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황수분 기자] 갤러리 화이트원에서는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More natural than nature)'이라는 주제로 2021년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한 달간 최정혁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초대 기획전을 연다.
10일 갤러리 화이트원은 "관람객 모두가 작품에 담긴 탐스러운 사과들의 모습에 매료되는 기쁨을 누리며 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위안 받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정혁 작가는 10여년 이상 이런 '가상 속 실재 (Natural-Topia)'를 표현하는 작품 활동을 해 온 중견 작가다. 이번 전시회는 5년 만에 열리는 최 작가의 개인전으로서 다양한 크기의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눈 속에서 열린 탐스런 사과나 사과와 꽃을 동시에 달고 있는 사과나무 가지는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 속의 자연의 모습이다.
또 매끈하고 빠알간 사과는 시선을 사로잡고 뒷배경은 무심한 듯 처리해, 마치 사진기를 통해 본 듯 공간감을 주어 관람객의 시공간을 뒤바꾼다.
그의 세심한 붓질로 인해 탄생한 작품을 보고 있으면 현실 속 사과를 가짜라고 느낄 만큼 실제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게 특징이다.
김연주 평론가(미술비평·철학박사)는 "최 작가의 작품은 자연으로 가득하며 그림을 그린 사과가 붉게 익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 작가의 작품세계는 "이미지를 통해 동서양의 예술 경계를 잇고 연상과 상상에 의한 초현실적, 초사실적 非실재로서의 결코 가볍지 않은 유희적 초월을 작품으로 제시한다"라고 표현했다.
김연주 평론가의 상상유희想像遊戱 : 실재같은 非실재에서 노닐다(전문)
프레임을 통해 본 자연
최정혁의 작품은 자연으로 가득하다. 그 공간은 바깥쪽을 향해 활짝 열린 창문처럼 자연을 내보이며 보는 이들을 이끈다. 프레임 가까이 보이는 경물과 그 경물 뒤로 깊게 물러나는 열린 공간은 프레임 안에 무한한 공간을 드러낸다.
탐스럽게 익은 사과, 사과를 더 붉게 강조하는 푸르른 나뭇잎, 나뭇잎 사이로 활짝 핀 사과꽃, 붉은 사과 위로 소복하게 쌓인 눈, 미처 잎을 떨어내지 못한 한겨울의 나뭇가지, 햇살을 투명하게 받아내는 푸른 잎새, 끝 간 데를 모르고 하늘로 뻗어 오르는 노송(老松)……프레임 속 자연경물은 스스로의 모습을 뚜렷이 각인하며, 동시에 그들이 속해 있는 공간의 무한함도 드러낸다. 작가가 고집스럽게 그려낸 자연 경물들 하나하나가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은 한없이 멀어지는 공간 속에 놓여 있어서가 아닐까.
사과가 만져질 듯 보이고, 촉촉한 흰 눈이 느껴지며, 푸른 잎이 무수히 달린 가지가 반짝이며 다가오는 그 공간 너머로 아득히 펼쳐지는 시공간 속 자연을 작가는 우리에게 열어놓는다. 최정혁의 프레임 속 자연은 이렇듯 예술적으로 ‘가공된 자연’이다. 그는 경물의 섬세한 처리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사유하고 체험하도록 하며 ‘가공된 자연’의 시공간을 확장한다.
非실재: 실재와 실재의 관계적 유희遊戱
최정혁이 그린 사과는 붉게 익었다. 그리고 붉은 사과 사이에 사과로 거듭나게 한 원천으로서의 분홍빛 꽃이 함께 피어있다. 가을과 봄을 잇는 한여름의 싱그러운 푸른 잎도 ‘가공된 자연’으로 동일한 지점의 시공간을 점유했다. 또 다른 그림에는 붉은 결실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리듯 사과 위에 눈이 수북하다. 눈은 사과를 꽁꽁 얼리기보다는 햇빛을 품은 따스함으로 물방울이 되어 맺힌다.
이들 경물은 사실적이다. 마치 눈앞에 자연의 일부분을 그대로 펼쳐놓은 듯 극적으로 다가온다. 극적으로 다가선 이미지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가공된 자연’이라는 의미에서 초 사실적이다. 그의 작품에 보이는 ‘자연의 가공성’은 실재와 실재의 관계 맺기로부터 비롯된다. 최정혁의 작업은 실재와 실재의 유희적 관계 맺기를 통한 실재 같은 非실재를 작업 대상으로 한다. 각각의 실재, 이들을 통한 관계 맺기, 그로부터 연출되는 유희적 非실재 공간이라는 예술적 가공을 통해 작가는 감상자의 연상과 상상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작가의 상상유희는 우선 시간과 공간의 관계 맺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가 가공한 자연으로서의 사과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과가 아니다. ‘사과’라는 보편성을 띠고 작가의 예술 공간에서 실재와 실재로 관계 맺어진 비실재적 사과이다. 사과와 사과꽃, 사과와 눈이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이들 이미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관계 맺기의 ‘가공된 자연’ 즉 非실재의 이미지이다.
