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국가적 재난에 버금가는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전적으로 정부나 재난당국의 대처에 모든 것을 기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국가에 있고, 그것이 바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런 이상적 국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수백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고 끊임없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능 자체였다. 국민들은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대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당국에 분통을 터뜨렸다.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에도 여전히 정부의 대처는 취약하기만 하다. 경제성장만이 선진국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초반부터 구조-구호 총동원 됐더라면…”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것은 지난 16일 오전. 사고 발생 이후 재난당국은 가장 기본적인 피해자 집계와 구조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허점투성이의 모습을 드러냈다. 수습한 시신 숫자 발표마저 이랬다저랬다 우왕좌왕했다. 중복 집계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사고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대책본부가 무엇하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없었다는 데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적 분노는 들끓었다.
승선 인원만 하더라도 그렇다. 정부는 당초 사고 첫날 승선인원을 477명으로 발표했었다. 하지만 다시 459명, 462명, 475명, 476명으로 무려 다섯 차례나 집계를 번복했다. 몇 명이 타고 있었고, 몇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는지조차 파악도 못한 채 사고를 수습하겠다고 나선 셈이었다.
이는 곧, 사고 초동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사고는 물론이고 모든 대형 사고들의 공통점은 초기에 얼마나 대처를 잘 하느냐에 따라 피해규모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즉, 세월호 참사는 뒤늦은 대응이 화를 키웠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초동 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교수는 “선박 전복 사고 등에는 초동 조치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번 경우에도 (선장이) 4~5분만 퇴선 조치를 빨리 했어도 생존율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도 “선장이 판단을 잘못해서 퇴선 명령을 안 내렸거나 늦게 내린 것이 가장 잘못됐다”면서도 “초반부터 대규모 구조-구호 장비 등이 총동원됐다면 초기 구조에서 성과를 봤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즉,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탈출한 것만이 피해를 키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와 재난당국 또한 이번 세월호 침몰 피해를 키운, 또 다른 원인을 제공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는 이미 과거에도 대형 선박 사고를 경험했었다는 데 있다. 21년 전인 지난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로 무려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었다. 21년 전 당시와 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에도 해경은 처음 140여명이 타고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가 다시 221명으로 번복했다. 하지만, 이조차 사실과 달랐다. 최종에는 승선인원이 362명이나 됐던 것으로 드러났고, 우왕좌왕하는 관계당국 탓에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2시간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 사고 신고가 접수되고 해경과 해군 등은 헬기 16대와 선박 24대를 동원해 구조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구조장비와 인력이었다. 결국 6시간이나 지나서 당국은 헬기 31대, 선박 60척으로 증강 배치했다. 하지만, 이미 세월호는 뱃머리만 수면 위에 남은 채 가라앉아버린 상태였다.
또, 해경과 해군의 본격적인 수색 작업도 사고 이튿날에서야 진행됐다. 한 시라도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늦은 조치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제도적 허점 역시 지적되고 있다.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지금껏 다양한 제도와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는 “나름대로 규정을 만들었음에도 제대로 시행되는지 관리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며 “기상 상황 대응 훈련 등도 평소에 해야 하는데 안전불감증으로 그냥 넘기다 보니 이번 같은 경우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해양 분야는 다른 재난보다 특수하므로 '해양 대책본부'와 같이 중대본과 별도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野 “위험감수 익숙하지만, 위기관리 문화 없기 때문”
한편,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을 다녀온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이번 참사와 관련해 “우리사회의 너무나 만연해있는 안전불감증 문화 탓”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대표는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및 여객선 침몰사고 대책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 이 같이 지적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위험감수에는 익숙하지만 위험관리, 위기관리 문화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또, “참담한 심정으로 진도현장에 다녀왔다. 넋을 놓고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계시는 실종자 가족 분들 앞에서 어떤 위로의 말씀도 드리기 힘들었다”며 “희망을 놓지 말자는 말 말고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온 마음을 다해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한다”고 간절한 심정을 밝혔다.
안 대표는 그러면서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가 겨우 두 달 전 일”이라며 “아름답게 피어날 꽃다운 나이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안 대표는 이어, “국민안전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없다. 국민안전은 헌법적 가치”라면서 “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했나, 정치권은 무엇을 했나 깊이 생각해 봤다. 그러면서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우리 모두 처절하게 기억해야 한다. 깜깜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을 두드리는 부모의 눈물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거듭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고도 우리가 잊는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속절없이 좌초하고 말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안 대표는 덧붙여 ‘체계적인 구조활동’과 ‘정확한 정보전달’ 등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면서 “대통령과 정부에 요청한다. 많이 지쳐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해달라”며 “국민안전을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면 저희도 200%, 300%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