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세권 기자] 21대 국회를 맞아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재건하기 위한 ‘파괴적 혁신’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그의 회고록에서도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혁신을 말하면서도 현 상태를 유지 관리하는 '지속적 혁신' 수준에만 머물지 시스템의 근본을 바꾸는 '파괴적 혁신'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종인의 창조적 파괴는 9년 전에도 시도한 바 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비상대책위원 시절 "한나라당이 창조적 파괴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브랜드를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김 위원장은 요구하면서 정강에 명시된 보수 용어를 상당수 삭제한 바 있다.
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인 2016년에도 김 위원장은 창조적 파괴 전략을 썼다. 그는 북핵 실험으로 안보 불안이 가중되자 진보 진영에서 북한을 향해 쓰길 꺼려하는 '궤멸'이라는 용어를 언급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대북 친화 정책만을 고수하는 민주당에 등을 돌린 유권자를 다시 돌려 그해 총선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여한 데 이어 9년 만에 다시 같은 당 비대위를 이끌게 된 지금은 단순히 정강에서 '보수' 용어를 삭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정당 모델을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진보, 보수, 중도라는 말 쓰지 마라.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마라"고 김 위원장이 통합당에 지시한 것도 이념에 치우친 정당으로는 국민적 지지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안팎에선 독일 기독민주당(기민당) 사례가 김 위원장의 쇄신 방향을 예상할 수 있는 일종의 척도가 될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근 원외조직위원장을 상대로 한 비공개 특별강연에서 "독일 기독민주당이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깨닫고 정책 수정을 했듯 통합당도 보수, 시장만 고집하지 말고 현실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의 이념에 기반한 진영대결의 틀을 김 위원장이 깨려할 수도 있다. 기존에는 좌우 진영 세력을 최대한 결집해 선거 때마다 힘겨루기를 반복했지만, 사회적으로 좌우 이념 갈등 대신 위·아래 계층 갈등이 더 심각한 만큼 기성 정당도 이런 흐름에 맞춰 유연성 있게 변화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보수와 진보 이념에 기반한 진영 대결에만 골몰하기보단 정규직 대 비정규직 갈등처럼 정치권이 '위·아래 갈등'을 해소하는데 더 중점을 둬야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기업 재벌, 정규직, 부유층, 기득권 등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에서 노동자, 서민, 사회적 소수자와 같은 '약자'를 더 챙기는 쪽으로 통합당의 변화를 김 위원장이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에 기인한 정책만 집착할 경우 진보 진영에 맞대응하기 힘든 만큼 보수의 색깔을 빼는데 중점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좌파진보 정당의 정책이더라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건 이념이나 정책의 '색깔'을 떠나 통합당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소신이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자 진보정당의 전유물로 여겼던 기본소득제, 전국민 고용보험제 등 정책이 보수정당인 통합당 안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