이러한 예술적 가공은 작가가 창작한 이미지에서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감각 작용과 상상이 결합되어 환기되는 특징을 일컫는, 소위 ‘의경意境’을 창출하고 있다. 이는 작가뿐만 아니라 감상자에게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경험으로서 환기되는 특유의 내면세계이다. 시공간의 관계 맺기는 공감각적 체험으로 이어진다. 봄꽃과 가을사과의 향기, 새콤달콤한 미각과 수분 머금은 따뜻함을 담지한 차가운 촉감은 시각을 자극하면서도 후각적이며, 미각을 깨우면서도 촉각도 건드린다. 실재 간의 시공간적 관계맺음은 공감각으로 유도되어 실재같은 非실재에서 노닐게 한다.
그의 두 번째 非실재적 유희 장치는 자연스러운 인공적 색과 시점의 활용에 있다. 작가가 연출한 작품 공간의 색은 실제의 자연색을 TV브라운관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 같은 디지털적 색이다. 자연보다 더 생생한 자연 같은 색, 그러나 가공되고 비실재적인 색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자연경물의 색은 캔버스 뒤에서 투과해 비추어지는 디지털 빛처럼 유도된 색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작가에 의해 한발 더 나아간 예술적 장치이다. 자연색과 디지털적 전자색과의 관계 맺기는 산점투시의 유희로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색이 그 선명함을 깜박거리며 형을 보였다가 흐렸다가 하듯 작가는 그의 의도에 따라 시점을 확정하지 않고 존재하는 실재 사물 하나하나를 공간 안에 위치시킨다. 소실점이 제거된 공간에서 각각의 경물은 그들 고유의 공간 깊이를 가지며 감상자의 시점을 화면에서 노닐도록 유도한다. 이들의 관계성에 의해 작가의 경물들은 심오한 공간 속에 견고한 하나의 실재처럼 남겨진다.
최정혁 작가의 세 번째 유희적 장치는 움직임을 품은 고요함에 있다. 그의 화면은 정적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정적은 언제나 움직임을 담고 있다. 사과의 묵직함에도 얇은 꽃잎은 햇빛의 반짝거림과 함께 바람에 흔들린다. 눈 속에 매달린 붉은 사과에는 흘러 맺힌 물방울이 곧 떨어질 듯하다. 하늘을 향해 빛을 투과하는 <와유>시리즈의 나뭇잎들은 바람에 햇빛을 보였다 감추었다 하며 끝없이 움직임을 유발한다. 화면에서 그 정적은 동動과 관계맺은 정靜이다. 실재와 실재의 관계 맺기를 통한 비실재의 이미지들은 공감각을 유도하고, 화면의 깊이감을 창출하며, 화면에 끊임없이 움직임을 감지하도록 하며 감상자를 내면세계의 상상 유희공간으로 이끈다.
상상유희想像遊戱 공간에서 노닐다
그의 작업은 일견 실재의 극사실화처럼 보이지만, 형과 색의 함축적 표현과 자연의 본질 추구를 위한 직관적 표현이 그 의도의 중심에 있다. 실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작가가 실재의 이미지를 추출하고 함축하고 생략하는 직관력을 오묘하게 운용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그의 작품에서 극사실적 묘사기법은 실재 경물의 강조와 생략의 미묘한 관계성으로부터 비롯했으며, 그의 예술적 사유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서양의 예술적 기법을 토대로 한 이론의 종합화에 기반한다.
그가 창조한 예술적 공간을 ‘실재같은 非실재의 상상유희 공간’이라 규정하는 것은 그 공간이 시각적으로 예술적 쾌감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가 체득한 동서양 고금의 예술적 사유들과 기법들을 직관적으로 운용하고 이를 프레임을 통해 시각화하여 깊이 있는 노닒의 공간으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경물들은 어떤 것을 상징하거나 그 대용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재같은 非실재적 공간을 그저 흥미롭게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무심히 스쳤던 자연물에 대해 다시 한번 그 관심을 유도하고 그로부터 연상과 그 보이는 실재 바깥으로 새로운 정취를 끌어내는 것에 그의 창작 의도가 있다. 그 예술적 장치는 바로 실재와 실재의 관계 맺기로 초월하는 것이었고 그가 非실재적 유희공간을 통해 의도한 것은 동아시아 회화에서 추구했던 ‘이미지 바깥의 이미지(象外之象)’이며 ‘경물 밖의 경계(景外之境)’의 서양화적 버전이다.
최정혁의 작품세계는 이미지를 통해 동서양의 예술경계를 잇고 연상과 상상에 의한 초 현실적, 초사실적 非실재로서의 결코 가볍지 않은 유희적 초월을 작품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작가가 펼쳐놓은 非실재의 그 깊은 열린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어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