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23일 돌연 최고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그 배경과 의도를 놓고 갖가지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활성화 법안들의 국회처리 지연을 거론하면서 “국회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곳인지, 밥만 축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다”며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차원에서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또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를 향해 경제활성화 법안만 제발 통과시켜 달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애절하게 말해왔는데 국회에서는 오히려 ‘개헌이 골든타임’이라면서 대통령한테 염장을 뿌렸다. 많이 가슴이 아프실 것”이라고 사실상 김무성 대표를 겨냥한 듯한 발언도 쏟아냈다.
김 최고위원의 이같은 발언은 기자들의 취재가 허용되는 공개 모두발언에서 나온 것이어서 사실상 준비된 '작심 발언'이다. 여권 안팎에서는 그러나 갑작스런 김태호 최고위원의 사퇴선언의 속내와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사퇴 이유로 내건 '경제활성화법 발목잡기'의 경우 세월호 참사이후 지속돼온 여야대립이 직접적 원인인데, 여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아무래도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존재 이유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국민에게 반성하는 마음을 느꼈다면 여당 최고위원직이 아니라 차라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게 맞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차기 대권 놓린 절묘한 타이밍의 차별화 ‘승부수’?
이 때문에 ‘김태호의 난’으로 불릴만한 그의 갑작스런 돌발 행동은 자신의 향후 행보에 따른 정치적 포석의 의미가 짙게 담겨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태호 최고위원으로서는 다른 잠룡들과의 차별화가 필요했는데, 당청갈등으로 불거지고 있는 현 시점이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대표를 비판하는 듯 청와대를 비판하는 듯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이며 여권내 정치 이슈를 자기 중심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실제 이날 최고위 발언에서 “박 대통령에게 염장을 뿌렸다”고까지 말하면서 개헌발언을 촉발한 김무성 대표를 면전에서 대놓고 비판했다.
그는 또 “시대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옷이 필요한데 그것이 개헌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누구보다도 개헌에 대한 필요성 느끼는 분이라고 말해왔다”며 개헌논의 함구령을 내린 박 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입장도 동시에 밝혔다. 개헌에 긍정적 입장을 취해온 김 최고위원이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김 최고위원은 세월호 정국과 당혁신 작업을 거치면서 김무성 대표 중심으로 당의 체질개선이 이뤄지는 모습을 접하면서 나름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당청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절묘한 시점에 '최고위원 사퇴'라는 나름 승부수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김무성 흔들기 수순밟기…친박계 교감설?
김태호 최고위원의 돌발 행동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김무성 대표에 대한 흔들기 시나리오다.
김 최고위원이 친박계의 사주를 받고 '거사'를 진행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추측성 얘기까지 나오는 가운데 적어도 향후 미칠 파장을 고려할 때 친박계와의 암묵적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당내 친박계 대 비주류간의 갈등은 사실상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친박계가 밀던 서청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부터 물밑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는게 정설이다.
이같은 당내 갈등은 최근 당내 조직강화특위 활동과 당무감사 등을 거치면서 '친박계 물갈이'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누적돼왔고, 김 대표의 개헌발언을 계기로 이번에 분노가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말 실수로 볼 수 없다”면서 김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김 대표가 “청와대와 싸울 생각이 없다”며 후퇴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양측간 갈등은 일단 진화되는 듯 했지만, 친박계 입장에선 김 대표에 대한 공세를 이 기회에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김 최고위원의 돌연사퇴는 진의가 무었이든 김무성 대표 체제의 새누리당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고, 나아가 친박계인 서청원 이정현 최고위원 등이 동반 사퇴한다면 김무성 체제는 붕괴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우 당 체제를 친박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다는 점에서 '친박 교감설'시나리오는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사실 친박계는 '사과'발언까지 한 김 대표에 대한 비판을 계속해왔다.
친박계인 홍문종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김 대표가 차기 대권 스케줄에 비춰볼때 정치적 의제를 선점하는게 중요하다고 주변에서 말하니 그 유혹을 참지 못한 것 같다”며 지속적으로 김 대표의 개헌발언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친박계 인사들은 그러나 사전교감설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면서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당·청갈등 국면 전환위한 ‘김무성-김태호’ 교감설
또 다른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김무성 김태호 교감설'이다.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가 아무런 보호막없이 거의 직접적으로 며칠째 핑퐁싸움하듯 현안에 대해 부딪치는 모양새인 상황에서 극적인 국면전환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실상 당내 비주류인 김태호 최고위원이 겉으로는 김무성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당청갈등 문제를 당내 갈등문제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완충지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얘기다.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는 연일 계속되는 해명과 사과에도 당청갈등의 고리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변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김태호 최고위원이 김 대표와의 보이지 않는 교감속에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 최고위원이 기자들이 있는 공개 회의석상에서 김 대표를 대놓고 비판하면서 사실상 '반기'를 든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김 최고위원 사퇴발언 이후 기자들과 만나 “사전에 전혀 따로 얘기 들은 바도 없다. 오늘 오후에라도 연락이 되면 만날 것”이라며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한편 '친박계 교감설' '김무성 교감설' 등 보이지않는 손에 의한 정치공학적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해석도 여전히 만만찮다.
친박계와의 교감속에 거사를 꾸미기에는 김태호 최고위원의 자기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 일이고, 친박계가 김 최고위원에게 무엇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여건도 아니라는 분석이다. 또한 김 최고위원의 사퇴가 '김무성 구하기 국면전환용'으로만 사용되고 용도폐기 되기에는 정치적 파급력이 크고, 당내 갈등의 불씨가 어디로 번질 지 가늠할 수 없는 핵폭탄이 될 수 있다. 아무튼 김 최고위원은 자신의 사퇴의사에 대해 "번복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