평 사진을 함께 엮었다.
검열과 블랙리스트의 실행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 1부는 총 12편의 신문기사 언론보도 성명서 국정감사회의록 등의 자료를 취합해 검열의 만행과 블랙리스트 작동과정을 소상히 파헤친다. 블랙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은 2015년 9월9일, JTBC가 ‘2015창작산실’ 심의과정에서 일어난 검열을 폭로하면서 드러났다. ‘세월호’를 연상시키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특정 연출가의 공연이 지원사업에서 탈락되거나 공연 방해와 검열 등이 잇달아 이루어지자 연극인들은 검열 반대 시위에 나섰다. 2016년 6월, 21개 극단, 22개 작품이 참여하는 ‘권리장전2016 검열각하’가 기획 되면서, 연극인들은 5개월에 걸쳐 검열 이슈와 논쟁을 이어나갔다.
극장의 잃어버린 공공성을 찾아서
2부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연극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반성, 연극의 방향과 역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공연된 일련의 작품들과 검열·배제라는 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움직임 속에서 탄생한 기획공연들을 조명했다.
3부는 블랙텐트에 참여한 400여명의 예술가 세월호유가족 해고노동자 시민의 모습을 글과 사진을 통해 생생히 담았다.
2016년 10월 한국일보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9743명의 예술인 명단을 폭로하면서 광화문 광장에서는 전국 288개의 문화예술 단체와 예술가 7449명이 참여하는 시국선언이 발표됐다. 세월호 천막만 있던 광장에 예술가들이 천막을 치고 장기간 투쟁에 돌입해 광화문 캠핑촌이 형성됐다. 다음해인 2017년 1월, 광장극장 블랙텐트가 기습적으로 세워졌다. 이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극장에서 배제된 ‘세월호’, ‘위안부’ 등을 소재로 민간극장에서 제작된 공연들을 주로 무대에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직후 3월까지 공연을 올린 블랙텐트는 예술가와 노동자, 시민이 만나 그 연대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킨 역사적 현장이 됐다.
이 책은 촛불광장의 중심에서 시민들과의 연대로 일궈낸 승리의 역사적 현장을 면면히 기록하고 있다는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예술이 나아가야 할 길과 속성, 권력과 예술의 바람직한 방향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단지 예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