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원칙 유책주의→ 파탄주의로 변화 가능성
헌재 관계자는 26일 “우리는 이혼소송 원칙과 관련해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면서“그러나 간통죄를 폐지한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부부관계는 사인간의 애정을 전제로 해야 하고 간통을 저지를 정도면 이미 애정이 없다고 판단되는 만큼 사실상 파탄주의로 가는 게 맞다고 판단, 간통죄를 폐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 이혼법은 혼인생활에서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상대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유책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 파탄주의(破綻主義)다. 누가 봐도 부부의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이 난 경우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혼을 청구할 수 있고 이를 인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유럽 주요 국가와 미국, 일본은 이런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파탄주의에 따르면 바람난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법원은 하급심에서 일부 파탄주의를 인정한 사례는 있었지만, 대법원 판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최근 대법원도 이혼소송 원칙을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50년만에 판례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간통죄 폐지에 이어 파탄주의까지 적용될 경우 간통을 저지른 유책 배우자가 재산을 모두 빼돌린 후 거꾸로 상대 배우자를 빈손으로 내쫓듯 이혼을 청구하는, 축출이혼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혼인파탄 책임 민사상 손배액 늘어날 듯
간통으로 인한 혼인 파탄의 책임을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물어야 하는 만큼 법원에서 인정되는 손해배상액이 이전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지냈던 김삼화(53·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는 "법원에서 불륜을 저지른 유책 배우자에게 상대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 및 손해배상 지급 책임을 좀 더 강하게 지우는 등 후속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에는 간통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측면이 있다"며 "간통으로 인해 피해를 본 상대 배우자에게 지급되는 위자료 액수를 높이는 등 금전적 대가를 무겁게 매긴다면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호도 이뤄지고 오히려 간통행위를 방지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통 피해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 액수 상향 등으로 민사적 책임을 강화하더라도 실제 유책 배우자의 간통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간통죄가 존재했을 때는 피해 배우자가 상대방을 간통죄로 고소하면 형사사건이 진행돼 경찰 등 공권력의 조사 및 수사 과정에서 배우자의 간통 증거를 확보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간통죄가 폐지되면 형사적 절차 역시 사라지는 만큼 피해 배우자가 직접 유책 배우자의 간통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이런 이유로 심부름센터 의뢰 등 상대방의 권익을 침해하는 불법적 증거수집 방식이 횡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간통죄 폐지 불륜 조장 오해
간통죄 폐지가 자칫 불륜을 조장하는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형법상 죄로 규율되지 않는 행위를 전면적인 합법으로 간주하는 잘못된 국민 정서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일반인들 사이에 오해가 많은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라며 "(형법상 죄가 안 되니) 마음대로 간통을 저질러도 되는 것이라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어 "정부에서 이런 오해에 대해 미리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진행했어야 했다"며 "혼인 상대방에 대한 순결의무는 그대로 유지하되 이를 형사적 절차 대신 민사적 절차로 담보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간통죄가 그동안 간통을 효과적으로 방지하진 못했다"며 "동성결혼을 합법화한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늘어나는 게 아니듯 간통죄가 폐지된다고 간통이 갑작스레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간통죄는 혼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유지돼 왔지만 사실은 이혼을 전제로 해야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 모순이 있었다"며 "입법목적에도 안 맞는 법이었던 만큼 합헌 결정이 났더라도 더 이상 사회적 유용성을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통죄 폐지 소급 적용 어떻게 되나?
헌법재판소가 26일 형법상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그동안 간통죄로 기소되거나 사법처리됐던 이들에 대한 소급 적용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법과 형법상 행위시법주의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헌재법은 특정 형법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을 경우 소급해 효력을 잃도록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개정된 헌재법은 마지막으로 합헌결정이 내려진 다음날부터 소급 실효가 적용되도록 했다. 따라서 지난 2008년 10월 30일 간통죄에 대해 네번째 합헌 결정이 내려진 만큼 같은해 10월 31일부터 행해진 간통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
또 형법상 행위시법주의란 특정 행위 당시의 법률에 따라 죄가 되는 경우에만 유죄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2008년 10월 30일 다음날부터 저지른 간통 행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처벌된 사람들은 헌재의 위헌 결정을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수감됐거나 실형을 살았던 이들은 형사보상도 받을 수 있다.
반면 2008년 10월30일까지 저지른 간통 행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들은 재심 청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범죄의 증명이 있으면 기존처럼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특정일을 기준으로 같은 행위를 저지른 이들의 유무죄가 갈린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존 간통죄가 2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비교적 형이 중한 범죄에 속했던 만큼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 중 실형을 살았던 이들은 재심 청구 자격을 두고도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2008년 10월31일부터 간통 행위로 유죄 확정 판결은 받았지만 형 집행이 끝나지 않은 경우에는 형 집행이 면제된다. 또 해당 기간의 행위로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아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 1심에선 검찰이 공소를 취소할 수 있다.
검사가 공소를 취소하지 않았거나 공소 취소가 불가능한 항소심의 경우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기소되지 않고 아직 수사 단계에 있는 이들의 경우 처벌 규정이 없어져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