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새정치’를 전면에 내걸고 여야 기성 정당들에 대한 쇄신을 이끌겠다고 호언장담해오던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민주당과 통합을 합의하고 제3지대 신당 창당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새누리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야권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해오던 민주당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양당 모두에 염증을 느껴 안철수 신당에 힘을 보태왔던 새정치연합측 일부 인사들은 극한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새누리당과 함께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비난해오던 민주당과 통합을 합의했다는 점도 그렇지만 어느 누구와도 논의 한 번 하지 않고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 나홀로 결정한 합의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겉으로 새정치를 말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태정치로 점철돼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붓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기초선거 공천폐지 소식에 기다렸다는 듯 통합 합의
지난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은 국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새정치연합이 먼저 이같은 결정을 한데 이어 이날 민주당도 최종 결심을 굳혀 발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 더욱 관심을 모은 것은 기초공천 폐지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을 하겠다고 돌발적 선언을 한 것. 이와 관련 김 대표와 안 위원장은 “양측은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새정치를 위한 신당창당으로 통합추진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정권교체를 실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측 통합의 가교는 기초공천 폐지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 두 사람은 정부여당을 향해 “대선 때의 거짓말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정치가 선거승리만을 위한 거짓 약속 위에 세워진다면 앞으로 국민과의 어떤 약속도 불가능하며 국민은 정치와 정당의 약속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기만은 국민의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진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엄중한 상황 앞에서 새정치를 위한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새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자산을 만들어 나가는데서 출발한다. 새정치는 약속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두 사람은 “거짓의 정치를 심판하고 약속의 정치를 정초하기 위해 양측의 힘을 합쳐 신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 간 통합 논의는 지난달 28일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절대다수가 기초선거 무공천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날 밤 김한길 대표가 안철수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무공천 원칙을 통보하며 통합을 제의했고, 3월 1일 오전 8시 30분 두 사람이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한 차례 회동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두 사람은 이날 밤 8시 30분 다시 회동을 갖고, 이튿날 새벽까지 논의를 펼친 끝에 2일 새벽 통합에 전격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정치를 외쳤던 ‘안철수’는 사라지고, 원내 127석을 가진 민주당과 2석을 가진 새정치연합이 합쳐진 새로운 신당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
두 사람의 통합 발표에 정치권은 들끓었다. 무엇보다 거대 제1야당에 안철수 측이 흡수돼 버릴 것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고,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민주당의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안철수의 계획된 행보 아니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안철수는 어떤 기득권을 포기했나? 비난 속출
당혹스러운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이견이 없었던 터라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독단적 결정이라며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특히 일부 언론과 새누리당에서는 야권에서 친노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합당은 안철수 세력을 섞어 민주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세력을 오그라뜨리려는 물타기”라며 “하지만 친노세력들은 이번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음이 입증되는 그때를 기다리고 그때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에 대한 대대적 반격에 나서 당권 재장악을 시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수석은 또 이번 통합 발표에 대해 “민주당으로는 6.4지방선거에서 이길 방법이 없고 안철수 당은 선거는커녕 후보자를 내기도 어려운 처지이니 겉은 안철수로 포장하고 내용물은 민주당으로 채워 유권자들을 속여 보려는 심산”이라며 “한마디로 유권자를 봉으로 여기는 정당 합치기”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당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며 “국민은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했고 여론 확인은커녕 한마디의 유권자들의 의견 개진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김한길-안철수 두 사람의 독단적 결정에 대해 지적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도 “‘정치공학적 선거연대는 결코 없다’, ‘연대론은 패배주의적 시각이다’,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 면서 입만 열면 호언장담을 쏟아냈던 안철수 의원이 모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그렇게도 비난하던 구태정치, 발목잡기 블랙홀 정당의 가슴에 몸을 던지며 민주당을 바꾸는 것도 새정치라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변명을 한 안철수 의원이 안쓰럽기까지 하다”고 힐난했다.
최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선거의 유불리를 떠나 국정운영의 정상적 파트너가 될 수 있는 합리적 대안 야당을 기대했던 우리에게도 큰 낙심이 아닐 수 없다”며 “신기루 같았던 안철수 의원의 정치실험은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정작 안 의원 자신은 아무런 기득권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면서 “조직력과 정당보조금 등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안 의원 측도 쉽게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민주당의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안철수 위원장은 곳곳에서 쏟아지는 이같은 비난의 목소리에 “전국의 발기인을 포함한 여러 동지들께 미리 상의 드리고 충분한 의견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면서 “새정치란 민주당이 바뀌어도 새정치고, 새누리당이 바뀌어도 새정치”라고 강조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는 것으로, 안 위원장은 민주당을 반드시 개혁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