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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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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임팩트 인터뷰] “난 청개구리형 새로운 도전하며 보람 느껴”

공연계의 작은 거인 안호상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
30여년 공연기획·경영… ‘조용필 데뷔 50년 추진위원장’ 맡아


[시사뉴스 이화순 기자] 가수 조용필 데뷔 50년 기념메달이 화제가 됐다. 10월23일 오후 조용필 데뷔 50년 기념 메달 발매 기자간담회장인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 한국 가요계의 작은 거인 조용필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안호상(60)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장이 동행했다. 그는 ‘조용필 데뷔 50주년 추진위원장’으로 1년간 전국 여러 곳에서 조용필 콘서트를 개최하고 기념메달 발매까지 기획했다.  조용필과 서로 호형호제 하는 그는, 조용필을 처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국내 최고 예술경영자 겸 문화 행정가이자 공연예술계의 작은 거인 안호상 원장을 만났다. 


안호상 원장이 조용필과 만난 것은 1999년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예술의 전당 공연사업국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조용필 콘서트’로 대중가수 최초의 예술의전당 공연을 기획했다. 모두 반대할 때 그는 ‘된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열정 앞에 불가능도 스르르 녹아버렸다. 대중가요와 클래식 공연의 저변을 넓혔다. 대중의 니즈를 잘 알고 시대의 요청을 잘 읽어낸다고 할까. 
국립극장장 시절에 는 고사 직전의 전통예술을 살려냈고, 오페라를 유행 장르로 변화시켰는가 하면, 지휘자가 쓰러져 공연이 펑크날 위기를 잘 수습하는 등 천재적인 예술 경영을 해왔다.  


-1999년 예술의전당서 ‘조용필 콘서트’를 개 최했을 때 어려움이 많았던 걸로 안다.
지금에야 예술의전당에 클래식 외의 공연도 많지만 1999년 당시만 해도 벽이 높았다. 1999년 당시 예술의대중가수 공연으로 ‘조용필 콘서트’를 개 최했다. 대중이 좋아하는 만큼 ‘공연 내 용을 고급스럽게 해서 의미를 확장한다 면 폄하하고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다. 조용필씨도 처음에 내켜하지 않았 다. 괜히 예술의전당 공연 고집했다가 듣기 싫은 소리 들을까봐 꺼렸다. “그냥 콘서트가 아니라 좀더 극화된 뮤지컬화 된 콘서트를 하자”고 그를 설득했다.

-본인이 체험한 것 중 가장 핫했던 이슈를 소 개해달라.
국립극장의 전통 예술이 거의 고사 직 전이었는데 살려낸 것과 2001년 런던필 을 이끌고 내한한 쿠르트 마주어(1927~2015. 당시 74세)가 사라 장과의 두 번째 협연을 앞두고 병원에 실려가 공연이 펑크날 위기를 막아낸 것, 최초의 대중가수 예술의전당 공연 기획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쿠르트 마주어의 와병 으로 일본 전국 도시 투어를 런던필과 함께 하던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당시 63세)를 원래 잡혔던 공연 당일 무대에 세웠다.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막 후쿠오카에서 삿포로로 공연을 가는 도중에 단 하루 일정이 비는데 그날이 마침 사라 장과의 두 번째 협연일이었다. 결국 일본 재팬아트 측과 그날 밤 자정에 통화 후 승낙을 받았다. 2시간 후 일본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승낙을 받고 레퍼터리를 정 하니 새벽 4시30분경. 러시아인인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한국 비자를 해결해야 하는데 당시 2001년이라 비자 발급이 쉽지 않았다. 후쿠오카 총영사를 급히 찾아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새벽에 지휘자의 비자를 받아 오전 9시30분 비 행기로 서울에 도착하도록 했다. 이후 낮 12시에 강남 M호텔에서 지휘자복과 신발을 준비하고 입혀 예술의전당에 도 착해 오후 2시부터 리허설 시작, 5시간 30분 후 사라장과의 협연을 성사시켰 다. 물론 바로 일본 비자를 만들어서 다음날 아침 일본 삿포로 공연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지금 생각해도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




-현장에서 문화예술 경영자로 또 문화행정가로 대단한 기록들을 많이 세웠다. 강단에 서서 가르치는 소감을 듣고 싶다.
사실 기회가 되면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현장에서 학교 계신 분들과 토론도 하고 글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기회가 빨리 왔다. 한국적인 예술 경영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예술 경영을 남들처럼 제대로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현장에서 일하면서 더듬거리며 길을 개척해왔다. 외국 사례나 문헌을 참고하기도 한다. 외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는 어떤 단계인지…

