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4박5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여운이 우리 사회 곳곳에 깊고 진하게 남겨졌다.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찾고, 자신의 몸을 낮출 줄 아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소통을 중시하며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리더십으로 회자되고 있다. 깊은 울림을 남긴 교황의 메시지들은 그 누구보다 여야 정치권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갈등과 분열, 반목을 거듭해온 정치권이 이번 교황 방문을 계기로 환골탈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수와 진보 단체들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실 된 가르침에 고개를 숙였고, 정치권 일각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그의 한 마디가 어록이 되다
짧은 방한 일정을 마치고 떠났지만, 교황이 이 땅에 남기고 간 메시지들은 가히 신드롬 수준으로 증폭돼 강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리더십이 부재한 지금 한국사회에 그가 크나큰 깨달음을 던져주고 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소탈한 행보들부터 우리 지도자들이 배울 점으로 꼽힌다. 권위를 내려놓고 소형자동차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숙소마저 주한교황청대사관을 이용하는 등 소탈함 그 자체의 모습을 보였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소탈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교황은 지난 16일 시복미사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으로 한 달이 넘게 단식농성 중인 김영오 씨를 만나 두 손을 부여잡고 위로했고,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 인자한 미소로 축복을 기도했다. 4박5일 간 교황은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도 잊혀 가고 있던 아픈 곳들에 다시 빛을 비추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물론, 새터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위안부 할머니,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 밀양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등 대통령도 다 만나지 못했던 이들을 교황은 4박5일 동안 만나고 또 위로하고, 용기를 심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는 곳마다 남긴 어록들은 감동 이상의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14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뒤 가진 공동연설에서는 “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평화라는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찰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평화의 부재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이 땅 한국에서는, 이러한 호소가 더욱 절실하게 들릴 것이다”고 한국의 정서를 깊이 있게 이해한 메시지를 남겨 감동을 줬다.
또, 이 자리에서 교황은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고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며 평화와 소통의 참된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17일에도 교황은 해미 순교 성지에서 “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려 깊은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한다”며 “공감하는 능력은 진정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진정한 대화에서는 형제애와 인간애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나 생각, 그리고 질문들이 생겨나게 된다. 진정한 대화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진정한 만남을 이끌어 낸다”고 거듭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8일 명동성당 미사 강론에서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베드로가 주님께 묻는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이 말씀은 화해와 평화에 관한 예수님 메시지의 깊은 핵심을 드러낸다”는 메시지가 언론 등을 통해 확산되며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남북간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이유에서다.
◆與·野도, 보수·진보도 모두 ‘큰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같은 말과 행동을 통한 가르침에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정치적, 종교적 차이를 떠나 80이 다 돼가는 원로로서 그가 보인 진정성과 깊이 때문이었다. 진보성향의 민주노총은 논평에서 “교황의 언행은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 노동자에게도 적지 않은 위안이 됐다”며 “그가 남긴 메시지가 한국사회 인식전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교황이 ‘물질주의와 무한경쟁 사회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데 대해 “자본의 탐욕에 사로잡힌 사회에 대한 걱정을 넘어 행동을 촉구한 것”이라며 “권위의 벽을 낮추고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민노총은 이런 칭송을 하면서 “자국의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경제·종교계 등 사회지도층에게 절망과 분노를 느끼는 한편, 오히려 지구 반대편 타국의 교황에게 위로를 받아야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개탄스럽다”는 입장을 덧붙여 밝히기도 했다.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 김명환 총재도 “이번 교황 방문을 통해 우리는 사회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키워드가 바로 소통과 화해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교황의 낮은 행보가 우리사회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명환 총재는 덧붙여 “교황이 던진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 화해를 향한 메시지가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이끄는 분수령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야 역시 교황과 비교되며 비판을 받으면서도 교황의 행보에 대해 거듭 높이 평가했다. 새누리당 김현숙 대변인은 지난 17일 논평에서 “교황의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는 종교적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는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며 “이제 우리에겐 교황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누리당은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겠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은 지난18일 현안 브리핑에서 “치유와 위로, 화해와 평화를 말씀하신 교황의 가르침과 메시지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 그리고 희망의 화두를 제시해 주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눈은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만 향했고, 그 눈이 향한 곳에는 우리 사회 약자들이 있었다. 청와대가 외면한 사회문제, 정치가 외면한 사회적 약자를 교황이 안아주셨다”고 말했다.
한 대변인은 “이제는 정치가 화답해야 한다. 위로가 끝이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며 “정치가 희망을 줄 수 있도록,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주신 위로와 평안의 메시지가 묻히지 않도록 정치가 제대로 제 할 일을 해야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도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교황께서 광화문 광장을 돌던 중 유일하게 차에서 내린 곳이 바로 유민이 아빠 앞이었다”며 “늘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편에 서고자 하신 교황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시는 발걸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교황의 행보에 감동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