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라” 김동애 교수(여·56·중국현대사 전공)는 10월 1일부터 한성대 앞에 천막을 치고 외롭게 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
교수는 2000년 8월 한성대로부터 예고 없이 해고됐다. 한성대 측에 직위해제 무효, 체불임금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여지없이 패했다.
10월 23일에는 서울지법으로부터 퇴직금 청구소송을 각하한다는 충격의 통보도 받았다. 대학강사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열 달째 계속되는 시위
화요일 오전 11시 30분, 김동애 교수의 하루가 교육부 앞에서 시작됐다. 그는 2월 1일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같은 요일 같은 시각이
되면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앞뒤로 요구사항이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교육부 건물을 비장한 눈빛으로 응시한다.
점심시간, 그의 눈빛이 머물던 건물에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모두들 본 체 만 체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관심을 갖는
이가 없다. 그곳에서 단식농성을 하다가 급기야 10월 6일 위와 장에서 출혈을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갈 때도 그랬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망부석처럼 서 있던 그는 피켓을 챙겨들고 한성대로 향한다.
한성대 정문 옆, 비바람이나 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술하게 비닐로 쳐 놓은 천막. 2시가 넘은 그 시각에야 그의 늦은 점심이 시작된다.
그는 요구조건이 받아들여 질 때까지 이 천막을 절대 걷지 않을 작정이다.
신분보장 안 되는 비정규직 시간강사
김 교수는 7년 넘게 강의해 온 한성대로부터 1999년 9월 강사로 강등됐고, 2000년 8월에는 강의를 배정받지 못 했다. 한마디로 ‘퇴출’된
것이다. 그 이유는 ‘괘씸죄’다. 그가 강사로 강등된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 1999년 11월 한성대학을 상대로 서울지법에 ‘직위해제 및
감봉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1992년 3월 이 학교에 외래강사로 임용돼 강의를 시작한 후, 같은 달 30일 임용기간 1년의 대우교원으로, 이듬해 3월 1일부터는
대우조교수, 1998년 9월 1일에는 대우교수로 직함이 바뀌었다. 그리고 1999년 8월 31일 직위 해제됐다. 그렇게 여러 차례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 변하는 것을 그는 까마득히 몰랐다. 이름이야 어쨌건 그는 대학측에서 볼 때 아무렇게나 처리해도 되는 비정규직 시간강사에
불과했다.
퇴직금 지급 소송에 대한 대학 측의 답변을 보면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원고(김동애)의 호칭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1년 단기간의 임용기간을
정해 임용되고 교원정원에 포함되지 않으며…(중략) 시간강사와 마찬가지로 실제 강의시간에 대해서만 보수를 지급받는 것으로 1년의 임용기간이
만료되면 당연히 대우교수의 신분을 상실하고 원고를 재임용해야 할 의무가 없다.”
4∼5개 대학 출강해야 겨우 100만원 벌이
갑작스런 해고 때문에 김 교수는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처해졌다. 다른 대학에 출강신청서를 내지 못했고, 이미 다른 대학의 출강 요청도
거절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체력도 달리고 보따리를 싸고 왔다갔다 하느라 연구작업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한성대에만 출강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받은 월평균 금액은 대략 100만원 정도. 시간당 38,000원으로 계산해서 주당 7시간을 강의했을 때 그런 계산이 나온다.
그나마 그는 다른 강사에 비해 강의료가 두 배였기 때문에 이 정도다. 대우교원으로 임용될 때 학교는 그에게 강의료 두 배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방학 때는 월급을 받지 못하니 연봉으로 따지면 전임교수의 7분의 1 수준인 700여만원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월 100만원을 번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시간강사들의 강의료는 시간당 적게는 17,000원, 많게는 40,000원이다.
평균적으로는 대략 25,000원 정도. 시간당 25,000원씩 받는다고 했을 때 주당 10시간 이상 강의해야만 겨우 100만원이 된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을 강의하려면 3∼4개 학교에 출강해야 한다. 한 학교에서 3시간 이상의 강의를 주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경우는 대우교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전임교수 만큼 강의를 배당 받은 특별한 경우였다.
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시간강사 문제
한국의 각급 대학교 교원구성을 보면 전임교수보다 시간강사가 월등히 많다. 거의 40대 60 비율이다. 이들 시간강사들의 강의 분담률은 40%가
넘는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10월 16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국공립대의 강좌 중에서 시간강사가 맡는 비율이 학부 교양과목은
평균 54.1%, 전공은 29.98%나 된다. 특히 강릉대, 군산대, 부산대, 부경대, 안동대, 전북대는 학부 교양과정의 시간강사 강좌수
비율이 무려 70%가 넘는다. 심지어 서울대도 59.1%에 이른다. 사립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학부과정의 시간강사 비율이 46.7%,
전공과목은 39.73% 수준이다.
이런 현실은 곧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교육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대접을 받는 대학강사는
살기 위해 연구보다 여러 대학의 강의에 목을 달 수밖에 없다. 또 연구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수업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후배들이 ‘왜 연구논문을 쓰지 않느냐?’고 물어올 때 참 난감하다”면서 “그러나 사기를 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에 따르면 우선 자료가 없다는 것. 아니 근본적으로는 그 자료를 수집할 돈이 없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법적 지위 보장하는 판례 반드시 남기겠다”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 4대 사회보험 등 아무 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대학강사들은 매학기 학교와 암묵적인 불평등 계약을
체결해야만 한다. 살기 위해서다. 자신의 노동조건이 어떻고, 임금이 얼마인지 따질 여유가 없다.
또 학기 말에는 ‘다음 학기 강의시간표에 내 이름이 있을까’ 가슴앓이를 한다. 만약 시간표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면 또 다시 불평등 계약을
감지덕지 받아들이고, 없으면 보따리를 싼다.
대한민국 헌법 31조 6항에는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교육관련법 가운데 시간강사들에게
적용되는 법은 하나도 없다. 시간강사들은 교원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것이다.
김동애 교수는 현재로선 모든 소송에서 패한 상태지만,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헌법소원도 생각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그의 이
싸움은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강사들을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교육자와 연구자로서 모두 실패했다”면서 “후배들을
위해 시간강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판례를 반드시 남기겠다”고 말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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