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상태가 남북철도착공식을 통해 조금씩 풀리는 분위기다. 착공식 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미 정상에게 친서를 보내 비핵화 의지를 다시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에 대해 긍정 화답하고 있다.
남북철도 착공식, 비핵화 물꼬 다시 열어
남북은 지난해 12월 26일 북측 개성 판문역에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열었다. 이날 착공식을 위해 편성된 새마을호 특별열차는 오전 6시48분께 서울역을 출발했다. 기관차 2량, 발전차 1량, 열차 6량 등 총 9량으로 편성된 특별열차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산가족, 남북 화물열차 기관사 등 100여명이 탑승했다.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방강수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 김윤혁 철도성 부상,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최병렬 개성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 100여명 열차를 타고 판문역으로 왔다.
리선건 위원장은 환담장에서 "철도·도로 연결은 남북이 함께 가는 의미가 있으며, 오늘 참여한 사람들이 '침목'처럼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측 주빈으로 자리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념사에서 "철도와 도로로 더욱 촘촘하고 가까워진 동아시아는 철도 공동체를 통해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을 견인할 것"이라며 "물론 이 희망의 전제는 바로 평화이며, 오늘의 착공식은 평화와 화합을 다짐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어 "철도와 도로의 연결을 통한 남북 간 교류와 왕래는 한반도 평화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며, 적대와 대립에 쓰였던 수많은 비용과 노력은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쓰일 것"이라며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평화롭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대립은 서로에게 족쇄이지만, 평화는 서로에게 날개가 됩니다"라며 "분단으로 대립하는 시대는 우리 세대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착공식에는 이례적으로 외빈도 참석했다. 추궈홍(邱國洪) 한국 주재 중국대사는 "이번 착공식은 남북 관계에 큰 진전을 이루는 것"이라며 "남북 관계, 평화와 비핵화를 긍정적으로 추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간 철도가 되도록 빨리 연결돼 중국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지금 평양에서 베이징까지 철도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과 평양이 이어지게 되면 나중에 서울에서 바로 기차 타고 베이징으로 갈 수 있을 거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도 외빈으로 참석한 가운데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도 이날 착공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남북 행사에 러시아 대사들이 만나게 된 데 대해 신기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의 깜짝 친서 이어 비핵화 공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일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비핵화 교착 국면에서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종전선언 등의 단계적 조치들이 다시 논의될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실에서 발행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란 1953년 정전협정을 통해 형성된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바와 같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와 함께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비핵화가 완전히 해결되는 단계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한다"며 로드맵도 제시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와 관련, 북미 비핵화 협상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대체로 내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전협정 당사국이 평화체제 전환을 위해 다자협상을 하자고 하는 것은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종전선언을 넣겠다는 것"이라며 “당사국이 3자가 될지, 4자가 될지 모르지만 다자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처음 밝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평화체제 협상을) 북미 간에 묶어둘 경우 갖는 한계나 불확실성을 다자협상으로 가져갈 경우 안전보장 등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중국을 평화체제 협상 당사국으로 인정하고 향후 2+2 협상 구도를 추진하겠다고 시사한 것”이라며 “남북 주도로 미국과 중국을 평화체제 협상으로 견인하자는 의미가 담겼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신중국수립 70주년(10월1일), 북중 외교관계 수립 70주년(10월6일)을 계기로 한 양국관계 강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덧붙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이 핵실험 중단을 넘어서서 핵무기 생산도 중단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며 “만약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무기 생산을 계속함으로써 2020년에 가서 10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고 북미 협상에도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본부장은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만약 미국이 북한의 인내심을 오판해 일방적으로 북한의 양보만을 강요하고 제재와 압박에만 매달린다면 부득이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힘으로써 최악의 경우 북한이 경제·핵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며 "미국측에서 아직까지 영변핵시설의 영구 폐기를 위한 상응조치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지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불만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김동엽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은 최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간 접촉에 나름 성과가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자신들의 단계적 동시적 추진을 명확히 하면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강하게 요구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양보만을 하지 않을 것이며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태영호 “北, 한치의 변화도 없어”
반면 이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상존한다.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는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와 관련해 “2018년 초나 지금이나 핵무기를 끝까지 고수해 나가려는 데 한 치의 변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가미래비전특위 ‘김정은 신년사로 본 2019년 한반도 정세 분석과 전망’ 간담회에 참석해 "핵무기를 포기할 결단을 내렸다고 이야기된 건 일부 사람들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올해 김정은의 대남·대미전략은 압축해보면 2019년 미북 핵 협상을 핵 군축협상으로 좁혀 전략적 위치를 굳히고 대북제재 완화를 끌어내려는 것”이라며 “이번 신년사에서 대미 메시지는 핵보유국 위치를 더 굳히려는 전략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라고 짚었다. 이어 “북한이 주장하는 로드맵으로 가는 것은 현재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 비핵화 실현 때까지 제재를 유지한다는 입장과 정면충돌 된다”라며 “김정은 입장은 제재가 풀리고 평화협정체제를 하기 전까지는 핵 공격 능력을 그대로 갖고 있겠다는 건데 핵무기를 그대로 두고 제재를 풀고 평화 체제를 추진하면 그것이 곧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으로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자고 하는 대목 뒤에 바로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공갈 대목을 끼어 넣은 부분을 주목한다”라며, “2차 북미회담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만약 회담 전까지 미북 간 타협점을 안 보여주면 2차 회담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올해 대남전략 메시지에서 눈여겨본 부분은 평화협정체계를 위한 다자협상 문제를 끼워 넣은 것”이라며 "현시점에서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해야 거절당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 중국 정부를 이용해서 미국을 압박해서 끌어내는 전술로 다가가려 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가 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 병행 추진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한미공조체제 유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라며 “평화는 힘에서 나온다. 일방적 양보는 북한 비핵화도 평화도 이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 높아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핵화 의지를 다짐하는 내용의 '깜짝 친서'를 보냄에 따라 조만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측근들과 몇차례 언급한 대로 ‘1월초에 가까운 시기, 늦어도 2월중’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늘고 있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10일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차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하는 등 정상회담 준비가 한참 진행됐었다.
그러나 양측은 제재 해제 내지 완화 문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정상회담 준비회담을 열지 못한 채 연말을 맞았다. 그런 시점에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보냄으로써 분위기가 다시 반전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들어 보이며 “김정은으로부터 방금 훌륭한 친서를 받았다”며 “우리는 정말로 매우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마도 또 하나의 회담을 가질 것"이라며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2차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대표상임의장 김홍걸)는 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정부가 화답에 나설 것을 희망했다. 민화협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노력으로 70년 냉전체제가 무너져 내려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와 금강산관광 불가조치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분단과 냉전체제 해체는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의 문을 활짝 여는 것에 그 단초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