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석희(가명) 할머니.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인 김 할머니는 5년여전만해도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저녁마다 마실도 다녔다. 하지만 고령((高齡) 탓인지 지금은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귀찮다. 금요일이면 다니던 철야예배도 큰 맘고 가야할 정도가 됐다. 최근에는 병원 가는 일이 일상이 됐다. 잔병은 물론이고 지병까지 생겨 가끔씩 큰 돈을 지출하기도 한다.
할머니 생활비는 전적으로 자식 몫이다. 몸을 건사하기 힘드니 일하는 것도 힘들다. 홀로 사는데도 할머니의 생활비로 거의 매달 70만원 가량이 빠져나간다. 생활비에 가끔 들어가는 병원비도 무시못할 일이다. 나라에서 주는 20만원 남짓한 기초고령연금을 합치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그나마 김 할머니는 다른 홀로 사는 노인에 비해서는 풍성한 편이다. 자식이 없거나 있어도 의지가 힘든 노인들이 많아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5 고령자 통계’에서는 국민 8명중 1명이 고령인구에 절반이상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이상 고령자 중 홀로 사는 고령인구가 140만 시대에 육박하는 등 '고령의 그늘'이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되가고 있다.
◆65세이상 고용률 증가 추세
일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정부의 경제활동인구조사대상인 생산가능인구(15~64세)를 상회하는 65세이상 인구는 올해 662만4000명으로 전체의 13.1%에 달한다. 전체 인구 8명중 1명이 65세이상인 셈이다. 또한 5가구중 1가구는 가구주가 노인으로, 고령자 가구가 7.4%에 달한다.
UN은 고령사회를 3단계로 구분한다. 65세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이상이면 ‘고령화사회’, 65세이상 인구가 전체의 14%이상을 차지하면 ‘고령사회’, 20%이상이면 ‘후기고령사회 또는 초고령사회’라고 나눈다.
우리의 경우 2000년 65세이상 인구가 7.2%를 차지하면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오는 2017년에는 고령사회 기준인 14%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 65세이상 고용률은 29.4%로 집계됐다. 2010년 들어 28.7%로 다소 내려갔지만 2011년 28.9%, 2012년 30.1%, 2013년 30.9%, 2014년에는 31.3%로 매년 증가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래 비생산인구인 60~64세의 고용률도 크게 늘고 있다. 2000년 53.0%에서 2011년에는 55.1%, 지난해에는 58.3%까지 치솟았다. 2013년 이후부터는 20대 고용률 56.8~57.4%를 넘어섰다.
이는 55~79세 고령자의 취업의사를 봐도 잘 나타난다. 이 연령층에서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61.0%로 조사됐다. 10명중 6명은 일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다.
특히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하겠다’는 비율이 57.0%로 가장 높았다. 전년 54.0%에 비해 3%포인트 상회했다. ‘일하는 즐거움 때문에 일하겠다’는 의사가 지난해 38.8%에서 2015년 35.9%, '무료해서'가 3.9%에서 3.6%로 각각 0.3%포인트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이에는 부모부양에 대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시각차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보고서 ‘노후보장을 위한 가족, 정부, 사회의 역할’에 따르면 부모가 노후대비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의견이 2002년 9.6%에서 16.6%로 늘었다.
또한 가족의 책임이라는 응답은 70.7%에서 31.7%, 가족과 정부,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응답은 18.2%에서 47.3%로 각각 증가했다.
서울 마포에 사는 진영진(51)씨는 "아이들에는 결혼까지만 도와준다고 했다"며 "집은 노후자금으로 못박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가족들이나 다른 계층에 더 이상 생활비를 의존키 힘들고 스스로 벌어야 하는 사회구조가 됐다는 얘기다.
◆일하는 노인 늘어도 심해지는 가난
문제는 오랫동안 일을 해도 노인들의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빈곤 및 불평등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층의 상대빈곤율은 2012년과 2013년 모두 48.0%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빈곤율 13.7%보다 3.5배 높고 한부모빈곤율 18.5~21.7%와도 최대 29.5%의 격차를 보인다.
OECD의 연령대별 빈곤률에서도 우리나라의 66~75세 빈곤율은 45.6%로 OECD평균 11.0%보다 34.6%를 상회한다.
이처럼 한국 노인들의 빈곤이 심한데에는 부실한 연금이나 일정한 일자리 등 정책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년간 55~79세의 고령층 중 연금을 수령한 인구는 전체의 45%인 532만8000명에 그쳤다. 10명중 6명은 연금 제외대상이다.
금액면에서도 52%가 25만원 미만을 받고 있다. 10만원 미만을 받는 고령자가 8만2000명으로 1.5%, 10~25만원미만이 269만5000명으로 전체 수령자의 50.6%에 달한다.
남재욱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연구모임 정책팀장은 ‘한국의 노인빈곤과 연금제도’라는 보고서에서
“노인빈곤의 가장 핵심은 선진국 대비 취약한 연금제도, 특히 공적연금제도에 있다”며 “이로 인해 한국의 노인들은 다른 나라의 노인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지만 대부분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로 경제적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노인들이 일을 해도 임금이 말그대로 박봉인데다 일을 찾기가 힘든 점도 문제다. 한 논문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65세이상 노인노동자는 2014년 61.2%로 나타났다. 2012년 53.6%보다 10%가 더 늘었다.
이에 따라 노인층의 소득개선을 위한 다양한 일자리 지원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이용환 현대경제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노인을 푸피족으로 칭한뒤 푸피족의 월평균 경상소득이 2006년 51만원에서 2014년에는 63만원으로 2.7% 증가했지만 노인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하면 오히려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경상소득에서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한 푸피족의 월평균 시장소득이 같은기간 39만원에서 33만원으로 연평균 2.1%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공공근로사업 확대 등 정부 차원의 다양한 일자리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노인 푸피족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노력 필요성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