-현장 경험이 많으니 그 자체가 학생들을 위한 좋은 수업 재료가 되겠다.
한국의 현장, 한국의 관객, 예술계의 이해 관계 자체가 미국이나 유럽 등지와 다르니까 아무래도. 예술의전당 말단에서 공연부장, 예술사업국장까지 23년, 서울문화재단 대표 5년, 국립극장장 5년 9개월을 하면서 쌓아온 것이 수업재료가 되는 셈이다. 공연 기획, 제작, 예술 경영, 극장 경영 등을 가르친다. 예술 현장의 메가트랜드와 마이크로트렌드를 가지고 공연 기획·경영하는 분들에게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사례별로 가르친다. 연극 무용 클래식음악 전통음악 창극 등 한국 공연예술 전반과 기 획·프리젠테이션·예술가와 관객의 관계, 해외 예술가들과의 관계, 위기 상황 극복 등 다양한 내용이다.

-국립극장장 시절에 관객을 개발해 전통 문화 를 살려낸 것도 유명한데.
국립극장에 가보니 자체 공연이 봄 가 을 2회 공연이 전부였고 객석도 썰렁했다. 대관이 대부분이었다. 레퍼터리 개발과 관객 개발이 시급했다. 국립 단체 의 국내 내로라하는 최고 인재들이 썩고 있었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관현악단, 이 3개 단체에 연간 7~10개 작 품을 새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반대도 극심했다. 사표낸 분 빼고 남은 단원들과 신입단원들과 함께 밤 10시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창극 ‘장화홍련전’이 그렇 게 매진됐고, 이후 ‘배비장전’도 성공이 었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싱가포르 연출가와의 협업이 돋보였다.
콜라보레이션을 다양하게 했다. 창극 연출은 외국 연출가에게 맡기고,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에게 국립무용단 연출을 맡겼다. 정구호 연출의 ‘향연’은 궁중정 재부터 종교제례, 민속무용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춤 12종을 새롭게 엮어 한국 춤을 총 망라한 것이다. 국립무용단의 인기 레퍼터리가 그렇게 탄생했다. 싱가 포르 연출가가 맡은 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2017년 싱가포르 공연 당시 3 일간 전석 매진에 1500명 관객이 다녀갔 다. 국립극장장 재직시 30개 정도 신작 을 만들어서 그 중 12개는 고정 레퍼터리가 됐다.

-어떻게 썰렁한 극장에 새로운 관객을 몰고 왔는지 궁금하다.
전통 공연에 젊은 세대들을 불러모으기로 전략을 짰다. 기성 세대들은 전통 에 대한 편견이 있 어 설득이 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전통을 모르는 젊 은 세대가 우리 고 유의 전통을 ‘월드 뮤직’ ‘새로운 현대 예술’로 받아들이도 록 소개했다. DM, 맨투맨, 광고, 매 체, 전광판, 젊은이 들이 갈만한 장소나 행사장·음식점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노출하고 홍보했다. 타켓 집단 이 반응하도록 만든 다음에 새로운 관객이 몰려오도록 하니까 그 현상을 보고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국립극장장 시절에 공연 편수와 관객수가 배 로 늘었다. 어떻게 가능했나.
2011년에 연간 12편의 국립극장 전속 단체 공연 편수가 2015~2016년 23편으 로 늘었고, 관람객수도 연간 4만명에서 7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사실 어릴 때 부터 ‘청개구리’였다. 남들이 선호하는 편한 길보다는 험난해도 내가 만들어가는 길을 가는 게 신명났다. 예술의전당 도 처음 입사했을 때는 황무지 같았고, 국립극장도 개선점이 많았다. 또한 국립은 ‘국립’이니까 이름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 설정을 해야 했고, 소명의식으로 아티스트나 스탭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 

안 원장은 또 말러를 좋아하는 사람들 을 일컫는 ‘말러리안’이란 용어가 유행하게 된 데도 한몫했다. 1999년에 임헌정 부천필 지휘자를 만나서 그가 다른 곳에서 다 퇴짜맞고는 안 원장에게 “말러 하자”고 간절하게 매달리는데 너무 절박해보여 거절을 못하겠단다. 게다가 정규 단원이 60~70명도 안되는 오케스트라가 100명 이상은 연주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는 난이도 높은 말러 교향곡 전곡 완주 도전에 다들 손사래를 쳤다. 처음엔 공연장이 텅텅 비었다. 하지만 2003년엔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신화를 썼다. 이는 안 원장과 팀원들의 남다른 안목과 분석, 노력 덕분이었다. 

“말러 관객은 다르다. 혼자 일찍 공연장에 와서 팜플렛을 모두 사서 정독한다”는 직원들의 말에 ‘말러 토크’ 등 부대사업을 다양 하게 했다. 남들이 안하는 거, 새로운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안 원장은 그 힘을 모아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조용필 데뷔 50년 콘서트, 데뷔 50년 기념 메달 만들기 등 계속 새로운 일을 벌인다. 그의 청개구리 정신이 언제까지 발휘될지 궁금하다. 안호상 원장은 2011년 제43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화일반 부분 대통령상, 2013년 안전행정부 장관 표창, 2016년 제9회 공연예술경영대상을 수상했다.




