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유하(52)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폭력과 욕망이 뒤섞여 있다. 그의 신작 '강남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와 한 데 묶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폭력의 탄생을, 폭력 그 자체에 대한 매혹과 반성의 경계선에 선 사춘기 남학생을 통해 관찰한다. '비열한 거리'는 돈을 향한 욕망이 폭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하는지를,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남자의 삶을 거울삼아 바라본다.
유하는 '강남1970'를 통해 폭력과 욕망에 대한 두 영화 각각의 시선을 하나로 겹쳐 바라본다. 생존에의 욕망은 폭력을 촉발하고, 권력은 폭력을 애용한다. 그리고 유하 감독이 보고자 하는 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어코 얻어낸 기득권이 아니라 그 아수라장 속에서 스러져가는 강자처럼 보이는 약자들이다.
'강남1970'은 이런 지점에서 볼 때 '거리 3부작' 혹은 '강남 3부작'이 아니라 '폭력과 욕망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다.
유하 감독은 영화 '강남1970'에서 욕망과 폭력과 땅과 돈과 권력이 만들어낸 격랑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던 두 남자의 시작과 끝을 조용히 따라다니며, 응시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영화가 잘 되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아직 잘 모르겠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영화가 좀 센 편이지 않나. 투자자를 비롯한 도와준 분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는데…."
-이정도 수위를 세다고 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상대적이다. 솔직히 난 그렇게 세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미 그런 표현들(살인, 섹스 등)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관객은 그게 아니지 않나. 그런 표현에는 감정도 들어간다. 감정이 들어가면 실제 표현보다 더 세 보이기도 한다."
-표현 수위를 떠나서 영화에 대해 좋지 않은 평도 있더라. 동어반복이 아니냐는 물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억지로 3부작을 만들었다는 의문이다.
"알고 있다. 3부작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를 만들 때부터 생각했다. 강남, 청춘, 거리, 폭력성 등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난 폭력성 대신 조폭성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말죽거리 잔혹사'를 만들 때부터 3편 정도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언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3편을 만들 거냐고 묻기도 했다. 스트레스였다. 프로 연출가로서 약속을 지켜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는 '말죽거리' 한 편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 편으로 끝낼 수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말 그대로다. 이야기할 게 많은 주제다. 우리 사회의 뒤틀린 풍경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봤다. 그래야 내가 말한 이 3부작이 완결된다. '강남1970'은 종대와 용기도 있지만, 강남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다. 강남은 산업화, 근대화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빛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림자도 있다. 그 그림자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현실을 뒤돌아보고 성찰할 시기라고 봤다."
-'강남 3부작'이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인 타이틀이어서 의아하다. 오히려 '말죽거리'와 '비열한 거리'로 이어지는 영화는 '폭력과 욕망 3부작'으로 설명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그 표현도 맞다. 결국 강남이라는 곳의 급작스러운 변화가 폭력과 욕망을 자극한 거니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강남'이라는 지명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다. 강남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강남을)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의 상징으로 생각하면 된다. 사춘기를 지나던 시기에 강남에 왔다. 도시와 농촌이 뒤섞인 그곳의 풍경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원주민과 이주민이 뒤섞이면서 누군가는 쫓겨나 부랑자가 됐고, 또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 이런 모습을 목도하면서 느꼈던 점들이 '강남1970'에, 그리고 앞선 두 편의 영화에 집약됐다."
-설명이 부족하다. 세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강남이라는 땅보다 폭력성이다. 당신이 본 강남의 모습이 어떻게 폭력으로 전환하는 것인가.
"종대와 용기는 넝마주이다. 그건 과장된 모습이 아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자퇴하고 넝마주이가 되는 친구들이 있었고 난 그들을 봤다. 그들에게 남은 게 뭐겠나. 결국 몸뚱아리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은 있는데, 가진 게 몸뚱아리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력은 자연스럽다. 그렇게 그들은 괴물이 됐다. 강남 개발 이면에는 괴물이 된 사람들이 있었던 거다. 생존을 위한 폭력성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원초적이고 필터링이 안 된 묘사를 했다."
-폭력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풀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하필 폭력인가. 앞선 두 작품도 그랬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폭력의 탄생이라면 '비열한 거리'는 생존을 위한 폭력이다. 그리고 '강남1970'의 폭력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듯하다.
"폭력성은 내 인생에서 감성적으로 가장 예민한 시기의 트라우마다. 그게 영화로 나오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매우 폭력적인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는 작은 조폭사회였다. 내가 강하지 않으면 늘 호구가 되는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남들한테 우습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폭력성을 가진 수컷이 돼야 했다. 그런 강박들이 무의식적으로 내 영화에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다."
-재밌는 건 폭력성에 대한 묘사가 세 작품에서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분명히 폭력에 매혹된 듯한 모습이 있다. 옥상 결투신이 그렇다. 조인성의 긴 기럭지 덕분인지 '비열한 거리'의 액션도 멋을 낸 느낌이 있다. 하지만 '강남1970'의 폭력에는 오직 폭력만 있는 것 같더라.
"그렇다. 매혹과 경멸이 섞여 있었던 게 맞다. 매혹과 반성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말죽거리'에 폭력에의 매혹이 있었던 게 맞다. 옥상신에는 폭력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비열한 거리'에서 그런 점(폭력에의 매혹)을 조금 줄인 것도 맞게 본 것이다. 하지만 '강남1970'에는 그런 묘사(폭력에의 매혹)가 있을 수 없다. 종대와 용기는 3부작의 주인공 중에 가장 밑바닥 인생이다. 이들에게 폭력은 오로지 생존 수단이다. 진흙탕 격투 장면이 보여주지 않나. 멋지지 않다.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이다."
