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원성훈 기자]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미사일 엔진 시험장인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최근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성의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작업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위험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조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지난 20일과 22일까지 촬영된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이 같이 판단했다"며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것을 북한이 실행하는 첫번째 중요한 조치"라고 23일(현지시간) 평가했다.
◇약 2주 전부터 해체작업 시작된듯
38노스 설립자 조엘 위트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우주발사계획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 움직임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한 걸음이 될 것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한의 ICBM 프로그램 기술 개발에 이 시설들(서해위성발사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북한의 이러한 노력은 신뢰 구축 조치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38노스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는 미사일과 위성발사체 등을 조립해 이송하는 궤도식(rail-mounted) 구조물, 액체연료 엔진 개발을 위한 로켓엔진 시험대 등에 대해 해체작업을 시작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궤도식 구조물이 해체되면서 지하 환승용 구조물도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인근에 대형 건설 크레인과 차량들이 배치돼 있기도 했다. 근접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지붕과 지지 구조물들이 부분적으로 해체된 모습이 보였다. 이어 22일에는 해체 작업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구조물 한 곳이 완전히 해체됐으며 부품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발사장 인근의 미사일 엔진 실험장도 20일 위성사진에서는 2017년 12월 이후 한번도 이동된 적이 없는 궤도식 보호시설이 완전히 해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형 연료 및 산화제 벙커들과 시험대 상부 철제 구조물이 일부 해체 중인 것으로 보였다. 22일 위성사진에선 엔진 실험장 시험대의 경우 기초만 남긴 채 완전 철거됐다.다만 연료·산화제 벙커와 주 처리 건물, 발사탑은 아직 해체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38노스는 "해체작업에 상당한 진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해체작업은 약 2주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곧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엔진 시험장으로 서해위성발사장을 지목했다.
서해위성발사장은 북한이 우주 발사용 로켓엔진을 시험해온 곳으로 북한에서 가장 큰 시험장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본토까지 날아올수 있다는 화성-15형 ICBM이 이곳에서 개발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백악관에서 진행한 각료회의에서 "그들(북한)은 엔진 시험장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폭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38노스는 "북미정상회담 이후 상업용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아직 뚜렷한 해체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 "北, 비핵화 위해 차곡차곡 가고 있어"
청와대는 24일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의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비핵화(협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은 징조이고, 비핵화를 위해 차곡차곡 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항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벤트로 만들지 않고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북한도 나름대로 시기를 조절하기 위한 것인지 등의 의도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청와대 현안점검회의에서 정보당국이 파악한 서해위성발사장 부근에서의 북한의 움직임과 관련된 보도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지난 7월초 평양에 방문했을 때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면담 자리에서 지난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의 '정부가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와 관련해 사전통보나 사후 통보를 받을 일이 있냐'는 질문에 "북측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와 관련해서는 계속해서 듣고 있다"며 이같이 답변했다.
조 장관은 "구체적으로 일일이 말할 수 없지만 서로 간 긴밀하게 필요한 사안들은 주고 받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며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는)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이 미국 측에 약속한 사안들을 이행하는 차원이라 평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핵탄두의 폭발력을 실험하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대규모 핵실험장을 폐기한 바 있다. 서해위성발사장이 해체되면 핵탄두 운반 수단인 ICBM 개발과 관련된 중요한 시설도 폐기 수순을 밟게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