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청와대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간 갈등 관계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개헌론을 놓고 아슬아슬해 보이던 양측 간에 확실한 금이 가기 시작한 것.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거듭 올해 개헌 논의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경제 블랙홀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평소 개헌론을 펼쳐오던 김무성 대표는 한동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개헌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당내 함구령까지 내기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러던 김 대표가 돌연 중국을 방문 중에 ‘개헌’ 얘기를 꺼내든 것. 여권 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그가 ‘개헌’을 언급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그리고 마치 생각해뒀던 시나리오인 듯, 김 대표는 귀국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며 납작 엎드리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무성 “정기국회 끝나면 개헌 논의 봇물 터질 것”
지난 13일부터 중국을 방문했던 김무성 대표는 일정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6일, 상하이 홍교 영빈관에서 기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대통령의 시각에선 개헌논의가 이르다는 시각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개헌 논의가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 터지고,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박 대통령에 반기를 든 것과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개헌 시기에 대해 “대선이 가까워지면 안 된다”고 조기 개헌 필요성을 시사했다. 김 대표는 이어 “내가 볼 때 우리 사회가 철저한 진영논리에 빠져서 지금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다”며 “이제 우리 사회 분위기가 중립지대를 허용하는 수준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제는 중립지대를 허용해 연정을 가는 것이 사회 안정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김 대표는 권력구조 개편 방향과 관련해 정부통령제를 선호하지만,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대표는 “점점 더 진영 논리에 의한 양극 대립이 심해지고 있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이라며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 방문길에 동행했던 이재오 의원과 개헌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후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이 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대통령 4년 중임제는 ‘개악’이라고까지 표현하며 ‘분권형 개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김 대표가 이를 일정 수용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유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길다”고도 밝혔다. 이는 다시 4년 중임제에 대한 평소 소신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국에서 개헌 얘기를 과감하게 했던 김 대표는 이튿날인 지난17일 귀국하자마자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정감사 대책회의에 참석해 “중국에서 제가 예민한 개헌논의를 촉발시킨 것으로 크게 확대 보도된 것을 해명하려고 한다”며 “그때 분명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개헌논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기국회 끝나면 개헌논의 시작할 것을 걱정하는 투로 얘기했다”고 해명했다.
김 대표는 이어 “정식 기자간담회가 다 끝나고 식사하는 시간에 저와 같은 테이블에 있던 기자와 환담하던 중 개헌에 관한 질문이 있었고, 민감한 사항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제 불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대표는 “대통령께서 이탈리아 아셈회의에 참석하고 계시는데 예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공개 사과하기까지 했다.
김 대표는 거듭 “그런 점을 이해해주시고 저의 불찰로 연말까지 개헌논의가 없어야 하는데 이렇게 크게 보도가 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며 “(이완구) 원내대표와 아침에 이야기했지만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우리 당에서 개헌논의가 일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靑-친박 “대통령이 간곡하게 당부했는데도…” 부글부글
김무성 대표의 이같은 개헌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당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는 생각 안한다”며 김 대표가 고의적 개헌 띄우기를 했다는 인식으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1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자가 노트북을 펴놓고 말하는 것을 받아치는데 그런 상황에서 개헌 관련 언급을 한 것은 기사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 아니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가 보다 나은 상태로 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과연 개헌 얘기냐”며 김 대표를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친박계도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홍문종 의원은 지난 17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김 대표의 개헌 발언에 대해 “나라와 여당에 도움이 안된다”고 일갈했다. 홍 의원은 “김 대표가 개헌론에 대해서 약간 유보적인 입장이었는데 상하이에서 국내를 향해서 쌈빡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살려야 하는 시점에, 결국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개헌론으로 달려들자’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과연 이 시기에 대통령이 간곡하게 당부했는데도 이 이야기를 했어야 했을까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우려가 된다”며 “섭섭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홍 의원은 또 “아마 (김 대표) 주변에 있는 분들이 김 대표가 앞으로 대통령 후보가 돼야 한다는 것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주변 이슈들에 대해서 천천히 살펴보고, 그런 것들이 어떤 임팩트가 있는가를 따져봐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거듭 “당 대표로서 충분히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이 시점에 과연 개헌론이라는 것이 나라에 도움이 되고, 또 우리 여당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결국 민생이 실종되고, 대통령 선거가 3년 반이나 남았는데 다시 대선 정국으로 몰고 가는 것 같은, 그래서 무슨 도움이 될지 걱정이 된다”고 꼬집었다.
개헌론 뿐 아니라 김 대표가 국감 기간 중 중국을 방문한 것을 놓고도 날을 세웠다. 홍 의원은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좋으냐”면서도 “국회의원을 여러 명 데리고 중국에 가면 국감 기간에 국회의원이 빠진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임무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의원은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감 아니겠느냐”며 “지금 김 대표가 하시는 행보 자체가 저희로서는 걱정이 많이 된다”고 거듭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