-그 장면은 세 집단이 충돌한다. 일대일 구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충분히 의도된 것이겠다.
"맞다. 그런 시대였다. 모두가 뒤엉키는 그런 시대였다."
-종대와 용기의 표정은 항상 우울하다. 그들이 나름의 성취를 했을 때도 같은 표정이다.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써야 하는 인물의 허무함이 보였다.
"그런 걸 의도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종대와 용기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자주 잡았다. 그 감정을 보여줘야 했다.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다."
-앞선 두 편에서도 클로즈업을 자주 활용했다.
"그랬다. 인물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데 클로즈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조금 과한 게 아닌가. 너무 감정적이다.
"상업영화이니까. 원래 이민호는 더 무표정하게 연기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종대와 용기는 어떻게 탄생한 캐릭터인가.
"강남의 원주민이다. 쫓겨난 인물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학교를 자퇴하고 넝마주이가 되는 친구들을 나는 봤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말죽거리'에서 김인권이 연기했던 그 인물('찍새')이 종대와 용기가 된 것이다. 그 인물을 부풀려서 만든 이야기가 '강남1970'이다."
-캐스팅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민호, 김래원 두 명의 배우 모두 의외의 선택이었다. 이민호는 엄청난 인기를 가진 한류스타이긴 하지만, 연기력에는 물음표가 붙어있었다. 김래원은 영화 쪽에서는 조금 잊혀진 배우였다. 결정적으로 두 배우 모두 종대와 용기 같은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다.
"이민호 캐스팅은 리스키했다. 근데 그게 의욕을 자극했다. 나는 상속자 2회분을 본 게 이민호의 연기를 본 것의 전부다. 와이프가 추천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만으로 선택했다. 물론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 친구가 넝마주이에서 3류 건달까지 거칠게 연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캐스팅 소식이 언론을 통해 나가면서 부담이 더 심했다. 의심을 하고 시작했지만, 몇 번 촬영해보니까 이 친구가 재목감이라는 느낌이 왔다. 눈이 깊고, 빛이 난다. 안광(眼光)이 있었다. 더 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말하면, 이민호의 인기가 우리 영화의 센 부분을 완화해줄 거라고도 생각했다.(웃음)"
-김래원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김래원의 연기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해바라기'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만 알았다. 내 시나리오에 관심이 있다길래 만나봤다. 지금의 모습보다 상당히 살이 쪄있었는데, 눈에 절실함이 있더라. 왠지 모르게 용기를 할 수 있겠다 싶더라. 느낌이 딱 왔다. '이 친구는 할 수 있다'라는 느낌이 눈에 쓰여 있더라."
-김래원은 드라마에서도 열연하고 있다.
"'강남1970'을 찍고 나서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프로타고니스트만 하다가 안타고니스트도 하니까 스펙트럼이 넓어졌을 것이다. 나한테도 그렇게 말하더라."
-이민호씨와 인터뷰할 때 "유하 감독님의 영화는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다"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감독의 영화는 모두 서사를 성실하게 쌓아올렸다. 이번 영화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종의 반동인 것 같다. 내가 시를 쓸 때, 시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엄숙성을 깨는 작업을 했다. 키치적인 요소를 넣고, 대중문화 요소를 넣고, 욕을 넣었다. 불온한 작업처럼 보였다. 그런데 영화로 오니까 클래식하게 서사를 늘어놓는 영화가 없더라. 명확한 기승전결을 통한 오소독스함이 없고, 시츄에이션적인 캐릭터 위주의 이야기가 주류더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의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너무 실험이 없는 게 아닌가.
"그것 자체가 실험이다. 지금은 서사를 늘어놓고 밟아 가는 게 불온한 것이다. 나는 더 (서사를)추구할 것이다. 아무리 영화여도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난 이야기의 궁극을 추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강남1970'의 서사는 전작들보다 메시지가 더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조금 과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가? 내가 시인으로 출발해서 그런 것 같다. 시라는 게 그냥 오락으로 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보고, 은유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그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다. 그런 마인드는 주제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영화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주제의식이 없으면 손이 안 간다. 힘들다. 팝콘무비가 돈이 되지만, 체질적으로 쉽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은 상업영화 감독이 아닌가.
"맞다. 그래서 앞으로의 작품은 대중이 더 좋아할 만한 것을 궁리해서 더 확장성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물론 가봐야 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강남1970'의 서사를 유독 잔인하게 느끼는 듯하다. 특히 결말이 그렇다. 꼭 그렇게 해야 했나.(웃음)
"다른 결말도 생각했다. 종대가 살아남는 결말이다. 옥수동 달동네에 사는 늙은 종대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땅이 화려하게 변한 모습을 보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민호 얼굴에 노인 분장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수정했다."
-앞선 두 편의 영화('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보다 서사가 더 복잡해졌다. 잠깐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다. 산만한 느낌도 있다.
"강남에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인간군상을 표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아직 보지 않은 관객도 많다. 이 영화를 어떻게 봐줬으면 하나.
"단순하게 조폭영화로 봐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조폭성, 폭력성의 이면에 뭐가 있는지 잠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조폭영화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