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또 다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대한민국을 그토록 외쳐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지난17일 오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열린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 축하공연 도중 환풍구 덮개가 붕괴되며 무려 1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것. 사망한 16명을 포함해 이날 행사 관람객 27명이 20여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였다. 공간도 협소했고, 인기 아이돌그룹의 축하무대가 진행되면서 제대로 된 안전시설이나 안전요원 배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에 따른 사고였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무색할 만큼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모습이다. 이번 참사가 우리 사회에 또 어떤 충격과 파장을 일으키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
◆환풍구 붕괴 추락사고, 안전요원은 있었나?
사고가 난 환풍구는 3m×4m 규모로, 깊이는 건물 4층 이상인 10여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환풍구는 원모양의 야외광장 공연장에 설치된 무대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인기 걸그룹인 포미닛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공연을 높은 곳에서 보기 위해 관람객 30~40명이 환풍구 덮개 위로 올라갔다. 결국 환풍구 덮개가 이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문제는 관람객들이 이처럼 위험 시설에 마음대로 올라가도 제지나 안전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환풍구 덮개에 올라갔던 관람객들은 주최 측이 당초 마련한 515석 자리가 모자라 관람할 장소를 찾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 등에 따르면 이날 공연에는 515석보다 훨씬 많은 700여명이 몰렸던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이날 정작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시간대에 경찰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2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임수경 의원이 분당경찰서로부터 제출 받은 사고 당일 조치사항 등에 따르면 경찰 측은 사고 당일 순찰차를 거점 배치했었지만 정작 유명가수 공연이 시작되고 인파가 몰릴 시간에는 사고 현장에 없었다.
앞서 분당경찰서 경비계는 지난 15일 오전 11시30분경 행사 주관사인 이데일리TV 관계자 2명과 행사 관련 안전대책을 협의했었다. 이 과정에서 분당경찰서는 <이데일리> 측에 행사안전 관련 안전요원을 몇 명이나 배치하는지 물었고 <이데일리> 측은 40명 정도 배치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분당경찰서는 안전요원을 추가 배치할 것을 주문하며 ‘다른 행사에서는 주최 측에서 모범운전자들을 섭외해 배치하는 경우가 있으니 참고하라’는 권유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이데일리 측에 자체적인 안전관리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순찰차 거점배치 정도로만 지원하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분당경찰서는 오후 2시께 경찰 2명을 현장으로 파견해 현장답사를 실시했고, 위험성이 낮은 행사로 판단하고 답사를 끝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행사 당일 교통 순찰차 1대와 112순찰차 1대를 배치했지만, 정작 유명가수가 출연하는 공연 시작 전인 16시40분 행사장 주변 교통 정체가 없고 인원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통상 순찰 근무’로 전환했다. 그리고 당뇨병 환자 구호 출동 등 다른 사고 처리에 동원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임수경 의원은 “행사 시 안전관리가 형식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고, 만약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경력을 배치하여 보다 철저하게 안전관리를 했다면 환풍구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오도록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경찰의 안이한 안전관리를 지적했다.
◆행사 담당자마저 자살 충격 속 발 빠른 보상 논의
이렇게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만으로도 슬픈 일인데 이 행사를 기획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담당자 과장 오 모(37) 씨가 숨진 채 발견돼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 18일 오전 7시 15분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테크노밸리 건물 옆 도로에서 오 씨가 숨진 채 쓰려져 있었다고 밝혔다.
오 씨는 27명의 사상자를 낸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와 관련해 18일 새벽 경찰 수사본부에서 1시간 20분정도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오 씨는 이날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귀가 하던 중 판교테크노밸리지원본부 건물 10층 옥상에 올라가 몸을 던졌다.
건물 내 CCTV에서는 오 씨가 오전 4시께 10층 건물의 4층 판교테크노밸리지원본부 사무실에 들어가 직원들과 대화를 하다 오전 6시53분께 혼자 걸어 나와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담겼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옥상에는 오 씨의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오씨는 투신 직전인 오전 7시1분 SNS를 통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진정성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며 가족들에게는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글을 남겼다. 경찰 관계자는 “중요 참고인인 만큼 조사과정을 영상녹화하려고 했지만 당사자가 거부해 상사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조사를 했다”며 “조사과정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교 사고와 관련해 경기도와 사망자 유가족협의체가 보상 지원 등 6개 항목에 대해 발 빠르게 합의했다. 지난18일 박수영 경기도 부지사와 한재창(42) 유가족협의체 간사는 성남 분당구청 판교환풍구추락사고대책본부(사고대책본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경기도와 유가족협의체가 합의한 항목으로는 가장 먼저 사망자 중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사고를 당했거나 퇴근 후 사원증을 패용하고 있었던 사망자 등에 대한 산재처리 여부를 법률 검토해 지원하기로 했다.
또 피해보상 과정에서 고문변호사 등을 활용해 법률자문을 지원하며, 사망자 가운데 경기지역이 아닌 다른 시·도에서 장례를 치를 경우 지원하기로 했던 3000만원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경기도는 유가족 측의 요청에 따라 부상자 가족 동의를 받아 전화번호를 제공하고 필요할 경우 분당구청 상황실을 유가족 회의장소로 빌려주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박 부지사와 한 간사를 협의 창구로 하여 유기적으로 소통하기로 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앞서 진행된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이번 사고 유가족협의체에 최대한 지원하기로 약속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