경악스런 일본 갑질…‘펄펄 끓는 냄비에 얼굴을…’
[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엽기적인 일본내 갑질이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다. 주간 신쵸 출판사는 지난 21일 펄펄 끓는 냄비에 맨 얼굴이 처박힌 연예기획사 직원의 사연을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15년 12월20일. 피해자(당시 23세)가 소속된 연예 기획사의 망년회 때였다고 한다. 사장은 “고객이 있으니 뭐라도 재미난 걸 해봐”라고 지시했고, 주변의 누군가가 뜨거운 샤부샤부 냄비에 피해자의 얼굴을 밀어 넣었다. 또한 이들은 냄비에 피해자의 얼굴을 넣기 전, 다량의 음주를 시켰다고 한다. 주간 신쵸 출판사가 공개한 동영상에는 가스스토브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여성들의 비명이 울리고 피해자의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즐기는 듯한 주변인의 태도이다. 피해자는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이 회사의 사장은 “피해자가 스스로 냄비에 머리를 넣었다”며 부인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현재 이 사건의 명확한 진위 여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불륜 조작’ ‘가짜 부부’ ‘가짜 연인’ 등 인기를 위해서라면 이슈마저 꾸며내는 일본 연예계 속성상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도

YS 3주기 추모식 현충원에서 엄수..YS는 민주주의 거목
[시사뉴스 김세권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도식이 22일 오후 서울 현충원 현충관에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엄수됐다. 추모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김성태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들도 참석했다. 한국당 김무성 의원과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 등 'YS 정치문하생'도 자리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격동의 현대사를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도무문(大道無門·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의 정신으로 걸어왔다"며 "그 치열하고 위대했던 삶의 업적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힘써 투쟁한 결과로 오늘의 저희는 만개한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덕룡 민주센터 이사장은 "민주화 개혁을 통해 시종일관 국민과 함께했던 고인의 삶과 리더십을 되새기는 귀한 자리가 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의 위대한 열정을 가지고 대한민국

아모레퍼시픽, ‘세라마이드 신제형 크림’으로 장영실상 수상
[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아모레퍼시픽의 ‘세라마이드 고함유 라멜라 제형 안정화 크림’이 2018년 45주 차 ‘IR52 장영실상’ 수상 제품으로 선정됐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2일 서울시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IR52 장영실상 시상식’에서 ‘마몽드 모이스처 세라마이드 인텐스 크림’에 적용된 ‘피부장벽 세라마이드 고함유 라멜라 제형 안정화 크림’ 기술의 혁신성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밝혔다. 조선 세종대왕 시대의 대표 과학자 장영실의 이름을 딴 ‘IR52 장영실상’은 한국의 과학기술개발 풍토 조성과 기술 개발 촉진을 목표로 한다. 1991년 제정됐으며, 국내 기업과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우수 신기술 제품, 기술혁신 성과가 우수한 조직을 선정해 매주 포상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장영실상을 받은 아모레퍼시픽의 ‘세라마이드 고함유 라멜라 제형 안정화 크림’은 화장품 업계 최초로 풀라멜라 기술을 적용해 피부 장벽의 구조와 성분을 모사한 신제형의 고보습 크림이다. 세라마이드는 피부의 촉촉함을 유지하고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각질층 등의 피부 장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은 200회가 넘는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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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칼럼] 자기가 뿌린 씨앗은 자기가 거두는 법이다!
너에게서 출발한 것은 다시 너에게로 돌아간다.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 맹자편, 양해왕 하)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의 유래는 한방의에서 감기 등으로 신열이 있을 때 취한제(取汗劑)를 쓴다거나, 한여름 더위에 뜨거운 차를 마셔서 더위를 물리친다거나, 힘은 힘으로써 물리친다는 따위에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표현으로 변형(變形)이 되면, 내가 당한 것은 꼭 되돌려 줘야만 직성(直星)이 풀리는 여유 없는 심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요. 입장을 바꿔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에서 타인의 응분(應分)을 사거나 큰 실례를 저질렀다고 가정했을 때, 그 당사자의 심정은 과연 어떠한 마음일까요? 여기서 항상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문구를 해석해보면, 증자는 “네가 한 언행은 네게로 돌아간다. 즉 선에는 선이 돌아오고, 악에는 악이 돌아온다”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실로 ‘인과응보(因果應報)적인 삶의 전형적인 형태’로 보입니다. 즉, 이는 ‘노(魯)나라와의 싸움에서 추(鄒)나라 군대의 장교가 33명이나 전사했는데, 그 부하인 백성의 군대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