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검찰이 삼성의 노동조합(이하 노조) 와해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삼성이 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한 단서를 최근 포착하고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다. 검찰은 3년 전 같은 사안에 대해 삼성 측에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으나,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삼성이 노조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데에도 이번 검찰 수사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는 지난 18일 오전 경기 수원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지하 창고와 해운대센터 등 5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압수수색에 이어 지하 창고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이유는 창고에 각 지사에서 보고된 각종 인사자료를 포함해 노조 탈퇴자 명단이나 탈퇴 유도 방안 등 노조 관리 문건 등이 보관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센터의 경우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위장 폐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12일에는 해운대센터 등을 관할하는 부산남부지사를 비롯해 용인경원지사와 관계자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바 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 결과를 토대로 관계자 소환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출범 이후 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종합상황실을 만들어 운영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은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설립되자 종합상황실을 꾸려 노무사 등 외부 전문가에게 매달 수천만원 상당의 용역비를 제공하며 노조 파괴 관련 자문을 받았으며, ‘노조 파괴 전문가’로 알려진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출신 변호사도 고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검찰은 삼성이 노조 활동 대응지침 문건인 이른바 ‘마스터플랜’도 이들을 통해 작성한 것으로 보고 관련 정황을 조사하고 있다. 또, 지난 6일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노조 대응 일환으로 근로감독관과 수시로 만나 관리하라는 지침을 만든 점도 포착됐다.
5년 전 노사전략 문건 공개… 어떤 내용 담겼나?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은 5년 전에 제기된 바 있다. 2013년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50쪽 분량의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하며 “삼성그룹의 노조 파괴 전략의 전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치권력을 압도하는 경제권력을 가진 삼성의 화려함의 이면에는 경영권 세습, 불법 비자금 조성, 그리고 무노조 신화라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1월 작성된 해당 문건에 따르면 삼성은 복수노조가 시행된 2011년 그룹 계열사 전체를 대상으로 두 차례 대응태세를 점검하고 2만900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 노사교육과 모의훈련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에도 1~2월을 복수노조 대응체제 일제 점검 시기로 정하고 전 사업장을 점검하는 계획을 수립했고, 그룹이 주관하는 인사 임원 회상회의를 매주 정례적으로 실시했다.
문건에서 삼성은 그룹 내에 형성된 “우리 회사, 우리 부서가 1등으로 (노조가) 설립되지 않으면 된다”는 분위기를 ‘면피’라고 지적하며 노조 출범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특히, 삼성은 노조가 설립될 경우 전 부문 역량을 집중해 노조 대응 전략과 전술을 연구 보완해 노조를 조기에 와해시키고 고사시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는 점을 명시했다.
노조가 결성될 경우 이를 전시상태로 규정하고 그룹과 해당 회사에 인사, 홍보, 법무, 지역협의회가 참여하는 비상상황실 체제를 확대하는 한편, 내부 동요 방지, 조합원 탈퇴 압박, 설립 신고 취하 설득을 하도록 했다. ‘노사 사고 예방(노조 설립 저지)’을 위한 10개 추진 과제 중에는 △문제 인력 노조 설립 시 즉시 경계를 위한 비위 사실 채증 지속 △임원 및 관리자 평가 시 조직 관리 실적 20~30% 반영 △노사협의회를 노조 설립 저지를 위한 대항마로 육성 △비노조 경영 논리 체계 보강 등이 포함됐다.
노조 저지를 위한 ‘비밀별동대’ 가동 정황도 포착됐다. 삼성은 ‘사내 건전 인력’ 확보를 위해 명단을 철저히 보안 유지하고 점조직형으로 운영하며, 지속적인 신뢰 유지를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문건에 적시했다. 사내 건전 인력은 △방호 △여론 주도 △노조활동 대응 인력으로 구분해 놨다.
근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분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던 검찰은 2015년 1월 근거가 부족하다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최지성 당시 미래전략실장 등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해당 문건의 작성 주체와 출처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문건을 작성한 행위만으로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결론 내렸다. 또, 이 회장 등의 지시로 각 계열사에서 문건의 내용대로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으로 볼만한 관련 정황이나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3년 전 무혐의 처분 내린 삼성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해 검찰이 다시 수사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 논란이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 소송비 대납 수사 과정에서 노조 와해 의혹 문건을 확보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앞서 검찰은 다스 소송비 대납 수사를 위해 삼성그룹 서울 서초동 사옥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바 있다.
검찰은 법원에 부당노동 혐의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발부받고 해당 문건을 확보해 분석했다. 이 문서 중에는 지난 2013년 심 의원에 의해 공개됐던 ‘S그룹 노사 전략’ 문건도 포함돼 있었으며, 최근 작성된 문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에는 삼성 임원급이 태스크포스(TF) 수장을 맡는 등 노조 관련 대응 상황을 챙긴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 만에 ‘무노조 경영’ 폐기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서비스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의 협의를 통해 서비스기사, 콜센터 직원 등 협력업체 직원 8000여명을 직접 고용하는 한편, 이들의 합법적인 노조 활동도 보장키로 했다. 이 때문에 삼성이 1938년 창사 이후 80년간 이어져온 ‘무노조 경영’ 방침을 사실상 폐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협력사 직원들이 삼성전자서비스에 직접 고용되면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서비스의 질 향상을 통한 고객 만족도 제고는 물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앞으로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노사 양측의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회사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 측은 그동안 노조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노조 활동을 보장해왔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노조 측은 사측의 노조 와해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해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단을 요구해왔다. 실제로 이번 노조활동 보장 결단에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16년 국회 청문회에서 “앞으로 모든 저희 사업장 말고도 협력사까지도 작업 환경이나 사업 환경을 챙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 배경에 대해 노조 와해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이번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다,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 등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약칭 경실련) 경제정책팀 관계자는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이 노조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며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고, 공작에 가까운 수준의 노조 파괴 행위들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노조 경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늦어진 측면이 있지만 지금에라도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기하고 건전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점은 환영한다.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노조를 인정하는 표현을 한 것 자체가 과거와 달라 긍정적인 부분이다”라면서 “확실한 검찰 수사를 통해 이에 대한 사법처리가 제대로 이뤄져야 삼성의 이번 결정이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