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세권 기자] 원(院) 구성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더불어민주당이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미래통합당이 향후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에 나서기로 하면서 21대 국회가 첫 발을 떼자마자 파행을 겪게 됐다.
특히 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원구성 협상 결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여야 협상 채널의 실종에 따른 극심한 시계제로 상태에 빠지게 됐다.
민주당은 15일 오후 통합당의 표결 보이콧 속에 국회 본회의를 열어 법사위원장 윤호중, 기재위원장 윤후덕, 외통위원장 송영길, 국방위원장 민홍철, 산자위원장 이학영, 복지위원장 한정애 의원 등 6명의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표결로 처리했다.
176석의 거대 여당인 민주당 뿐만 아니라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야당과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 소수정당도 표결에 힘을 보태면서 총 187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다수당이 단독으로 개원 국회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것은 7대 국회 시절이던 지난 1967년 이후 53년 만이다.
여야는 그동안 국회 본회의로 올라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법사위의 위원장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놓고 마주 달려왔다. 다른 상임위에서 법안을 처리해도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면 본회의로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법사위는 '상원(上院)'으로도 불린다.
법사위의 국회법상 권한인 체계·자구심사 권한으로 번번이 야당에 '발목잡기'를 당했다는 인식이 강한 민주당은 원활한 입법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반면 통합당은 여당의 입법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선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 몫으로 배분해야 균형추를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 구성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해 왔다.
민주당은 당장 오는 16일부터 일부 상임위원회를 가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회 정상화에 드라이브를 걸 태세다.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를 비롯한 코로나19 대응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고 북한의 대남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외교·안보 현안 해결도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법사위, 외통위, 산자위 등 상임위원장이 선출된 상임위를 중심으로 16일부터 전체회의를 열고 업무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행정안전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상임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은 상임위도 이번주 간담회 형식으로 업무 보고를 받는다.
나아가 민주당은 오는 19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남은 12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끝내고 21대 국회 원구성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본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기다릴만큼 기다렸고 양보할 만큼 양보했고 양당이 숙고할 만큼 숙고했다"며 "19일 2시 (본회의에서) 18개 상임위원장 모두 다 선출하는 게 저희 목표고 방향"이라고 못박았다.
통합당을 향해서는 "국회의 기능 중 법안과 예산에서 법안은 여당이, 예산은 야당이 담당하면서 그 속에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상호 노력은 항상 견지해나간다는 게 여당 입장"이라며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성원 수석부대표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며칠간 시간을 가져서 (원구성을) 원활히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당의 협상 사령탑인 주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한 만큼 나머지 국회 원구성 협상이 실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통합당은 여당의 일방적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을 '1당 독재'로 규정하고 향후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주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를 보이콧한 가운데 홀로 의사진행 발언에 나서 "여야 합의 없이 의사일정을 올린 것도 잘못이고 48년 개헌 국회이래 개원 국회에서 상대 상임위원을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배정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라며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가 이런 나라냐"고 비판했다.
그는 국회 본회의 시간 중 진행된 통합당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제1야당이 지켜온 법사위를 못 지켜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렇게 무너지고 파괴되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면서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을) 못 막아낸 책임을 제가 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통합당 원내대표 자리는 사실상 '공석' 상태가 됐다.
일단 통합당은 국회의장이 상임위원까지 배분하자 '전면 보이콧'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장외 투쟁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통합당 핵심 관계자는 "통합당으로서는 최소한의 자존심과 안전장치를 짓밟고 앗아가는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오늘 상임위원장이 선출된 상임위가 가동되더라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석은) 어렵다"고 했다.
통합당은 현재로선 보이콧이나 여론전 외엔 여당에 대응할 뾰족할 수가 없는 데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협상 결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고 있어 당장 16일부터 대여 전략을 짜고 협상을 끌어갈 사람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여당 입장에서도 법사위 등 6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지만 다음 본회의가 있는 19일까지 남은 12개 상임위를 두고 추가 협상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사라져 원 구성 협상과 관련해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